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아카이브가 필요한 이유.

저는 다시 독립영화관들을 돌고 있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정권이 바뀌며 불안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묘하게도 영화산업이 약간의 활기를 띄고 있다는 것이죠. 물론 코로나가 발목을 잡긴했어도 약간씩 활기를 찾은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독립영화관들의 이야기와 별개로 흥미롭게 혹은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곳이 있으니 원주의 아카데미극장 입니다. 몇 년전에는 그냥 이런 극장들이 사라지면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비지니스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씁쓸하긴 했죠. 그렇게 서대문 드림시네마, 종로의 씨네코아, 코아아트홀, 중앙시네마... 그리고 대학로의 하이퍼텍 나다, 광화문 아트선재시네마 등을 보냈습니다. 대체할 극장들이 생겨났지만 드림시네마처럼 독특한 형태의 2층 극장도 사라졌고요, 스카라 극장도 보존가치가 있음에도 건물주는 포기하고 주차장 용도로 바꾸기도 했죠. (현재는 모 신문사의 본사가 위치했고요.) 

아카데미극장은 좀 다른 경우입니다. 건물주가 극장을 팔지 않았으며 재개발의 이유도 아닙니다. 극장은 시의 자산이 되었고 시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더니 시장이 바뀌며 상황이 바뀌었죠. 영상자료원은 이 극장의 가치를 유튜브로 소개했고요. 영진위는 문화유산으로 보존가치가 충분하다고 문화제청에 지정문화제 지정의견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앞에 소개했던 스카라극장도 2005년 근대문화제로 지정할 것이라 얘기했지만 건물주는 이 얘기를 무시합니다. 관리비가 감당이 안되니 철거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기습철거 되었습니다.

얼마전 '킴스 비디오'라는 다큐를 봤습니다. 희귀 비디오 영상들을 비디오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처리가 곤란해지자 김용만 대표는 이 자료들을 기증할테니 가져갈 단체나 기관을 모집하는 것이었죠. 의외로 대학교들의 신청이 많았지만 그가 거절한 이유는 대학교들이 자신들의 자산으로만 활용하고 외부인에게는 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 방침이 김 대표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죠. 결국 이탈리아의 어느 작은 마을에 그의 가게 이름을 딴 센터가 지어집니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기뻐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천장에서 누수가 되고 천장의 물들을 맞아가며 자료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죠. 다시 그 자료를 되찾고 디지털화하는 데이터를 만들고 있다는 김 대표의 이야기를 GV에서 들었습니다. 센터는 문을 닫았지만 이탈리아 살레미 청년들은 이대로 보내긴 아쉬워 영화제를 열고 그런 실수가 반복되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영화자료 즉, 아카이브는 매우 중요한 것들이라는 것이죠. 이는 희귀 영상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건물자체가 중요하다면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이죠. 광주극장은 이를 잘 활용한 대표적인 예인데 2층과 3층은 아카이브의 성격을 띄고 있죠. 과거 간판기사가 만든 손글씨 개봉관 간판들이 보존되어 있고 시대상을 나타내는 사진과 그시절 영화티켓, 좌석들이 전시되어 있죠. 아카데미극장의 경우도 비슷한데 내부에는 많은 자료들이 숨겨져 있고 원주시가 강제 폐쇄되기 이전까지 이 시설들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전 원주시는 꼭두새벽에 기습적으로 용달차량을 불러 강제로 이들 짐을 실어가려는 시도를 합니다. 네, 이것도 분명 절도이며 불법이죠. 

공고롭게도 이 사건은 영진위가 부산영화제 특별행사로 이들 자료들을 전시하겠다고 원주시에 공문을 보내기 몇 일 전입니다. 결국 영진위의 이 공문을 무시하고 불법으로 이들 아카이브에 해당하는 자료들을 무단으로 가져가겠다는 것이죠. 

저는 영화 혹은 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의 GV가 있는자리에는 아카데미극장의 이야기를 자주하곤 했습니다. 그 빈도가 높아졌죠. 아카이브가 지켜져야 하는 이유와 생각을 김용만 대표에게 질문과 더불어 의견을 드렸고 그에 대해서는 이런 아카이브가 무시되는 상황은 과거와 지금이나 마찬가지 인 것 같다며 공감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싸움에서도 이런 자료를 지키고 아카이브화 하려는 이들이 분명 승리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해주셨죠. 

지방에도 많은 토종 대형극장들이 사라졌습니다. 시장경제의 이유로 그 자리엔 멀티플렉스들이 생겼습니다.

네, 어쩔 수 없는 현상이죠. 하지만 적어도 가치가 있는 극장과 그 안의 자료들은 보호를 해줘야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래전 서대문 드림시네마를 좋아했던 분들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시사회를 하던 곳이었지만 실버극장으로 운영하면서 사랑방 역할을 했던 곳이 개발의 이름으로 사라지니 아쉽다고. 건물주의 최후통첩에 극장운영주는 삭발식까지 해야했습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현재 아카데미극장에서는 천막농성과 진실을 알리는 노란텐트를 운영중이며 원주시청 앞에서는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갔습니다. 

그깟 극장 하나 때문에 왜 그러지라고 물으실겁니다.  여러분이 취미로 좋아하던 물건, 음식, 장소가 사라진다고 생각해보시 바랍니다. ‘그냥 추억으로 묻어두지’라고 말하기엔 억울한 것들도 있죠. 원주아카데미가 그렇고 지역의 어딘가의 독립영화관들의 상황이기도 합니다. 한번쯤, 잠시만이라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심이 어떨까요? 

영화를 트는 공간, 영화와 함께 했던 물건들과 자료는 역사 그 이상이기 때문이죠. 영화의 영혼들이라도 모셔와야 할까요? 그래야 하는 상황이 씁쓸해집니다.

PS. 앞에 언급한 ‘킴스 비디오‘ GV애는 의외의 분이 관객석에 있었는데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이자 전직 영화감독인 김홍준 씨였죠. 김용만 대표에게 영화 자료좀 더 많이 영자원에 보내달라는 재치있는 맨트를 주셨는데 실제로 김 대표는 영자원 측에 만여편이 넘는 자료를 기증하셨습니다. 다시한번 아카이브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죠.

#킴스비디오 #원주아카데미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