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의 해부>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한 가족의 진실이 철저히 까발려지고 난도질당하는 내용의 사회 고발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 '진실'의 여러 단면들, 그에 대한 인물들의 태도를 다각도로 탐구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이 점에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도 조금 떠올랐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훨씬 취향에 맞았습니다.
꽤 많은 경우에 진실은 명명백백히 규명되기보다는 취사 선택되고 또 수용자의 시선에 맞게 윤색됩니다.
가장 깊게 관련된 당사자들이든, 미디어를 통해 가십을 소비하는 대중이든...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선택해서 '진실'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 영화는 한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이야기들이 법정이란 링 위에서 격돌하는 과정을 복잡하고 치열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주인공 '산드라'를 더없이 입체적인 인물로 완성해냅니다.
영화는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 곧 진실을 선택하는 모습을 거리감 있게 관조하며, 끝내 전지적 시점에서 본 사건의 진실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고 영화를 닫아버립니다.
호불호가 꽤나 갈릴 수 있는 결말이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마무리가 고레에다의 <괴물>보다 확연히 나은 지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24년 연말 결산에 꼭 언급할 만한 영화를 벌써 만나서 기분이 좋네요. 역시 마땅한 기대작이 없는 비수기는 영화 애호가들에겐 오히려 선물 같은 시기란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