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미 감독의 남편 피어스 콘란(일명 필수씨)이 남긴 연애편지인데 로맨틱해서 남겨봅니다 ㅋㅋㅋ
이경미 감독님에게
저는 스위스에서 독감과 싸울 때 감독님의 이상하고 놀라운 영화 세계에 입문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따뜻한 차와 닭고기 수프를 마시며 하루 종일 한국 영화를 볼 때였습니다.
고열에 시달리는 와중 유일하게 인상에 남은 영화가 〈미쓰 홍당무〉였습니다. 웃기고 마음이 편해지는 영화였지만, 한편으로는 묘하게 날카로운 면들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 영화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목소리에 빠져들게 되었죠. 나중에 우리가 그렇게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감독님의 다음 작품인 〈비밀은 없다〉를 기다리며 설렜던 기억도 납니다. 개봉일을 기다리며, 제 ‘Modern Korean Cinema(현대 한국 영화)’ 블로그에서 ‘올해 가장 기대되는 한국 영화’로 두 번이나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기쁘게도 시사회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솔직히 시사회에서는 자막이 없어서 고생하긴 했지만, 저는 영화에 반해버렸고 뒤풀이에 가면서도 영화 속 장면들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뒤풀이에서 저와 감독님 모두의 친구인 이원석 감독이 저를 붙잡아 세우고, 바로 사라졌다가 감독님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얼어붙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원석 감독은 우리를 서로 인사시키는 대신 뒤풀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한테 “여기! 이경미 새 남자친구입니다!”라고 목청껏 소리쳤죠.
그리고 정말 기쁘게도 시사회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솔직히 시사회에서는 자막이 없어서 고생하긴 했지만, 저는 영화에 반해버렸고 뒤풀이에 가면서도 영화 속 장면들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뒤풀이에서 저와 감독님 모두의 친구인 이원석 감독이 저를 붙잡아 세우고, 바로 사라졌다가 감독님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얼어붙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원석 감독은 우리를 서로 인사시키는 대신 뒤풀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한테 “여기! 이경미 새 남자친구입니다!”라고 목청껏 소리쳤죠.
이렇게 엄청나게 불편한 순간에서 우리가 바로 친해지지 않은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원석 감독의 장난으로 인해 의외의 일이 일어났죠. 이원석 감독은 그 후 〈킬링 로맨스〉를 연출하러 떠났지만, 그 순간 우리에게 삶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감독님의 무대 뒤에 제가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습니다. 저는 감독님의 창작 작업을 첫 줄에서 관람하고, 모든 작업의 부침도 함께합니다. 만들고 의심하고 부숴버리고, 생각의 조각들을 다시 조합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이경미 감독님의 작업물을 지켜보죠. 이 새로운 작업물이 이경미 감독님 당신을 통해 드러나고, 새로운 층을 만들며, 감독님에게 녹아듭니다.
감독님의 영화, 단편, 드라마가 바로 감독님입니다. 감독님은 작업에 스스로를 쏟아붓고, 그러다 보면 작업이라는 우물 속에 깊이 들어가서, 우물 바닥에 있는 뿌연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그 안에서 오래 머무는 감독님을 우물 위에서 바라보면, 감독님은 무아지경에 빠져서 주변의 모든 것과 단절된 것 같습니다.
우물 바닥에 있는 뿌연 거울은 결국 깨끗해집니다. 다시 스스로를 바라보고, 우물 밖으로 올라와, 감독님은 자신의 원동력인 새 프로젝트들을 가득 들고 있죠.
존경을 담아,
영원한 팬이
- <필수는 곤란해> (피어스 콘란 지음, 김민영 옮김)
너무 잘 봤습니다! 인내심 없이 기다릴께 라는 말이 뭔가 정겹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