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에 무코 당첨으로 <세븐 베일즈>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미루고 미루던 끝에 항상 리뷰를 작성하게 되네요.
시사회에서는 극장에서도 접할 수 있는 메인 전단에 별도로 현상수배와 같은 전단과 포카 사이즈의 특전을 함께 받았습니다.
<세븐 베일즈>는 캐나다 감독인 아톰 에고이안의 영화로, <클로이>에 이어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두 번째로 만나게 된 작품이죠. <클로이>에 비하면 <세븐 베일즈>는 주인공 재닌의 내면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래서 재닌 역을 맡은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연기가 크게 중심이 되고,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작품입니다.
<세븐 베일즈>는 재닌이 연극 <살로메>의 재연에 감독을 맡게 되며 백스테이지 준비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녀 내면의 감정들을 보여주게 됩니다.
<살로메>는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을 소재로 한 연극으로, 1892년 오스카 와일드의 원작 연극과, 이후 1905년 리차드 스트라우스의 오페라 버전으로 만들어진 적이 있습니다. 극 중에서는 재닌의 스승과도 같았던 존재인 '찰스'가 현대적으로 재창작했던 버전을, 찰스의 사후에 재연하게 되는 공연의 감독을 재닌이 맡게 되죠.
영화가 마냥 불친절하지 않은 지점은 <샬로메>의 소품 제작자인 클리아가 제작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게 되며 <살로메>의 내용이 어떤지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따라서 성경 속 이야기 또는 <살로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극을 따라가기에 무리가 없죠.
아톰 에고이안은 영화감독 외에도 연극 등의 연출을 맡았는데, 실제로 <살로메>의 감독을 맡은 적이 있는 데다, 영화 역시 <살로메>의 실제 토론토 세트 안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 리뷰가 있습니다.
꼭 영화를 감상한 뒤에 읽고 함께 의견을 나누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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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닌은 어릴 적에는 아버지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당한 듯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예술적인 촬영을 빌미로 재닌의 눈을 가리고, 우스꽝스럽기도 한 춤을 추도록 하며, 아버지의 목소리에 이끌려 행동하는 비디오가 기억 속에 남아 있죠. 성적인 트라우마 자체는 피해자인 재닌의 기억 속에 흐릿하지만,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언급한 '위층에서 장난질'은 어쩌면 어릴 적 아버지와 위층에서 시간을 보내던 재닌을 지칭하며, 그녀가 딸의 피해 사실을 알고도 모른척했음을 보여주죠.
그렇게 재닌은 아버지에게 찰스로 인계되며, 스승과 같은 존재인 찰스와 심리성적(psychosexual)인 유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재닌은 아버지의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나이 차가 큰 찰스와의 내연 관계 속에서 역시나 대상화된 존재였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찰스가 제작한 현대적인 <살로메>에서 아버지와 찍었던 비디오 속의 교태로운 동작을 살로메가 그네 위에서 그대로 연기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죠.
찰스와의 관계가 끝난 후의 재닌은 연극/오페라계에서 멀어져 지방 단체의 공연 정도에만 참여하는 정도로 업계와 멀어져 있었는데, 찰스의 사후에 그의 아내가 <살로메>의 재연을 부탁하며, 감독직을 맡게 됩니다.
새로이 큰 역할을 맡게 된 재닌은, 별거 중이던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는 등 가정사가 순탄치 못한 와중에 <살로메>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스스로 의문을 던져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트라우마 피해자로서 아버지 및 찰스와 함께했던 과거의 기억이 흐릿한 가운데, <살로메>를 다시 마주하는 과정은 재닌에게 그녀의 과거를 마주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재닌의 입장은 극 중 여러 캐릭터와 병렬 및 대조되는 관계 속에서 보여집니다.
어머니의 묵인하에 아버지 헤로드 왕의 명령으로 세례자 요한을 유혹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살로메>,
백스테이지 소품 디자이너인 클리아, 요한의 언더스터디(대역) 역의 남자 배우 등의 입장 등에서 볼 수 있죠.
