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cbaa7f9fa58a75c.jpg

미쓰 홍당무 이경미 감독의 남편으로 유명한

아일랜드인 피어스 콘란이

책 "필수는 곤란해"에서 쓴 글입니다

 

1.

한국 작가들은 영화, 드라마 가릴 것 없이 수십 년간 이런 틀에서 성공했다. 조폭 이야기로 포장한 가족 코미디(‘조폭마누라’ 시리즈 등)는 셀 수 없이 많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로맨스와 가족 스토리(〈시월애〉 등)도 끝없이 나온다.


예전에도 이런 이야기들에 가끔 판타지가 더해진 경우가 있었지만, 이제 한국 영화와 드라마 산업은 이 틀을 훨씬 큰 스케일에서, 야심 차고 돈이 많이 들어간 SF나 재난 스토리로 펼치려고 한다. 문제는, 걷기도 전에 뛰려고 하는 것이다.


2.

요즘 한국 영화감독들 사이에서 놀런 영화들의 영향력은 독보적이다. 한스 치머의 음악은 물론, 놀런의 서사와 기법들이 한국 영화 전반에 묻어난다(들리기도 한다). 〈인터스텔라〉 덕분에 한국의 이야기꾼들이 SF 영화 실험을 하게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초라한 결과를 보면 이들 중 아무도 〈인터스텔라〉가 왜 잘됐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만하다(나는 지금도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아이처럼 운다).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SF의 서사 기법과 스펙터클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이미 천 번도 더 본 신파적 이야기를 포장하는 데 이용한다. 가족 중심의 작은 이야기가 넓은 배경에서 시작하는데, 그 영역이 조금씩 쪼그라들어, 손바닥에 담길 정도로 조그마한 감상적 감정 덩어리만 남게 된다.


3.

〈판도라: 조작된 낙원〉은 연속극의 연출에 SF 요소를 가미하려 했지만, 제작진들이 SF를 안 좋아한다는 느낌이 든다. 최소한 SF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점은 아주 명확하다. 

 

막장과 SF는 물과 기름 같다. 섞이지 않는다. 언젠가 천재적인 인물이 나와서 내가 틀렸다는 걸 증명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 이 두 장르는 목적이 다르다. 막장은 우리가 논리의 틀에서 벗어나 감정의 천장과 바닥을 오갈 수 있게 해준다. SF에는 인물을 뛰어넘는 뭔가가 있어야 하며, 나름의 합리성과 논리를 따라가지 않으면 무너진다.

 

 

18cbaaaa4e858a75c.jpg

SF를 제대로 다루는 한국 감독은 몇 안 된다. 봉준호 감독은 물론 SF를 안다. 〈괴물〉은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가족이 딸을 찾아 서울을 누비는데, 찾아다니는 곳마다 딸은 없고 한국 사회와 역사의 문제들이 드러난다. 〈설국열차〉는 실패한 사회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거대한 은유이다. 아시모프도 이렇게는 못 했을 것이다.

 

칭찬한 케이스는 봉준호 감독님이셨습니다 ㅎㅎㅎ

 


이전 다음 위로 아래로 스크랩 (2)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첨부
  • best LoveWins 2024.01.01 00:40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SF의 서사 기법과 스펙터클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이미 천 번도 더 본 신파적 이야기를 포장하는 데 이용한다. 가족 중심의 작은 이야기가 넓은 배경에서 시작하는데, 그 영역이 조금씩 쪼그라들어, 손바닥에 담길 정도로 조그마한 감상적 감정 덩어리만 남게 된다.

    이 대목에서 누굴 떠올려버렸고 크게 공감도 가네요
  • best LoveWins 2024.01.01 00:40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SF의 서사 기법과 스펙터클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이미 천 번도 더 본 신파적 이야기를 포장하는 데 이용한다. 가족 중심의 작은 이야기가 넓은 배경에서 시작하는데, 그 영역이 조금씩 쪼그라들어, 손바닥에 담길 정도로 조그마한 감상적 감정 덩어리만 남게 된다.

    이 대목에서 누굴 떠올려버렸고 크게 공감도 가네요
  • profile
    OvO 2024.01.01 00:43
    아시모프도 이렇게는 못 했을 것이다
    엄청난 찬사로군요 ㄷㄷ
  • @OvO님에게 보내는 답글
    레이진네만 2024.01.01 00:50
    sf 쪽에서 이 이상 가는 칭찬이 잇을까 싶을 정도로 극찬이죠 ㅋㅋㅋ
  • profile
    썽미니 2024.01.01 01:14
    공감이 되는 포인트들이 많네요!! 2번은 특히 저도 어릴 때부터 한스짐머를 보고 지금 24살에 영화음악에 도전해보고 있는데 한국은 요즘 다크나이트,인셉션 비슷한 질감의 영화음악들이 나오는데 한스짐머는 인터스텔라,듄까지 매번 자기자신을 뛰어넘으면서 SF 영화의 사운드를 재정의하고 있고.....ㄷㄷㄷㄷㄷ SF에서 놀란 감독의 영향력과 연출은 이미 한국 일반 대중들에게도 이정표, 기준표급으로 작용되죠..
  • profile
    카시모프 2024.01.01 02:26
    크게 공감되네요 ㅠㅠ
  • 클랜시 2024.01.01 03:35

    비단 SF뿐일까요... 세부 쟝르로 들어가면 연구나 애정 없이 겉만 핥고선

    대충 커버치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제작/창작자들 많죠. 

