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제 블로그 글을 퍼온 것임을 밝힙니다.
코엔 형제의 스릴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여타 유사한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작품입니다. 동명의 원작 도서가 있다고 듣긴 했는데 책을 읽거나 미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이해가 더 용이하다고 하네요. 저는 책도 읽지 않았고 미국 근대사에 대해서도 기억이 잘 나지 않기 때문에 순전히 영화를 보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누가 노인인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요소, 우연과 예측의 대립입니다. 먼저, 안톤 쉬거는 우연을 의미하는 빌런이라고 여겨질 수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르웰린 모스는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고, 에드 톰 벨 보안관은 겉보기에도 노인입니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노인’이 과거의 경험과 상식에 근거하여 룰을 만들어 행동하고 사고하는 일반적 지성인을 의미한다면 우연의 상징으로 보이는 안톤 쉬거 또한 노인을 표현하는 한 인물에 불과합니다. 모든 것을 임기응변적 태도와 우연에 바탕을 두는 듯한 안톤 쉬거의 행동거지는 되려 그가 작중에서 가장 규칙적인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르웰린의 아내 칼라 진 모스가 살인마의 손에 죽기 전 “동전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결정한다.”라고 던진 말은 목숨을 고작 동전 던지기 확률에 불과하는 하찮은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안톤 쉬거가 진정한 우연인 돈(동전)에 본인의 규칙을 통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동전 그 자체로는 우연이지만, 동전의 앞뒤를 보고 생사를 결정짓는 것은 다름 아닌 안톤 쉬거의 룰입니다. 다른 장면을 봐도 안톤 쉬거는 자신이 나아가는 길에 끼어들어 있는 사람들을 죽입니다. 르웰린의 거주를 묻고자 할 때 할머니는 살려둔 것은 그 순간 화장실에 있던 사람은 자신의 일과 관련이 없었기에 더 큰일을 벌이지 않고자 하는 그의 룰에 따른 결과입니다. 결말부에서 안톤 쉬거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교통사고를 당하고 물러나게 되는데 그 또한 우연에 의해 끔찍한 변을 당하는 것이죠. 결국 등장인물 모두가 노인으로 표현됩니다.
# 돈(money)
등장인물들이 경험과 상식, 그에 따른 룰에 기반하여 살아가는 노인이라면 우연은 무엇인가? 우연은 돈입니다. 르웰린 모스가 의도치 않게 발견한 돈 가방은 그의 삶을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게 바꿔버립니다. 멕시코 갱단에 쫓기고 안톤 쉬거에게 쫓기고 칼슨 웰스와도 엮이며 끝없는 도망과 사투를 벌이게 되죠. 돈에 동전의 개념을 포함시킨다면 이 또한 우연입니다. 안톤 쉬거는 우연의 상징인 동전을 통해서 자신의 룰에 따라 타인의 삶과 죽음을 단정 짓습니다. 안톤 쉬거의 결정이 우연이 아니라 동전이 돌아 손에 안착하는 것이 우연입니다.
# 보안관의 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장인물이 노인이고 돈이 우연이라면, 에드 톰 벨 보안관이 마지막에 꿨던 꿈은 영화의 제목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입니다. 아버지가 꿈속에서 주신 돈은 우연과 혼돈을 뜻하는데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꿈속의 에드 톰 벨은 암묵지적 경험에 따라 행동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로 꿈속에서 아버지는 그를 앞질러 횃불을 들고 가셨습니다. 뒤이어 일어날 일에 대한 합리적인 예측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둘 다 한낱 꿈입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통한 예측이 불가능하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우연과 혼돈의 세상이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개봉일. 2008.02.21
장르. 범죄, 스릴러, 드라마
감독 코엔 형제
주연 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조쉬 브롤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