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로메르 영화의 특징을 몇가지 말해보자면
일상과 철학을 담은 밀도있고 상당한 양의 대사,
아름답고 운치있게 담아낸 풍경과 영상미,
감성과 낭만이 있는 여유로운 분위기,
우연을 통한 관계의 시작,
젊고 멋드러진 비주얼과 매력이 넘치는 배우들,
탄탄한 연출과 매끄러운 편집,
시대를 타지 않는 주제의 보편성과 세련됨,
소소하면서 난해하지 않은 이야기,
특유의 유쾌함과 수다스러움
등으로 인물 간의 관계와 내면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파고 듭니다.
올해 기획전 7편은 주로 여름, 그 중에서도 바캉스 휴가를 배경으로 하고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 <해변의 폴린>,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등이 입문작으로 부담없이 보기에 좋고 위의 작품들이 취향에 맞는다면 <녹색광선>,<비행사의 아내>,<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클레르의 무릎>까지 보시면 어떨까 생각들었습니다.
아래에 영화별로 간단하게 후기를 적어봤습니다.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시골에서 우연히 만난 레네트와 미라벨의 4개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여주인공의 우정과 티키타카, 개똥철학이 가득 담긴 대사들과 웃픈 상황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밌었습니다. 영화가 유쾌함과 귀여움, 사랑스러움으로 가득차있고 별거 없는 이야기같지만 거를 에피소드 없이 다 매력있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힐링이 되는 영화였습니다.
별점 : 4.2 / 5
<비행사의 아내>
파리의 두 여자와 한 남자, 크게보면 세 여자와 두 남자 간의 복잡한 남녀관계를 그리는 영화,
대사의 양이 많고 롱테이크로도 대사들이 속사포같이 쏟아져서 보다보면 조금 피곤한 느낌이 듭니다.
자유롭고 오픈 마인드를 가진 캐릭터들이 많아서 유교국 사람의 입장에서 초반에는 공감하거나 감정이입하기가 살짝 힘들기도 했습니다.
사건은 많지 않지만 빼곡한 대사들이 디테일하게 감정과 상황을 표현해줘서 대체로 몰입감이 좋았습니다.
추측과 가정, 망상 등으로 불확실하게 넘겨짚으면서 생기는 아리송하고 오묘한 인간 관계들을 보는 재미도 있고 사랑과 진실, 믿음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탐구하고, 더 나아가 삶에 대한 통찰력까지 던져 주는 게 좋았습니다.
두 여주인공들의 매력과 비주얼, 영상미와 여운을 남기는 엔딩도 인상적이었고 곰씹을수록 좋은 영화라고 생각이 듭니다.
별점 : 4 / 5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
파리 근교에서의 두 남자와 두 여자간의 연애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제목만 보면 막장같은 이야기를 다루는듯 했지만 실제로 보니 나름 그럴싸하면서 로맨틱하고 재기발랄한 내용이었습니다. 물흐르듯 매끄러운 편집과 잘짜여진 각본, 의상으로 감정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연출이 인상깊었습니다.
사랑과 우정, 욕망과 금기 사이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남녀들의 상황들이 귀엽고 재밌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봤고 전지적 시점에서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꽤나 기분좋게 보고 나온 영화이고 완성도도 훌륭하면서 에릭 로메르 감독의 장점이 극대화된 영화가 아닐까 생각드네요.
별점 : 4.5 / 5
<녹색 광선>
염세주의적인 관점에 우울하고 사회성 떨어지는 델핀이라는 한 여성에게 초점을 맞춘 영화,
음울한 분위기를 띄면서 드라마틱한 이야기보다는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씬들의 연속이라 답답한 느낌도 있고 약간 지루할만도 합니다.
혼자 있고 싶어도 혼자 있을 수 없는 필연적인 인간 관계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우연, 기적같은 현상으로 감정적인 부분을 깊게 파고들고,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여 위로와 희망적인 메세지를 주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장센과 연출, 마리 리비에르 배우의 연기도 정말 좋았고 왜 녹색광선을 대표작 중에 하나로 뽑는지 알겠더라구요. 로메르 작품 중에서도 호불호가 조금 갈린다고 알고 봤는데 저는 극호였던 영화였습니다.
별점 : 4.4 / 5
<클레르의 무릎>
작가인 피 실험자와 작품에 대한 영감을 제공하는 실험자인 결혼을 앞둔 남자가 두 소녀를 유혹하며 생기는 일을 그리는 영화,
제목만큼이나 원초적이고 충동적인 욕구를 소재로 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기도 하고 인간 내면을 심리학적으로 깊게 탐구합니다. 미장센과 심리묘사도 훌륭했지만 허세와 위선, 자기합리화 등 나르시시즘으로 가득찬 남주인공을 보는게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고 소재와 내용면에서도 호불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덕적인 관점에 따라 약간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걸 빼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이번 7편 중에서는 무난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별점 : 3.3
<해변의 폴린>
해변가에서 벌어지는 여러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오지랖, 질투, 거짓말 등이 난무하는 사랑의 전쟁통에 잠깐 들어갔다 나온게 마치 나는 솔로를 보는듯한 영화였습니다.
절대 남을 이해할 수 없고 정답이란게 없는, 내로남불적인 마인드를 가진 여러 캐릭터들을 그리면서 동시에 소녀의 성장담을 그린 것도 좋았고 편집과 각본도 탁월해서 자칫하면 어지러울 수 있는 내용을 잘 엮어냈고 지루할틈 없이 재밌게 봤습니다.
깔끔한 마무리도 좋았고 <내 여자친구의 남자 친구>에 이어 에릭 로메르의 장점이 도드라진 영화가 아닌가 싶네요.
별점 : 4.3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독실한 미혼 가톨릭 남성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여자친구와 어쩌다가 하루를 같이 보내면서 생기는 일을 그리는 영화, 이번 기획전 7편 중에서 혼자만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흑백 영화에 유머도 비교적 적습니다.
초반부는 호흡이 느려서 조금 지루했는데 초중반부부터 가치관이 서로 다르지만 모드라는 매력적인 여성과 만나면서 생기는 여러 대화들에 금새 흥미가 생겼습니다.
특별한 만남을 계기로 매사에 종교적이고 계산적이고 꽉 막힌 남성이 비로소 현실을 인지하면서 변화하는 과정과 자기고집과 신념의 벽을 부수면서 진행되는 사랑이야기를 현실적이면서 가슴 벅차게 다룬게 좋았습니다.
후반부의 나레이션과 복잡 미묘한 엔딩도 인상깊었고 높은 체급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영화였습니다.
별점 : 4.2 / 5
총평 : 예술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꼭 접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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