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만 보면 꼭 노인복지문제나 노인들의 힘든 삶을 그린 영화일것 같은데 실상은 서부극 스릴러인데요.
1980년대 당시 베트남전 패배 이후 미국이 그동안 잡아왔던 세계 질서와 내부적으로 법치, 자유를 잘지켜온 그동안의 안정적인 세상이 살인과 같은 범죄로 혼란속에 빠지는 세상으로 변모해가는 시절의 상황을 안톤 쉬거라는 싸이코패스로 함축시켜 보여준 작품입니다.
영화 속 요소들을 한번 해석해보겠습니다.
<영화속 르월린 모스의 의미>
변화되는 세계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의지와 과거 미국이 가져온 자부심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부인이 있고 정상적으로 미국이 만든 법을 지키는 선에서 혼란속을 헤쳐나아가려는 인물이죠. 그가 쓰고 있는 카우보이 모자도 미국의 자부심을 상징하죠.
그가 우연히 물이 절실한 사람을 만나는것도 그에게 물을 주러 다시 갈지도 그가 우연히 돈가방을 발견해 가져갈것인지도 그의 선택의 책임은 오로지 본인에게 있습니다. 우연에 의한 운명은 바꿀 수 없다는 염세주의적 코엔형제 세계관에 알맞는 설정입니다.
<영화 속 안톤쉬거의 의미>
안톤 쉬거는 말그대로 불운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안톤쉬거는 영화 속 대사에서도 나오지만 법, 정해진 규칙 따위를 믿지 않습니다. 칼슨 웰스를 죽이기전 한 대사가 있죠. 당신이 그렇게 믿던 규칙땜에 이 꼴 되었다면 그딴 규칙 어디다 써먹겠냐고요.
안톤쉬거는 동전던지기로 사람을 죽입니다. 그의 살인을 정당화시키는 방식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의 사고방식은 앞에서 말한 염세주의적 사고방식에 딱맞는 인물입니다. 모든것이 우연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기에 살인이 정당화되는것이죠. 그가 우연히 어떤 가게 주인을 만나는것도 우연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주인을 죽인다면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에게 행동의지가 있었다고 봐야하니까요. 그렇기에 안톤 쉬거는 동전던지기라는 또다른 우연을 만듭니다. 그가 동전을 던지는 행위는 자의적이지만 동전의 결과에 따른 살인행위의 책임은 동전이라는 우연에게 있다는 것이 안톤쉬거가 가진 철학입니다.
<스릴러라는 장르의 클리셰 붕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을 만납니다. 우리가 대충 스릴러하면 떠오르기 쉬운 시나리오 노선을 이 영화는 과감하게 넘어섭니다.
해결사 역할로 나올것 같던 칼슨 웰스의 죽음도 그렇습니다. 모텔에서 우연히 안톤 쉬거를 만나 허무하게 죽는것도 우연에 의한 운명이라는 알 수 없는 미래기에 스릴러의 클리셰가 파괴될 수 있는 것이죠. 르웰린 모스의 죽음도 너무나 예측하기 어려운 시점에 죽게 됩니다. 이러한 시나리오의 편집 능력이 과연 코엔 형제가 왜 이 영화로 상이란 상은 다 탔는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안톤 쉬거의 철학에 대한 반박>
안톤 쉬거가 마지막으로 르웰린 모스의 아내를 만났을때 아내는 코인토스를 거부합니다. 그녀는 선택의 책임을 동전에서 안톤 쉬거로 넘기려 하죠. 그의 철학이 반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톤 쉬거는 말하죠. I got here the same way the coin did. 나도 동전과 같은 방식으로 여기에 왔다. 즉, 우연에 의해서 오게 된것이라는 이야기로 다시 안톤 쉬거가 이야기한것이죠.
이렇게 아내를 살해한 안톤 쉬거는 유유히 운전을 하다 사고를 당해 팔이 부러집니다. 그 역시도 인간이기에 우연에 의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대비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영화 중반부에 르웰린 모스가 안톤 쉬거의 총격을 피한 직후 젊은 남성들에게 거래를 하는 장면인데 여기서는 젊은 남성들이 굉장히 불친절하죠. 우연히 만난 그 사람들이 그 상황속에서는 그가 이상해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안톤쉬거가 팔이 부러지고 절뚝거리며 나왔을때 자전거를 탄 소년 둘이 그를 보고 공짜로 옷을 주려는 장면에서 바로 영화 중반부 장면과 대비된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소년들이 바로 직전의 모스의 아내를 죽이는 장면을 간접적으로라도 보거나 느끼기라도 했다면 그런 친절은 나오지 않았겠죠. 우연에 의한 운명이 결코 정의롭기만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에드 톰 벨 보안관이 끝까지 살 수 있었던 이유>
애초에 이유를 묻는게 잘못된 것이긴 하죠. 그도 르웰린 모스가 죽은 현장에서 문을 열었을때 그 시점이 안톤 쉬거가 있던 시점과 같았다면 살지 못했을것이란걸 영화속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는 적어도 이러한 혼란 속에서 타협을 보고 물흐르듯 방관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영화 첫 벨 보안관의 나레이션이 그렇죠. 그가 중간에 가벼운 법규를 위반한 사람을 만나 철저히 처벌하지 않는 모습도 그렇습니다.
<영화 마지막 꿈의 의미>
저는 이 영화의 의도를 생각해볼때 자기 자신은 돈을 받았는데 잃어버릴 정도로 힘없는 노인을 상징하고 자신보다 젊게 나온 아버지는 르웰린 모스와 같은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오솔길을 먼저 앞서서 달려가 마을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을거란 기대는 염세주의적 생각에 반하는 일이죠. 그런 생각을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보여주면서 세상이 어떤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것 같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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