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영 감독이 연출한 <다섯 번째 방>은 자신 만의 공간을 가지기 위해 평생을 가족에게 헌신한 한 여성에 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감독의 엄마는 수십 년 동안 시댁 부모를 모시고 세 명의 아이와 남편을 부양하는 워킹우먼입니다. 미술치료사로 일하는 그녀는 목수로 일해 온 남편이 최근에 일이 없자 온전히 가족 전체를 경제적으로 부양합니다. 그렇다고 집안일을 다른 가족이 해주는 것도 아니고요.
그녀의 바람은 딱 하나입니다. 온전한 자신 만의 공간. 이층 양옥에 살고 있는 이 가족은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방을 엄마가 차지하게 되지만 가족들이 돌아가며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시어머니를 설득해 2층에 자신만의 공간을 얻게 되지만 알콜릭이자 폭력성이 강한 남편이 술만 먹으면 그녀를 괴롭히죠. 이 폭력성은 감독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에게도 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많은 다큐멘터리 작가가 그러하듯 전찬영 감독도 자신과 자신 가족의 이야기를 데뷔작에서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오랫동안 관찰해 온 감독은 그녀의 인생과 더불어 그녀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이 작품에서 담아내고 있습니다. 집안일과 경제적인 일을 함께 하는 그녀는 이것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이 내부자, 그러니까 한 '가족'으로서 그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유산에 대한 모임을 할 때 며느리를 빼고 이야기 할 정도로 그녀를 외면합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사를 가져온 <다섯 번째 방>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