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선하게 태어났을까요? 악하게 태어났을까요? 아니면 선악을 동시에 가지고 태어났을까요?
개인적으로 이분법적 사고를 혐오하는데(종교와 정치, 고착된 이데올로기와 신념, 유명인에 대한 잣대 등에 염증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함) 그러한 점에서 이 두 영화가 논하는 선악을 곱씹어봤을 때 오묘한 진리가 있는 듯 합니다.
인간이 규정한 선악의 개념조차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대자연 속에서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에 선과 악으로 판단될 수 없는 존재라고 얘기하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실존주의와 실증주의를 아우르는 관점으로 봤을 때 선과 악 또한 부여받은 것이 아닌 실질적 경험과 학습 속에서 순간순간의 선택(마치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에 놓인 choice인 것 처럼)에 따라 규정될 뿐이기에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 연민을 가져야 한다는 <가여운 것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 없다는 노래 가사도 있듯 인간을 인간이 결코 쉽게 규정할 수 없기에 이처럼 인간이라는 복잡미묘한 존재를 다각도로 끊임없이 탐구하고 이해해보도록 안내하는 것이 예술의 중요한 기능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로 표면적으로 선악을 구분 지으며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답을 내리는 영화들보다는 선함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악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 규정에 모순은 없는지, 과연 무엇이 진리인지, 내가 정답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신념만이 과연 정답인지, 여러 관점에서 고민해보게 만드는 영화들이 음미할수록 훨씬 매력적입니다.
대자연의 관점에서 선악의 윤리의식을 마치 숲에 드리운 운무처럼 뿌옇게 흐려놓은 다음,
(여자직원의 담배 때문에 산불난줄;;ㅋ)
가여운것들이 다른 두 동물을 이어붙인 것처럼 악존않도 다른 두 동물?의 관계를 이어붙인 듯 했어요.
그나저나 어제 <갓랜드>를 보는데 주제의식과 후반부가 비슷해서 굉장히 놀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