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ko.kr/11850868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첨부


common (16).jpg

 

무코에 올리는 첫 후기네요. 

 

헐리우드의 좋은 블록버스터를 보는 건 다른 나라나 세계 3대 영화제에서 극찬받은 영화를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동네 맛집이 아니라 프랜차이즈의 잘빠진 음식을 먹는 느낌인데 이렇게 여러 재료가 종합적으로 잘 갖춰진 오락물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따르는 쾌감이 따로 있죠. 이번에 [트위스터스]를 보면서 드는 느낌이 딱 그랬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건 스필버그 감독이 너무 좋아할 재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총제작이 스필버그더라고요. 

 

한 이야기꾼은 딱 하나의 이야기만을 할 수 있다는 어떤 썰이 있죠. 마틴 스콜세지가 일평생 '백인 양아치'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어떤 말인지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 말을 정이삭 감독에게도 정확히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작인 [미나리]에서 정이삭은 풀밭에서 물을 찾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이콥은 다우징을 하면서 물을 찾으려고 하죠. [트위스터스]에서 주인공 케이트는 물이 아니라 '바람'을 찾습니다. 그는 다우징을 하지 않지만 보고 듣는 것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람을 정확히 포착해낼 수 있죠. [미나리]에서는 주인공이 그런 초능력 비슷한 감각이 부족했지만 [트위스터스]에서 주인공은 그 능력이 충만합니다.

 

한편 [미나리]는 풀밭에 집을 세우고 그 집을 지키는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집이란 단순한 house가 아니라 home이기도 하죠. [트위스터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의 오프닝, 풀밭에서부터 슥 카메라가 올라와 원경을 보는 주인공을 잡을 때 [미나리]의 기시감이 듭니다. 풀밭의 청각과 시각으로 자극하는 심상은 정이삭 감독의 인장처럼도 느껴집니다. [트위스터스]에서 house는 명시되지 않지만 그 대신 케이트의 home의 일부인 친구들이 부숴져버립니다. 풀밭 위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과 본인의 과학적 목표 등 케이트가 한 인간으로서 구축해놓았던 것들이 한번에 날아가버리면서 그는 home마저 떠납니다. 저는 이렇게 소재나 주제의식은 다를지언정 한 감독이 이야기꾼으로 다루는 테마가 계속 연장되는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이야기꾼으로서 세계가 확장되는 걸 감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죠. (자칫하면 동어반복이 되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중후반부부터 감탄했던 것은 이 영화가 오즈의 마법사를 꽤나 잘 인용한 작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태풍이 나오면 그 태풍을 감지하기 위한 Dorothy를 올려보내는 것에서부터 스톰 파가 자기네 팀원의 코드네임을 부르는 것까지 그 인용은 꽤 선명합니다. 그러나 제가 더 의미심장하게 보는 부분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어떤 아이템을 부분적으로 인용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즈의 마법사를 여러 이야기로 축약할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세가지 미덕을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각자 원하는 미덕이 있으니 그것은 허수아비의 지혜, 양철나무꾼의 심장, 사자의 용기입니다. 이것은 영화에서 각 중심인물인 케이트, 하비, 타일러에게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영화 초반 케이트가 잃어버리는 친구는 정확히 세명이라는 것도 곱씹어볼만 합니다.

 

케이트는 과거에 친구를 잃어버렸던 경험에 조사팀인 스톰 파에 합류를 하지만 트위스터를 보고 겁을 냅니다. 이후 그는 용기를 되찾죠. 타일러는 트위스터 한복판으로 뛰어들만큼 담력이 대단하고 또 태풍의 피해를 받은 사람들을 돕는 인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트위스터를 아주 정확히 보지는 못하는데 이후 그는 케이트의 오래된 데이터와 스톰 파의 데이터, 즉 지혜를 받고 트위스터를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하비는 용기도 있고 지혜도 있지만 부동산관련업의 투자를 받고 자본주의적인 이익을 추구하면서 피해자들을 외면하다가 이후 깨닫고 사람들을 돕는 heart를 갖게 됩니다(뭐라고 번역을 해야할지?ㅎㅎ) 더 감동적인 건 그 미덕들이 각각의 미덕이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heart로 수렴을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한 용기이며 무엇을 위한 지혜인가, 그 모든 것은 타인과 세계를 위한 heart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죠. 이렇게 적고 나니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의 메시지로서 엄청나게 개신교적인데 어쨌든 영화의 메시지가 그러합니다. 

