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었습니다.
그간 마이클 베이에 시달려 온 탓인지 완성도도 높고, 새로운 장이지만 기존 시리즈의 프리퀄로 봐도 무방할 만큼 가려운 곳들을 긁어준 점도 좋았습니다.
외형들도 몇몇 소소한 부분을 제외하면 거부감 없이 다들 디자인이 나쁘지 않았고, 큰 줄기와 함께 캐릭터 간의 관계와 계급사회를 논하는 서브플롯 역시 훌륭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남겨진 IP를 존중하는 모습이 보였던 게 전반적으로 맘에 들었어요.
어.. 근데 후반부에 접어들며 뭐랄까 좀 서둘러 급마물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요..
시간에 쫓긴 건지 뭔지는 몰라도 조금 더 공을 들여 설명하고자 했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재밌게 즐겼으면서도 뒷맛은 씁쓸한, 후반의 강렬한 역겨움 때문에 앞쪽의 즐거움이 퇴색해버린 그런 애매한 작품이 돼버렸습니다.
혹시 또 모르죠. 뱁새가 황새의 뜻을 알 리 없으니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조차 다 의도된 하나의 큰 틀이었는지.
아무튼 제게 이런 애매한 경험을 안겨준 전말은 이렇습니다.
의문에 싸여있던 모종의 사건들이 일단락된 후, 메가트론이 반민특위를 열자고 하는데 옵티머스가 [응 나 이제 프라임이야~ 그딴 거 안 돼~] 시전.
그래서 이완용은 살려두고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는 자유의 오토봇~ 노래 부르면서 애들 선동,
[너는 저항군 데리고 꺼져] 이러믄서 메가트론을 아이아콘에서 추방;; 결과적으로 국민들을 좌우로 양분해버린 사이버트론 분단의 원흉이 되고 말죠...
이게 요약드립이 아니라 진짜 작중 묘사가 이래요; 메가트론은 강성파라서 애초에 깜냥이 못되지만, 옵티머스 이 놈도 프라임 자격이 없는 건 마찬가지.
반민특위를 못열게 막은 것부터가 일단 첫 단추를 잘못 꿴 거고, 설사 그게 맞다 쳐도 강성파를 그냥 추방하는 건 대놓고 전쟁하잔 소리밖에 안 되거든요.
윗자리를 차지한 프라임이란 자가 그렇게 편의대로 판단하고 실행하니까 사이버트론이 멸망한 거 아니겠습니까.
메가트론이 과격한 건 맞습니다.
다만 그건 방식의 차이일 뿐이고,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고 국민의 고혈을 쥐어짜 권력을 유지해 온 센티넬과 그 부역자들, 그리고 그의 상징인 의회건물을 부수자]는 주장은 타당했건만,
옵티머스는 과격한 메가트론과 함께 그런 주장까지 추방해버리는 악수를 둡니다.
옵티머스는 과격하지 않은 방식으로 메가트론의 주장을 어느 정도 수용했어야 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오히려 그에게 빨갱이 프레임을 씌워 내쫓았습니다.
덕분에 아이아콘에서 매국노 처리에 대한 논의 자체가 힘을 잃고, 나아가 사이버트론 전체가 반으로 갈라져 싸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 거에요.
프라임으로서 폭넓은 논의와 재고가 필요한, 아주 진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임에도 너무 어린이명작동화 같은 분위기로 번갯불에 콩 궈먹듯 선과 악을 이분해 대입시켰어요.
이제 관객들의 기억엔 '메가트론은 신성한 땅에서 추방된 악을 추종하는 디셉티콘'만 남은 겁니다. 옳은 말을 하면 집단에서 쫓겨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건 덤.
특히 연령층이 낮은 경우엔 뇌리에 완전히 각인될 거에요. 옵티머스 착한오빠.. 메가트론 나쁜새끼.. 나는 선 너는 악..
과정은 휘발되고 결과만 남은 본작 <트랜스포머 원>은 제게도 이런 불명예스러운 감상으로 남게 되었네요.
뭐 그래도 속편 나오면 궁금하니까 또 헤헤거리며 보러 갈 거지만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