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쉰들러 리스트>는 보셨는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2002년작 <피아니스트>를 안 보신 분이 있다면 종영하기 전에 꼭 사운드 좋은 메가박스 상영관을 찾아서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고등학생 때 TV에서 스쳐가듯 보고 거의 20년 만에 이 영화를 작정하고 제대로 관람했는데 개인적으론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다룬 영화 중 최고작이자, 실존 음악가를 다룬 영화 중 가장 위대한 영화로 꼽고 싶을 만큼 걸작입니다.
일단 이 영화는 플롯이 군더더기 없이 완벽합니다. 누가 보더라도 기승전결이 뚜렷할 정도로 영화가 쉽고 간결하면서도 호흡이나 만듦새에 있어서는 엄청난 내공이 느껴집니다. 유태인 음악가 스필만이 가족과 생이별을 맞이하기까지의 전반부, 도망자 신세가 되어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중반부, 독일군 장교와의 만남과 종전을 그린 후반부가 2시간 30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을 무색케 할 만큼 물 흐르듯 지나갑니다.
특히 중반부에 유독 암전이 잦은데,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치열한 전쟁과 학살 속에서 생존을 위해 버티는 주인공의 처절하고 지난한 시간에 동참하게 하면서도 마치 오래된 서적을 한 페이지씩 넘기듯 지나친 몰입을 적절히 차단하며 이 영화가 실존 인물의 생존 기록이라는 점을 재차 각인시키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또한 휴머니즘과 러브라인 같은 신파적 요소도 철저하게 배제한채 실화라는 바탕 위에 촘촘히 짜여진 플롯을 따라 이야기를 또각또각 전개해나갑니다. 그 가운데 페이소스와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며 관객의 감정적 파고를 조율하는 노련미가 돋보입니다. 직접 찾아보시라는 뜻으로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페이소스와 실소를 자아내는 아이러닉한 몇몇 장면들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색깔도 느껴집니다. 이런저런 논란이 많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지만 당시 칸과 아카데미가 그랬듯 이 영화 만큼은 인정해주고 박수쳐줘야 합니다.
최근 개봉 및 재개봉작이자 앞서 언급한 홀로코스트 영화 두편과 여러모로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역사적 관점으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의 바르샤바(피아니스트), 크라쿠프(쉰들러 리스트)에서 몰아친 핏빛 소용돌이와 이것에 방점을 찍는 아우슈비츠(존 오브 인터레스트)까지 같은 시간, 다른 공간을 관통하며 인간이 저지른 가장 잔혹한 비극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를 상기해보는 동시에 생과 사는 무엇인가 머리와 가슴으로 묵상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세 영화의 결은 완전히 다릅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살아가기', <쉰들러 리스트>가 '살려내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피아니스트>는 '살아남기'를 담아내는데 주력합니다. 다른 두 작품이 홀로코스트를 지휘하거나 연루된 독일인들의 관점에서 각각 메타포적 장치와 다큐적 기법으로 다른 의미의 생존을 그려내고 있다면, 이 영화는 한 유대인의 관점으로 "도대체 이 비극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읊조리며 오직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생존을 묘사하는데 집중합니다. 생존해야 하는 이유도 목적도 생략한채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의 진짜 전쟁은 독일군과 연합군의 전투도, 바르샤바 점령군과 반군의 게릴라전도 아닙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주인공의 고군분투 그 자체입니다. 배경과 제목을 놓고 봤을 때 이 영화에 예상되는 휴머니즘? 유대인 음악가로서의 아이덴티티? 음악과 예술의 가치? 이러한 고차원적인 테마는 당장 독일군을 피해 도망치고 먹을 음식과 숨을 집이 필요한 인물의 뒤편으로 영화 내내 싹 밀어놓았다가, 후반부에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딱 필요한 만큼만 필살기처럼 꺼내서 핵폭탄처럼 터뜨립니다. 고로 다른 두 작품들 보다 더 몰입감 있고 설득력 있으며 감정적 울림 또한 거대합니다.
이 영화로 유명세를 얻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까지 수상한 애드리언 브로디의 섬세한 연기는 물론이고 국산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실존 독일인 기자역을 맡아 우리에게 호감을 준 배우 토머스 크레치만의 존재감 또한 이 영화를 빛내는 일등공신입니다.
최대한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도무지 간단해질 수 없을 만큼 모든 면에서 훌륭한 영화이니 OTT가 아닌 영화관에서 꼭 관람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별점 및 한줄평:
●●●●●(5/5) 인물, 전쟁, 그리고 음악은 이렇게 다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