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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동안 올해뿐만이 아닌, 여러 해를 거듭해도 잊혀지지 않을 위대한 영화가 완성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마치 인간사에 대한 오만과 미스테리를 술술 풀어가면서도 마치 깨진 유리 조각처럼 부서진 감정을 기어코 밟아가며 생긴 상흔을 묵묵히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상처 어린 순간들을 차갑게 바라보려 한다. 물론 이 영화의 시선이 차갑다고 해서 마냥 무거운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인간 개인의 내면에 짙게 운동하고 있는 본인만의 고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의 가장 친한 친구인 파우릭과 콜름을 절교시키며 시작한다. 물론 이 절교는 상호 동의하에 이루어진 결정이 아닌, 콜름의 일방성에 의해 반쯤 성립된 절교인 셈이다. 어떤 사람은 기분 나빠서라도 그냥 다른 사람이랑 어울리고 말지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파우릭은 콜름의 일방적인 절교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파우릭과 콜름의 이러한 엇갈림은 개인마다 절대 물러서고 싶지 않는 지점끼리 맞닿아 충돌하면서 생기는 감정적 마찰에 대해 다루고 있다. 콜름은 파우릭과 어울릴 시간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훌륭한 음악을 남기고 싶어했고 파우릭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 보단 주변에서 다정하게 기억해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한다. 웃기게도 둘의 가치관과 감정은 서로 틀린 부분이 하나도 없지만 각자는 상대의 의견보단 개인을 우선시하려는 부분에서 미어진 상처가 더욱 벌어지는 효과를 낳게 된다.  

 

콜름은 파우릭과 거리를 두기 위해 말을 걸 때마다 손가락을 잘라서 파우릭의 문에 던지는 괴랄한 행동을 벌이겠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실천에 옮기기까지 했다. 파우릭은 그럼에도 콜름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말을 걸다가 파우릭의 손가락을 자르게 만들었다. 감독인 마틴 맥도나가 극작가라서 그런진 몰라도 과감없는 서술로 펴내려가며 특정 현상에 대한 통렬한 시선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문학의 골조와 성격을 빼다 닮은 게 바로 이니셰린의 밴시의 각본이다. 인간은 본인의 몸을 훼손해서라도 원하는 것을 영위하고 싶어하고 타인의 욕구보단 나의 만족을 위해 미련해질 수도 있는 법이다. 물론 그러한 행위의 정당성을 본인 스스로는 전혀 증명해낼 순 없겠지만 그것을 옳다고 믿고 싶어하듯이 극 중 둘의 성격이 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이 비극의 연쇄성은 결코 두 주인공 모두 원하는 것을 얻기 전까진 끝날 수 없고 끝나서도 안된다. 두 명은 이미 목표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했고 목표를 위해 감내한 상실감을 기어코 채워넣어야만 만족할 것이다. 

 

다만 영화의 각본이 정말 좋다고 생각한 점은 서로 엇갈리는 관계로 이루어진 인과가 개인과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과 주변인의 엇갈림, 단체와 개인의 엇갈림으로 넓게 확장된다는 점이다. 영화엔 수많은 엇갈림이 등장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파우릭의 여동생인 시오반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도미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둘의 성격은 천차만별이지만 도미닉은 시오반을 짝사랑하고 시오반은 도미닉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보이고 있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둘 각자의 감정엔 그 감정을 느끼는 특정한 이유가 존재하지만 어떤 의미로 보면 존재하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다. 파우릭과 콜름이 각자의 생애를 어떻게 남기고 싶어하는 지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처럼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한 텍스트는 명확하지만 그 텍스트가 결코 선명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이 둘 또한 넓은 의미로서 어떠한 특정하고 명확한 이유없이 철저히 엇갈려있는 셈이다.

