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카를 보고나니 그 차에 함께 올라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저도 운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등학교 때 입시 준비를 하면서 가장 많이 읽었던 책 중에 하나가 체홉의 갈매기였는데
갈매기와 함께 4대 장막극으로 불리는 바냐아저씨 연극을 준비하는 내용이었다는 게 인상적이었고
저 역시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체홉 작품 중에서도 바냐아저씨를 가장 좋아했는데
좋아했던 만큼 아무때나 덥썩 펼치고 싶지 않은, 마음 깊숙히 간직하고 싶은
그런 희곡이었어요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내용은 고등학생이던 저에게 특별하게 다가왔고
하지만 어른이 되어 무미건조하게 살다보니
그런건 더이상 특별할 것 없는 게 된 것 같아요
가후쿠가 바냐를 마주하기 힘들어했던 것처럼
저도 마음 열고 대면하기가 힘든 희곡이었고
지금은 연극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러 이유로 바냐아저씨도, 고도를 기다리며도 원픽이었지만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선뜻 다가가기 힘든 작품이 되었기에
영화 내내 재생되는 바냐아저씨가 조금은 버겁기도 했습니다
학교다닐 때가 떠올랐어요
1학년 수업 때 교수님께서 이 영화에서처럼 건조하게 최대한 감정을 빼고
한 단어, 한 단어 읽어내려가라고 하셨는데
그럴 때 어느 순간
한마디 대사를 꺼내는 것 조차 무겁고 어려워지는 순간이 오는데
한 단어밖에 말하지 못하더라도
진짜로 '본다는 것'의 의미를 배우던 수업이 기억나더라구요
그게 이 영화와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 초반 가후쿠의 아이가 죽었다는 게 알려지면서 우연이나 운명에 대한 영화인가 싶었어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내 의지가 아니듯
고작 걷고 뛰는 게 전부인 어린 아이가 죽는 것 역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운명이나 순리같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영화일까 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걸린 녹내장 역시 그런 통제할 수 없는
삶의 흐름이라는 연장선상에서 보여주는 것 같았고
우연찮게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하루 연기됐다는 전화를 받게되고,
그래서 집으로 갔더니 아내의 외도를 발견하게 되고
모든게 우연의 법칙 같았어요
높은 곳에서 빨간 가후쿠의 차를 팔로우 하는 장면들 역시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의 시각 같아서
저역시 가후쿠의 일상을 내려다보게 되더라구요
광활한 도로를 달리는 풍경이 어딘가 상쾌한 기분도 들면서
지금 달리고 있는 그 길 외엔 다른 길로는 갈 수 없는
도로 위를 달리는 운전자의 숙명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끊임없이 달리는데 지금 가고 있는 길 외엔 다른 선택지도, 방향도, 유턴도 없는,
구불구불 어지러운 도로 따위는 없는 게 낯설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밖에서 내려다볼 땐 잘 닦이고 쾌적한 도로처럼 보이지만
차 안으로 들어가면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있는 영화의 큰 틀이 인상적이었고
아픈 역사를 간직한 히로시마 드라이브와
온통 하얀 색으로 뒤덮인 운전수의 고향에 가서 폐허가 된 집을 바라보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마지막에 한국으로 와서 드라이브를 이어가는 운전수를 보면서..
너무 아름답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이제 녹내장이 악화되어 더이상 운전을 할 수 없...
그런 상상도 해봤습니다...ㅎㅎ
대본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용도 너무 좋았고 방대한 이야기를 듣고 온 것 같아서 탄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용에 비해 생각보다 묵직한 여운이나 마음을 짓누르는 감정이 들진 않았어요
호 이긴 하지만 생각보다는 머리로 받아들이는 게 큰 영화였고
그런 측면에서는 드라이브 마이카 보다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더 기억에 남을 것 같긴 해요
그건 어쩌면 가후쿠처럼 제 자신을 진심으로 마주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
폐허가 된 마음과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 같은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아 나는 운전을 더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도 드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