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매일 같은 직장과 똑같은 동료들을 만나서 일하고

매일 같은 신사에서 같은 나무의 코모레비를 찍고

정기적으로 같은 식당, 같은 술집, 같은 서점에 가고

매일 밤 같은 시간에 책을 읽다가 잠들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도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인생.

 

 

자신의 인생에 불만족하는 사람들은 인생을 쳇바퀴로 표현합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는 작은 행복을 느낄 순간 조차 없이 지쳐만 갑니다.

 

하지만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는 조금 다릅니다.

 

청소 중이라는 팻말이 버젓이 있는데도 화장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언짢아하기보다는,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는 편을 택합니다.

 

자신의 손을 더럽게 생각하면서 아이의 손을 물티슈로 닦는 엄마에게 불쾌해하기보다는, 물티슈로 닦은 손을 흔들어주는 아이를 보며 미소짓습니다.

 

설렁설렁 일하는 주제에 성실히 일하는 자신을 (악의 없이) 조롱하며 철없기만한 어린 동료를 못마땅해하기보다는, 자신의 올드팝 카세트 테이프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어린 여성에게 흐뭇함을 느낍니다.

 

 

매일 똑같은 디지털 인생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매일이 어딘가 조금씩은 다른 아날로그 인생을 살아갑니다.

 

같은 직장에 가도 만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조금씩 다르고, 똑같은 퇴근길이지만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또한 틱택토는 하루에 한칸씩 채워져가고, 책은 한장씩 넘어가고 한권을 다 읽고 새로운 책을 사게 됩니다.

 

삶이 단조롭고 퍽퍽하고 쳇바퀴 도는 것마냥 영원히 반복되는 것 같아도, 우리의 매일은 조금씩 다르고 또 흐르고 있습니다.

 

일상에 지친 당신에게, 히라야마처럼 조금만 더 긍정적이고 성실한 삶을 산다면 조금 더 웃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인생이 되지 않을까요?

 

 

 

라며 영화가 끝났다면 [퍼펙트 데이즈]는 흔하디 흔한 범작이었을겁니다.

 

연못에 던진 작은 돌멩이 하나로는 이렇다할 파문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때로는 북경의 나비 날개짓이 미국의 허리케인을 불러오기도 하지요.

 

갑자기 차를 빌려달라는 어린 동료 때문에 언짢다가도 흐뭇해지고, 갑자기 찾아온 조카딸 때문에 당황했다가도 하루를 함께하며 소소한 행복이 추가되기도 합니다.

 

갑자기 일을 그만 둔 어린 동료 때문에 하루 일과가 너무 힘들어서 화를 버럭 내기도 하고, 갑자기 찾아온 조카딸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과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합니다.

 

자그마한 일이 때로는 별거 아닌 듯, 때로는 커다란 풍파를 겪게 합니다.

 

 

결국 히라야마도, 무뚝뚝하면서도 묵묵하고 성실한,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 같은 이 남자도, 화도 내고 울기도 하고 아픔도 간직한,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왜 저 사람은 '항상' 긍정적일거라고, 나와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속단했는지 그저 부끄러웠습니다.

 

제목에 대한 선입견도 부끄러움에 한몫 했습니다. [퍼펙트 데이즈], 완벽한 나날이 꼭 긍정적이고 행복으로만 가득차있어야하는 걸까요. 지루한 쳇바퀴면 어떻고 아름다운 회전목마면 또 어떻습니까. 

 

영화의 엔딩 장면 속 히라야마는 울면서 웃습니다. 웃으면서 웁니다. 이 남자가 지금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판명하는게 뭐가 중요할까요. 울음과 웃음, 웃음과 울음이 뒤섞여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을.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묵묵히 제할일을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모여 '퍼펙트 데이즈'를 이루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벅찬 감정을 가지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까요. 앞으로(다음)는 앞으로(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입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눈이 부시게' 살아갑시다.