 

시오반과 이니셰린이라는 단체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이니셰린에선 무엇이건 공유하고 어울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시오반은 그런 이니셰린을 무례하고 지루한 곳이라고 여긴다. 이니셰린의 사람들 또한 그런 시오반을 싫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이 단체로부터 소외받는 이러한 형태는 분명 일종의 폭력과도 같지만 개인을 혐오하는 단체의 경우 단체에 속한 개인들로 하여금 그럴만한 합리성을 인정받기에 정당하다는 결론으로 도출된다. 시오반이 이니셰린을 싫어한다고 해도 이니셰린 내에선 그러한 행위가 당연하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는 그들의 입장에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셈이다. 이 또한 서로의 존중보단 각자의 방향성이 이러한 양상을 만든 셈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파우릭과 시오반 또한 집 안에 당나귀를 들이냐마냐로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 내에서 묘사되는 개인간의 관계와 단체적인 범위로 확장하는 이러한 구조를 파헤쳐보면 사실상 서로가 갖고 있는 신념과 가치관은 누구나 마땅히 그렇다고 생각할 정당한 이유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한 셈이다.   

 

파우릭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 살짝 손을 내어준 콜름의 행위를 보면 알 수 있다 싶이 파우릭을 향한 감정의 형태는 온전하게 남아있으면서도 둘의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결국 서로에 대한 완벽한 존중은 시간과 감정의 발판을 딛어도 결코 신념과 감정에 의해 넘어설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게 되며, 이 둘의 정답 없는 신념과 감정은 영원히 바꾸지 못할 오답으로 변하게 된다. 콜름의 잘린 손가락을 먹은 파우릭의 당나귀가 죽게 되는 사고를 겪은 것이다. 콜름이 파우릭과의 엇갈림을 택한 건 명확한 오답이 아니였지만 엇갈리기 위해 벌인 행동은 본인의 신념에서 비롯됐기에 이는 결국 관계적인 오답으로 진화하여 파우릭 또한 본인 스스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부심에서 우러나온 오답을 택한다. 

 

파우릭은 정확히 오후 2시에 콜름의 집에 불을 지를 것이라고 예고했고 어김없이 그것을 수행했다. 더욱 비극적인 건 이러한 파멸의 과정을 거치고도 끝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파우릭은 콜름을 친구로서 많이 좋아했기에 콜름이 한 행동을 잊을 수 없을 거고 콜름은 타인보다 신념을 더 우선시했기에 파우릭에 대한 미안함을 잊을 수 없겠지만 그러한 감정에 맞서 싸워야만 할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본인의 신념을 위해 불분명한 형체를 갖고 있는 감정에 끌려갈 정도로 오만하지만 반대로 그러한 감정에 이끌리는 인물들을 섬세히 관찰하며 관계적 종말에 관한 아이러니를 오만하지 않은 태도로 선보인다. 

 

파우릭과 콜름의 비극적 결론 이 외에도 파우릭과 도미닉이 절교하게 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파우릭은 콜름에게 접근하는 사람을 차단하기 위해 했던 행동이 본인 인생에서 실행했던 가장 당당하고 정당한 행위였지만 도미닉은 콜름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렇듯 이니셰린의 밴시는 차가운 태도로 일관하면서도 관객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드는 흡입력을 지니고 있는 관찰적인 걸작이다. 배우들 역시 구명이라고 느낀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모두 연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콜린 파렐은 애프터 양에 이어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고 브렌단 글리슨, 케리 콘돈의 연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특히 배리 키오건은 조연으로 출연하여 존재감이 떨어질 수도 있는 배역을 맡았음에도 존재감 있는 연기를 선보여 배역에 담긴 의미를 고찰해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정말 재밌었고 앞으로도 계속 생각날 작품이다.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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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부라더 2023.03.16 22:06
    아직 안본 영화인데 재밌게 작성해주셔서 한번 보고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ㅎㅎㅎ
  • profile
    펭펭v 2023.03.16 22:44
    정성 후기 넘 잘보았습니다~~👍
  • 김난바 2023.03.16 22:52
    봐야하나 고민 많이했는데 이 후기를 보니 한 번 봐야겠네요!
  • profile
    가면너구리 2023.03.16 23:56
    너무 보고싶네요.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래도 볼 가치는 충분할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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