    그래도 영원히 안될거야 생각했던 분야도 시간 지나면서 척척 튀어나오는 재능들 보면 신기

  • profile
    괴물 2024.01.01 06:16
    원플원은 전 남아도는...
  • profile
    불꽃사내 2024.01.01 08:39
    저 분 의견에 어느 정도 공감은 하지만...
    신파가 나쁘다고 생각치 않아요.
    예로 든 인터스텔라야말로
    신파 요소 MAX인 이야기죠.
  • @불꽃사내님에게 보내는 답글
    BEAT 2024.01.01 09:39
    저분 의견도 신파가 나쁘다는게 아니라
    한국 sf영화는 결과적으로 신파‘만’ 남는게 문제라고
    지적하는 거 같습니다.
  • @BEAT님에게 보내는 답글
    바닷마을 2024.01.01 16:56
    저도 한국영화는 끝에 신파만 남는 거 같아요.
    sf 장르 자체가 큰 세계관이 가능한데 좁은 이야기로 끝나는ㅠ
    굳이 sf가 아니어도 되는 이야기가 많았죠.

List of Articles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파트너 계정 신청방법 및 가이드 file admin 2022.12.22 380741 94
공지 굿즈 소진 현황판 정리글 [158] 무비이즈프리 2022.08.15 1032508 175
공지 [CGV,MEGABOX,LOTTE CINEMA 정리] [38] file Bob 2022.09.18 385629 133
공지 💥💥무코 꿀기능 총정리💥💥 [103] file admin 2022.08.18 717532 202
공지 무코 활동을 하면서 알아두면 좋은 용어들 & 팁들 [63] admin 2022.08.17 466167 148
공지 게시판 최종 안내 v 1.5 [64] admin 2022.08.16 1100935 141
공지 (필독) 무코 통합 이용규칙 v 1.9 admin 2022.08.15 351982 169
더보기
칼럼 <퍼스트맨> - 만남이란 무엇인가 [12] file 카시모프 2022.08.19 1167 17
칼럼 [엘리멘탈] 음양오행설에 따른 줄거리해석2 (웨이드 시점의 궁합 / 스포) [7] file Nashira 2023.06.22 3518 18
현황판 인사이드 아웃2 굿즈 소진 현황판 [21] updatefile 너의영화는 2024.05.22 14698 24
현황판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번째 날 굿즈 소진 현황판 [3] updatefile 너의영화는 2024.06.14 1803 3
불판 6월 27일(목) 선착순 이벤트 불판 [1] new soosoo 17:09 2494 17
불판 6월 25일(화) 선착순 이벤트 불판 [42] Wowmovie 2024.06.24 12584 38
이벤트 <슈퍼배드4> ScreenX 최초 상영회 및 무대인사 초대 이벤트 (~6/26) [155] updatefile CJ4DPLEX 파트너 2024.06.20 5620 105
 [오멘]과 [비키퍼] 보고 이상해서 전세계 상영등급을 비교해 봤는데요. [11] file
image
2024.04.21 1814 13
영화정보  '존 윅 5' 초기 개발 중 [3] file
image
2023.05.27 1329 8
 '파묘' 장재현 감독 "'파묘2' 안 해…한국 뱀파이어 영화 만들 것" [9] file
image
Tio
2024.05.03 2234 19
​​​​​​​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4DX 효과표 대공개! - 익스트림!! [10] file
image
2023.06.14 1622 16
 <존 윅 4> 4D, IMAX, DOLBYCINEMA 상영 포맷 등록 [3] file
image
2023.03.24 868 10
후기/리뷰  Super Mario Bros. with 4DX  file
image
2023.04.30 342 0
영화잡담  오늘 열리는 서쿠중에서 무대인사 회차 있는 영화의 서쿠 [4] file
image
2024.04.09 1679 9
쏘핫  일본 여행 다녀왔습니다(기쿠지로의 여름, 초속5cm, 너의 이름은 성지순례) [10] file
image
2023.04.18 1548 21
영화잡담  지금까지 모은 전단지 [8] file
image
2024.05.30 828 6
영화정보  크리드3 개봉일.... [1]
2023.02.14 527 2
영화정보 `파묘` 베를린서 첫선…주실주의 혹은 `미스터리 버디무비` [1]
2024.02.17 1035 4
영화잡담 - [5]
2024.06.12 773 0
후기/리뷰 - [1] file
image
2022.11.14 777 5
영화잡담 - [ ] 인어공주 처음과 끝 질문 2개 (스포) [6]
2023.05.24 539 0
-[황정민 올해 최악의 매너 1위]- [26] file
image
2023.12.25 4424 14
영화잡담 -스포- 스파이더 4dx 후기 좋음과 애매함을 계속 왔다갔다 했네요 [1]
2023.06.22 697 1
영화관잡담 -펑 [9]
2024.01.05 1416 6
영화잡담 !! <탑건> 용아맥과 코돌비 고민중인데요 !! [20]
2022.08.26 607 5
영화잡담 !! 무코님 연락 바랍니다!!! [10]
2022.11.24 1140 2
영화잡담 !!!스포위험!!!) 저 파묘 스포 당한 걸까요 [5]
2024.02.20 1634 2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
/ 3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