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마음에 들어서라기보다는 완전히 이해가 안 됐던 부분들이 있어서 재관람했는데, 이 영화의 장단점을 짚어보며 상세 후기를 남깁니다.
일단, 크고 작은 패러디 혹은 오마주가 기가 막힙니다. 1회차 때 안 보였던 부분들도 눈에 띄었는데 특히 <아마겟돈>과 <스파이더맨 2>를 동시에 오마주한 클라이맥스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웨슬리 스나입스, 제니퍼 가너, 채닝 테이텀 등에 가려져서 안보였던 매튜 맥커너히 같은 숨겨진 카메오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의 오스카 수상작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를 오마주한듯 보이는 카우보이 버전 데드풀로 등장하여 함께 호흡을 맞추었던 자레드 레토의 명대사 "I don't wanna die!"를 외치며 날아가는게 참 깨알같네요. 카메라 워크는 하필 또 <올드보이>를 절묘하게 오마주한데다가ㅎㅎ 마치 90년대 레슬리 닐슨의 패러디 영화들을 보는듯한 잔재미가 확실합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파면 팔수록 또다른 소소한 패러디 요소들이 눈에 띌 것 같네요. 데드풀과 울버린 및 엑스맨 관련 영화들 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까지 다채로운 장르의 다양한 영화들을 섭렵해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영화가 틀림 없습니다. 폭스 시절의 두 배우 및 동료들의 모습을 담은 쿠키는 다시 봐도 촉촉하네요.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귀에 익은 팝송들과 함께 맛깔나게 버무린 액션신인 것 같습니다. 특히 엔싱크의 <Bye Bye Bye >에 맞추어 칼춤 추듯 뼈다귀 액션을 선보이는 오프닝 시퀀스와, <위대한 쇼맨> 오프닝곡으로 살짝 페이크를 주었다가 뮤지컬 영화의 고전 <그리스>의 듀엣곡 <You're the one that I want>를 배경으로 깔아놓고 한바탕 펼치는 자동차 칼부림씬은 볼수록 도파민 팡팡 터집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독립적인 내러티브를 가진 히어로 무비로서 별 매력이 없습니다. 멀티버스를 호기롭게 비꼬면서도 정작 '악당으로부터 멀티버스를 사수하여 나의 세계와 친구들을 지킨다. 그게 바로 영웅이다.'는 사골같은 공식을 또 따라가며 결국 누워서 침 뱉는 꼴이 되고 맙니다. 폭스의 잊혀진 히어로들을 카메오로 소환하여 소싯적 액션을 선보이는 팬서비스 또한 감흥을 선사하기엔 충분하나 딱 그만큼의 기능을 하는데까지만 소비됩니다.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에서 단순한 서프라이즈를 넘어 상실감에 허우적대는 톰 홀랜드에게 동질감을 바탕으로 한 위로와 용기를 주며 한 단계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토비 맥과이어, 앤드루 가필드의 존재감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는 카메오들의 등장에 서사적 설득력이 빈약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화려한 등장이 무색할 만큼 퇴장은 기억조차 잘 나질 않습니다. 멀티버스 사가 이후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봤던 두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의 경우에 시리즈 혹은 멀티버스라는 요소로 세계관을 연장, 공유하고 있지만 독립적인 영화 한편으로 보더라도 내러티브가 꽤나 매끄럽고 탄탄하여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반면 이 영화는 유머와 패러디, 액션, 카메오 등장의 포인트들을 제외하면 그 포인트들을 이어가는 영화 내적인 내러티브의 힘이 달립니다. 이 영화가 의외로 루즈하게 느껴지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쉽게 말해 점들은 반짝이지만 점들을 연결하는 선이 흐릿하다는 게 이 영화가 마블의 구세주가 되기에는 역부족인 이유입니다.
1회차 관람 후기에도 언급했듯, 수많은 히어로들을 양산해내어 전세계 팬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마블 코믹스를 둘러싼 헐리웃 스튜디오 산업의 행보 상기 및 아직도 헐리웃 영화의 상징으로 전세계 영화팬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20세기 폭스사를 향한 재치있는 추모, 이렇게 소기의 기획 의도는 넉넉하게 달성한 평작 정도로 평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