 

4.5 / 5.0

 

 

 

제 기준으로 [퍼펙트 데이즈]에서 받은 메시지와 너무나도 닮은,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엔딩 나레이션으로 장황한 글의 끝을 맺습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이전 다음 위로 아래로 스크랩 (2)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 profile
    파워핑크걸 2024.07.15 18:15
    글 제목부터 너무좋아 클릭해 들어왔는데 글도 너무 좋네요 눈물 날것같은..😂🥹
  • JINU 2024.07.16 10:58
    왜 이 영화가 이리도 애잔하고, 작위적이지도 않으며, 훌륭하게 느껴지는가 직접 정리해봤던 내용과 가장 비슷한 후기를 발견하여 참 반갑습니다. 그에 덧대어 유사한 메시지를 가진 다른 작품을 떠올리시며 한 걸음 더 나아가신 것에 감명받고 갑니다!

List of Articles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파트너 계정 신청방법 및 가이드 file admin 2022.12.22 467258 96
공지 [CGV,MEGABOX,LOTTE CINEMA 정리] [44] file Bob 2022.09.18 478017 144
공지 💥💥무코 꿀기능 총정리💥💥 [105] file admin 2022.08.18 812443 204
공지 무코 활동을 하면서 알아두면 좋은 용어들 & 팁들 [66] admin 2022.08.17 559586 150
공지 게시판 최종 안내 v 1.5 [66] admin 2022.08.16 1219431 143
공지 (필독) 무코 통합 이용규칙 v 1.9 admin 2022.08.15 424156 173
더보기
칼럼 B급 헐리우드 오락 영화의 최고봉?? 수준 작품 [2] 5kids2feed 16:19 1046 1
칼럼 <스픽 노 이블> 악이 번식하는 사악한 방법 [13] file 카시모프 2024.09.12 3657 19
불판 9월 13일 선착순 이벤트 불판 [9] 너의영화는 2024.09.12 10948 23
불판 9월 12일 (목) 선착순 이벤트 불판 [43] 더오피스 2024.09.11 16547 36
이벤트 영화 <줄리엣, 네이키드> GV시사회 초대 이벤트 [24] file 마노 파트너 2024.09.09 7193 31
영화잡담 과연 이동진 평론가님의 별점이 영화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칠까요?? [6] new
03:13 606 6
후기/리뷰 스픽 노 이블 간단후기 [1] new
01:58 229 2
영화잡담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극장 개봉 대신 맥스 OTT로 갈 뻔했다 [1] new
01:35 366 3
영화잡담 지나가는길에 가장 재미있었던 영화 한편씩만 추천해주세요 [18] new
01:03 457 0
영화잡담 결속밴드 순서가 있나요? [4] new
00:38 262 0
영화관잡담 베테랑 취케팅이 빡세네요 [8] new
DCD
00:24 882 2
9월 16일 박스오피스<사랑의 하츄핑 100만 돌파> [11] newfile
image
00:01 1021 12
영화잡담 베테랑2 보고 가장 큰충격받은 부분(스포주의) [9] new
23:24 996 7
후기/리뷰 더부티크 목동현백에서 영웅을 리클라이너로 저렴하게 봤네요 [5] newfile
image
22:38 601 6
저도 오늘 관크 당했습니다 [11] new
22:35 1106 13
영화잡담 독창적이고 상상력만으로는 최고의 영화가 있을까요? [6] new
22:34 585 1
영화관잡담 오늘 용산 트랜스포머 애들 관크ㅠㅠ [9] new
22:19 839 8
후기/리뷰 <베테랑2> 후기 - 데드 레코닝이란 부제가 어울리는 newfile
image
22:11 381 7
후기/리뷰 하츄핑 후기 [3] new
21:48 324 6
영화관잡담 CGV 포토티켓 확장형 사이즈 [4] new
21:23 606 1
쏘핫 이제 평론가 쪽으로 화살이 돌아가나요? [13] new
21:15 2900 45
영화잡담 연말엔 뮤지컬 영화를 [4] new
21:13 403 5
영화잡담 영화 평론가에게 의존하는 건 옛부터 없었다. [1] newfile
image
21:05 763 8
저는 이동진 유튜버 평은 거릅니다 [24] new
21:05 2655 13
영화잡담 베테랑2 2회차하면서 느낀점 [5] new
20:51 581 3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
/ 4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