클리아는 재연되는 연극에서 필요하게 된 소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전공을 살려 (보통 제작되곤 하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합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석고가 아닌 조각으로 만들려고 하죠.
<살로메>의 재연에 앞서 ’약간의 변화‘를 추구하려 해도 이사회의 반대에 마주해 극을 어떻게 올려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재닌의 입장과 달리, 클리아는 자신감 있게 자신의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내 소품으로서의 내구성 때문에 클리아가 조각했던 머리는 사용할 수 없게 되고, 기존의 방식으로 다시 석고를 떠 제작하게 됩니다.
클리아는 석고 제작 과정에서 요한 역의 배우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마는데, 이 상황에서 일방적인 피해자로 침묵하지 않고, 극단을 상대로 추행 영상을 협상 카드로 활용해 원하는 입장을 얻어내고 맙니다. 여러모로 재닌의 입장과 비슷한 상황에서 반대의 행동을 보여주거나 역설적인 교차가 일어나죠.
반면, 이사회의 반대로 조금의 변화도 허용되지 않던 재닌은 제작 과정에서 결국 자신의 방식을 관철하여 샬로메의 어머니 손에 마체테를 쥐여주고, 요한의 목을 투명한 그릇에 담아 전시하는 등 <살로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방법으로 나아갑니다.
이는 즉, 재닌이 가족 그림 속에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지우도록 한 것과, 요한의 목/하얗게 지워진 아버지의 머리 등으로 대비되죠.
<세븐 베일즈>는 오페라 <살로메>의 중후반에 나오는 살로메의 ”세븐 베일의 춤(Dance of Seven Veils)“에서 따온 제목입니다. 살로메는 헤로드 왕에게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길 요구하며, 그 대가로 7겹의 베일을 차례로 벗는 춤을 추며 다른 남성들에게 성적인 노리개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찰스‘가 올렸던 버전의 <살로메> 속 ’세븐 베일의 춤‘을 보며, 재닌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살아나게 되죠. 재닌은 자신이 만드는 극에서 사내들의 가랑이 사이에 베일을 벗어 작아진 살로메가 아닌, 조명을 통해 살로메가 춤을 통해 거대해지기도 하고, (피해자가 아니라) 춤을 추며 자신의 힘을 자각하는 식으로의 연출로 바꿉니다.
연극 무대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공간을 가장 좋아했다는 ’찰스‘와 달리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살로메>를 바라보는 재닌은 사이 공간이 아닌 관객석으로 완전히 넘어와 관망할 수 있게 됩니다. 아버지에게 대상화되며 영상에 찍히고, 찰스에 의해 <살로메>로 무대에 대상화된 과거로부터 완전히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일까요. 무대에서 함께 박수를 받느니, 관객석에서 무대와 오케스트라를 찍는 입장으로 바뀝니다.
내면의 여러 레이어를 보살피게 된 재닌은 ’요한‘ 역의 언더스터디에서 요한 역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된 배우와의 묘한 관계도 즐깁니다. 마치 찰스의 대역으로 그의 연극을 재생산해야 했던 입장에서 나아간 것으로 보이죠.
<세븐 베일즈>는 그리 대중적인 영화는 아닐지 모르나,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집중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흐릿한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나가는 재닌과 여러 입장이 교차하는 과정이 마냥 단순한 추리가 아니어서 더욱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로부터 영화를 소화하기까지 드는 생각이 즐겁기도 했고요.
추리 과정이 필요한 영화는 반드시 2회차를 하는 편인데, 개봉 뒤에 한 번 더 보기로 예매해 두어 그때 드는 생각이 어떨지 스스로 궁금해집니다.
덧으로 팟캐스트나 vlog 촬영 등 요즘스러운 것들의 요소를 너무 오글거리지 않는 방식으로 차용하여 전개에 이용한 점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틱톡이라던지, vlog 촬영 등 현시성이 강하고 밈스러운 요소들이 영화에 등장했을 때 드는 모종의 경계심이 있는데, 영화의 맥락에서 너무 돌출되거나 어거지스럽지 않게 등장해 무리 없이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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