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한마디로 배리(플래시)가 과거에 강도살인을 당한 엄마를 살리기 위해 과거의 어떤 일을 바꿨다가 대환장에 빠지게 되어 그 대환장을 바로 잡으려고 눈물을 머금고 엄마가 죽은 과거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이런 내용의 이야기가 플래시가 처음은 아닙니다.
영화 내내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배리가 결국 깨달은 것은 누구도 과거를 되돌릴 수 없고, 설사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맞는 이야기이고 만고의 진리이겠지요. 그렇게 죽도록 고생해서 결국 강도살인을 당한 엄마를 보내놓고는 엄마의 강도살인의 누명을 쓴 아빠를 구하기 위해 또 다시 과거에 개입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현재 아빠는 과거 엄마의 강도살인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감옥에 복역 중입니다.
배리는 아빠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웨인사의 첨단 기술을 이용해서 아빠의 결백을 밝힐 유일한 증거였던 마트 CCTV를 복원했는데 아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그마저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배리는 매우 낙담을 하죠.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 엄마를 살리기 위한 모든 사건이 일단락 되고, 결국 배리는 죽은 엄마를 살리는 일은 역사를 바꾸는 일로 현실세계, 더 나아가 우주 전체에 엄청난 혼란과 위험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눈물을 머금고 엄마를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 아빠의 무죄를 밝히기 위한 법정에서 마트 CCTV를 재생하는데, 영화 초반에는 야구모자를 쓰고 선반 아래쪽의 토마토캔을 집느라 얼굴이 보이지 않던 아빠의 얼굴이 선반 위쪽의 토마토캔을 집느라 선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아빠는 엄마가 강도살인을 당한 시간에 마트에 있었다는 게 증명되어 무죄가 됩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 안 됩니다.ㅠㅠ
2시간 넘는 이야기를 통해 결국, 과거의 일을 바꾸면 대환장 혼란이 온다는 사실을 알려 놓고, 그래서 주인공도 죽을만큼 싫지만,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고 자신이 바꾸려 했던 과거를 원래대로 되돌렸는데, 그리고 나서 아빠의 결백을 밝히려고 또 다시 과거에 개입한다?????
이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설정이고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 전개입니다.
관객이 2시간 넘게 봐왔던 이야기는 다 뭐란 말입니까?
그리고 주인공이 그토록 험난한 고난을 겪고 깨달은 사실을 도루묵으로 만드는 일을 자신의 손으로 또 다시 저지른다는 게 도무지 말이 되는 일일까요?
이 이야기대로라면 주인공 배리는 과거에 어떤 개입도 하지 않고 현재로 와서 아빠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더 나은 노력을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배리는 엄마를 보내고 대신 토마토 캔을 선반 위쪽으로 배치해서 아빠의 얼굴이 CCTV에 선명하게 찍히게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를 바꿔서 대환장을 겪었던, 더 나아가 우주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위험을 깨달은 배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지금 장난하나? 이런 식으로 깃털처럼 가볍게 이야기를 몰아가도 되는 건가?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현재의 배리가 과거의 배리와 마주하는 설정 또한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이라 둘이 붙어서 다닐 때부터 도저히 몰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재의 인물이 과거로 돌아가는 그 수많은 타임슬립 영화들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수많은 물리학자들 조차도 타임머신이 만들어져서 과거나 미래로 가게 되더라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자기 자신과의 조우인데 이를 이렇게 뻔뻔하게 밀어부칠 수가 있다니요?
배리 자신이 그토록 인용하던, 1987년에 만들어진 백투더퓨처의 마티도 과거로 돌아가서 대환장을 겪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절대로 자기 자신과 조우하는 일 만큼은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서 절대적인 금기로 여겨지는 일이 자기 자신과의 조우나 접촉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그 수많은 타임슬립 영화들에서 우리가 했던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약속이었습니다.
그 법칙을 깨기 위해 혹은 깰 수 있는 설정이 바로 멀티버스입니다.
멀티버스는 다층우주, 평행우주이기에 다른 우주에서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은 가능합니다. 그래도 우주가 폭발하고 그런 일은 없죠.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서 멀티버스 속의 나는 내가 아니기 때문이죠. 마블에서는 이 점을 십분 활용해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배리가 돌아간 곳은 자신의 과거가 아닌 또 다른 평행우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게 배리가 돌아간 과거(세계)에서는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해서 배리가 겪은 자신의 과거와 너무나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배리 자신과 배트맨 빼고는 또 다른 사실들이 넘쳐나는 과거(세계)입니다. 예컨대 슈퍼맨이나 아쿠아맨이 없다는 사실 등등이죠.
그러면, 배리가 간 과거(세계)는 배리의 과거(세계)인가요, 멀티버스인가요?
도대체 뭐죠?
어떻게 해석해야 이 이야기가 말이 되는 이야기가 될까요?
모든 영화는 허구라고 믿습니다. 심지어 다큐멘터리도 앵글이랄지 편집이랄지 아무튼 감독의 시선이 개입되기에 현실 그대로라고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허구를 진짜라고 받아들이게큼 최소한의 논리적 법칙이나 약속이 존재합니다.
플래시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끔 끌고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그 동안 쌓아왔던 약속이나 법칙을 너무나 깃털처럼 깨 버리는 영화입니다.
저는 정말이지 플래시는 안 본 눈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추신. 그나마 한 가지 볼 만한 건 이제는 반백이 된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뭘까요?
(전 안봤습니다)
히어로 영화들 대부분이 비현실적이고 터무니없는 내용이라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여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