 

이렇게만 적으면 진부한 휴머니즘 드라마같지만 전 영화를 보면서 그런 느낌은 한 순간도 받지 못했습니다. 첫번째로는 트위스터라는 압도적 자연재해의 규모 때문입니다. 순식간에 트럭을 땅바닥으로 처박는가 하면 사람들을 한 순간에 공중으로 쓸어가버리는 이 자연현상 앞에서 모두가 긴박해지고 타인을 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두번째로는 911 이후 깔려있는 미국 영화의 일종의 강박입니다. 악당이 쳐들어오든 자연 위기가 시작되든 미국 영화에서 다수의 대중에게 패닉이 일어나면 그 때 주인공을 비롯한 소수의 영웅적 인물들은 타인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하는데, 저는 그 때마다 911 테러가 미국의 현실을 얼마나 바꿔버렸는지 실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트위스터스]를 자연에 의한 테러로 본다면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 테러에 얼마나 처절하게 맞설 수 밖에 없는지, 자연히 미국의 그 상흔을 엿보고 맙니다. (그에 반해 한국의 상업 영화들은 [엑시트]같은 작품을 제외하면 이 상처를 제대로 직면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영화는 엄청나게 미국적입니다. 쭉 펼쳐진 길, 넓은 초원을 보며 뭔가를 뒤쫓는 그 광경은 골드러쉬를 떠올리게 하고, 특히나 타일러 일당은 카우보이 그 자체입니다. 영화 중반에서는 로데오를 하면서 사나운 말을 길들이는 것과 태풍을 길들이는 건 다를 게 없다고 아예 말을 하기도 하고요. 미국인들에게 자연은 늘 정복의 대상이었습니다. 어떤 자연이 아무리 사납고 맹렬해도 지혜롭고, 용감하게, 이웃을 아끼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그것은 충분히 다스릴 수 있어야한다는 이치를 추구합니다.  케이트 역시도 줄곧 tame이라는 단어로 길들인다는 말을 강조합니다. 이같은 태도가 과연 현명한 것인지 코리안 관객인 저에게는 종종 더 겸허해져야한다고 말하고 싶어지나, 어찌됐든 정복욕은 자연의 이치를 해명하고 또 그것을 인간이 이용하거나 피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 타일러 일행의 못말리는 경쾌함은 분명히 보는 쾌감이 있습니다. 케이티 오브라이언과 사샤 레인이 마초성을 중화하는 덕분에 한결 부담이 덜하기도 하고요.

 

또 한편으로 이 영화는 대단히 헐리우드스럽습니다. 영화는 우리의 꿈이고 미래이며 희망이라는, 장르 자체에 인류의 모든 낙관을 집대성하는 경향이 있는데 [트위스터스]는 후반부에 정확히 그 장면을 넣어놨습니다. 사람들은 극장으로 대피하고 거기서 납작 엎드려서 의자 다리를 붙잡고 태풍에 저항합니다. 이 때 상영되는 영화는 [프랑켄슈타인] (1931년작으로 추정되는데 틀리다면 정정 부탁드립니다) 입니다. 자연의 이치를 거부하고 인간이 과학의 힘으로 생명을 불어넣어 뭔가를 창조한다는 내용의 원전 같은 작품입니다. 이것은 주인공들이 과학으로 자연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하면서 또 현실에 대한 영화의 생명력과 저항을 상징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어떤 부분들을 조각조각 기워서, 그것으로 놀라운 힘을 가진 또 다른 생명을 만들어 내보이겠다고요. 현실의 힘에 의해 극장이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그 극장을 끝끝내 붙잡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오스카 심사위원들이 아주 좋아할만한 장면이랄까요. 

 

이런 영화를 보는 일은 대단히 즐겁고 뿌듯합니다. 물론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면 이 영화가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나, 혹은 너무 공식저으로 굴러가는 부분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이 영화가 왜 폭풍을 쫓고 그것이 단순한 다이나믹함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최소한의 휴머니즘과 결부되는지 최소한의 도의를 다 하는 걸 봐서 좋았습니다. 물론 자동차를 타고 갈 때 펼쳐지는 평야 씬들도 좋았고요. 무조건 극장에 달려가서 봐야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변에 적극 영업할 생각입니다.

 


profile Solar

안녕하세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남성)입니다.

극장에 가서 영화보는 걸 좋아하고 노트북으로나 다른 매체로는 영화를 잘 못봅니다...

영화 비평에 관심이 많고 단순한 서브컬처 소비 이상으로 영화를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Atachment
첨부 '1'
이전 다음 위로 아래로 스크랩 (1)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첨부
  • profile
    부라더 2024.08.16 16:10
    포맷은 어떤포맷으로 보셨나요?
    저는 4DX로 보고 재밌다 싶었는데 일반 포맷으로 보면 뭔가 밋밋할거같아서요
  • @부라더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Solar 2024.08.16 16:24
    전 용아맥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이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취향인데 저는 포디엑스는 영화 관람에 딱히 좋은 포맷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집중하는 거 다 깨트리더라고요... 사람들이 그렇게 극찬하는 [탑건 2]도 포디엑스로 보면서 극장 전체가 저를 관크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별로였습니다 ㅎㅎ
  • profile
    내일은비 2024.08.16 19:51
    요즘 그냥 눈팅만 하고있는데, 개봉날 재밌게 본 트위스터스의 멋진 리뷰가 올라와서 굳이 로긴해서 댓글다네요.😊
    트위스터스 보면서 오즈의 마법사를 많이 차용했구나 생각은 했지만(도로시, 스톰파 멤버들 닉네임 등) 그건 누구나 아는 1차원적이었고 그너머의 3가지 미덕까지 알아차린 님의 통찰에 감탄했어요!!
    오프닝 푸르른 풀밭 장면에서 미나리를 떠올린 것도 놀라웠지만, 마지막 토네이도 피해 들어간 극장에서 상영된 프랑켄슈타인도 그영화를 선택한 감독의 의도가 있을거라 짐작만 했는데 님의 분석보니 무릎을 쳤네요.👍
    저는 트위스터스를 그냥 재밌게만 봤는데 미나리 만든 감독님이 블록버스터도 잘 만드네 정도의 감상이었는데 님의 꼼꼼한 분석과 차원이 다른 시선에 그저 놀라웠네요.
    님의 후기보고나니 트위스터스 한번더 보고싶어집니다.ㅎㅎ
    전 코돌비에서 봤고 저도 트위스터스 강추합니다.
    정이삭 감독님이 앞으로도 멋진 작품 만들어 주시길바라고 solarluna님도 좋은 영화후기 계속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
  • @내일은비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Solar 2024.08.16 20:00
    감사합니다 ㅎㅎ 이 영화 진짜 좋은 거 같아요 부모님 모시고 보고 싶더라고요

계속 검색
List of Articles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파트너 계정 신청방법 및 가이드 file admin 2022.12.22 444058 95
공지 [CGV,MEGABOX,LOTTE CINEMA 정리] [41] file Bob 2022.09.18 451469 140
공지 💥💥무코 꿀기능 총정리💥💥 [103] file admin 2022.08.18 783488 203
공지 무코 활동을 하면서 알아두면 좋은 용어들 & 팁들 [65] admin 2022.08.17 532519 150
공지 게시판 최종 안내 v 1.5 [64] admin 2022.08.16 1188252 141
공지 (필독) 무코 통합 이용규칙 v 1.9 admin 2022.08.15 403296 173
더보기
칼럼 (영재방) 퓨리오사가 안스러워 대신 찾아주는 Green Place- 그곳은 과연 어디쯤 있을까? [10] file Maverick 2024.05.28 8456 28
칼럼 [미션 임파서블7] 액션에 담긴 메시아 서사의 해석-2 : 죄의 열차를 끊어낸 예수 (스포) [4] file Nashira 2023.08.09 5118 14
불판 8월 26일 선착순 이벤트 불판 [3] new 너의영화는 15:00 1472 11
불판 8월 23일 (금요일) 선착순 이벤트 불판 [22] update 은은 2024.08.22 9584 34
이벤트 영화 <그 여름날의 거짓말> 무대인사 시사회 초대 이벤트 [21] updatefile 마노 파트너 2024.08.19 4031 26
후기/리뷰 (스포X)드디어 트위스터스 4DX 체험을 했습니다! file
image
18:53 621 8
후기/리뷰 (약스포) 인포디 트위스터스 뒷북 후기 file
image
2024.08.22 195 3
후기/리뷰 (노스포) 트위스터스 + 나눔 후기 [4] file
image
2024.08.19 480 8
후기/리뷰 어머님의 트위스터스, 행복의 나라 간단 평 [3]
2024.08.18 884 6
후기/리뷰 트위스터스 창원 4dx후기 [5]
2024.08.18 410 1
후기/리뷰 트위스터스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4]
2024.08.17 496 5
후기/리뷰 트위스터스 울포디 후기 [4]
2024.08.16 568 3
후기/리뷰 (스포) 트위스터스 봤습니다 [4] file
image
2024.08.16 413 4
후기/리뷰 트위스터스 후기) 정청브라더때문에 웃참했네요 file
image
2024.08.15 673 2
후기/리뷰 트위스터스 ULTRA 4DX 후기(노스포) [2] file
image
2024.08.15 996 7
후기/리뷰 노스포) 트위스터스 스엑 포스터 수령 및 간단후기 file
image
2024.08.14 576 0
후기/리뷰 <트위스터스><에이리언>용아맥 간단후기 [11] file
image
2024.08.14 2602 8
후기/리뷰 트위스터스 울포디로 관람했습니다(호/노스포) [3] file
image
2024.08.14 532 4
후기/리뷰 [트위스터스], [하나 그리고 둘 ] 단상 [3] file
image
2024.08.12 694 3
후기/리뷰 <트위스터스> 아맥 & 울포디 후기 (노스포 가이드 리뷰) [16] file
image
2024.08.11 1353 8
후기/리뷰 트위스터스 약스포 후기 [3]
2024.08.11 1559 8
트위스터스 용포프 불호 후기.. [30]
2024.08.10 3698 17
후기/리뷰 스포x) 트위스터스 유료시사 인포디 후기! [9] file
image
LLD
2024.08.10 1174 7
후기/리뷰 취켓팅한 트위스터스 용포프 후기 [2] file
image
2024.08.10 1254 6
계속 검색
이전 1 다음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