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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와 두 주연배우, 감독의 전작을 생각했을 때 페미니즘이 묻어나는 퀴어영화 재질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성장이 멈춘 한 남자가 가려져있던 내면의 진실을 보기 시작하며 성장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드라마였고 찰스 멜튼이 분한 조를 주인공으로 봐도 무방했습니다.

 

이 영화의 표면상 플롯은 배우인 엘리자베스가 메소드 연기를 위해 실존인물인 그레이시를 찾아가고 그녀의 삶을 이해하며 동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지만, 진짜 흥미로운 지점은 그 속에서 과거 그레이시의 삶과 현재 남편 조의 삶이 데칼코마니 처럼 닮아있다는 점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마치 부자관계 혹은 모녀관계에서 삶이 유전되듯 말입니다. 과거 그레이시가 전남편과의 수동적인 가정 생활에서 고립감을 느끼고 자신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은 사랑을 선택하며 어떠한 도덕적 잣대와 사회적 시선에도 아랑곳 않는 능동적 여성으로 거듭난 것 처럼, 극중 현재의 시점에서는 이제 그 선택의 기로가 (그레이시에게 그랬듯 정확히 36살에)남편 조에게 옮겨온 것 혹은 옮겨올 것 처럼 보입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헌신적인 남편과 자상한 아빠의 역할에 만족하며 인형의 집에 안착할 것이냐, 아니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주체적인 자신의 삶을 향해 인형의 집을 벗어날 것이냐. 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인물들의 감정이 아슬아슬한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또한 그러한 점에서 남성 캐릭터에게 투영된 페미니즘 영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짜 아내인 그레이시와 영화 속 아내의 역할을 맡은 엘리자베스 사이에서의 삼각관계는 표면상 갈등일 뿐이고, 엘리자베스를 통해 던져진 작은 돌로 인해 당장 혹은 어쩌면 그레이시 스토리 영화가 만들어진 후 장차 겪게될 조의 내면의 파장과 발생할 갈등과 변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 마치 평온한 휴화산 아래서 들끓고 있는 용암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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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에 드러나는 조와 그레이시의 성장배경과 성향을 보면 반대지점에 놓여있습니다. 그레이시가 가부장적인 부모님 밑에서 과잉보호를 받고 자라 자기중심적이고 나이브한 어른아이 같은 캐릭터라면, 조는 일에 바쁜 부모님 밑에서 가장 노릇까지 하며 일찍 성숙해버린 아이어른 같은 캐릭터입니다. 허나 실상은 정반대였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캐릭터 창조가 꽤나 입체적입니다. 온실 속의 화초일줄 알았던 그레이시는 사실 누구보다 자아가 뚜렷하고 자기 욕구를 직면할줄 알며 과감히 선택할줄도 알며 또한 사회적 필요에 따라 순진함의 탈로 그것을 가릴 줄도 아는 주체적인 어른에 가까운 반면, 조는 겉으로는 일찍 철이 든 것 처럼 보이지만 자기 욕구와 직면하는데도 서투르며 타인과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얌전히 길들여져있을 뿐인 수동적인 아이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마침내 조는 비바리움에 갇힌 애벌레에서 날개를 단 나비로 진화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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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이 부부에게 맞닥뜨린 삶의 유전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이 부부의 삶을 이야기화하는 매개체입니다. 여기서 영화는 진실이라는 화두를 각각의 인물에게 던집니다. 자신이 선택하고 믿었던 진실이 변치않기를 바라는 그레이시와 그레이시의 진실에 가까워지려 애쓰는 엘리자베스, 그리고 그레이시의 진실에 길들여져 갇혀져있던 자신만의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한 조. 이들의 진실게임이 얽혀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그 가운데 영화는 진실을 찾아 그것과 가까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메소드를 하는 과정이 결국 우리네 삶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배우로서 그레이시라는 인물의 진실을 탐구하고 해석하며 그 인물로 거듭나는 작업 속에서 "점점 진짜와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하는 엘리자베스 조차 사실 자기자신으로서의 삶에서 찾아가고 가까워져야 할 진실이 남아있을테니 말입니다. 극중 여러 암시들로 미루어봤을 때 그녀의 실제 삶(공교롭게도 엘리자베스 역시 36살) 또한 정리되지 않고 물음표로 남아있는 부분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인생 자체가 연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대학때 연기 수업에서 들었던 '연기는 배역의 영혼을 달래는 일'이라는 말이 항상 가슴에 꽂혀있는데(킬포인트는 이 말을 하시고나서 교수님 왈 '지 영혼도 못달래는 것들이 무슨!'),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캐릭터에 끌린다는 극중 엘리자베스의 말과 오버랩되었습니다. 배우가 인물을 이해하고 동화되기 위해 애쓰는 모든 과정들도 실은 인물을 빌미로 인물 못지않게 복잡한 자기 영혼을 좀 더 이해하고 달래기 위한 수단이자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자기만족적 욕구 실현의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는 엘리자베스가 조와 그레이시의 삶을 가리켜 그저 "이야기"라고 말하는 부분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영화 촬영중 엘리자베스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하는 진짜의 본질은 그레이시의 것보다는 그레이시라는 거울로 비춰본 자기자신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배우는 결국 자기자신을 위해 연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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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의 결을 곱씹어볼 수 있는 인간 탐구의 욕구를 샘솟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아쉬운 점은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에 비해 영화 자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밋밋하다는 점.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감독의 전작 <캐롤>에서는 인물과 영화의 감정이 함께 꿈틀대며 톱니바퀴 처럼 딱딱 맞물려 돌아가는 가운데 전해지는 감정적 파고와 여운이 상당했는데, 그에 비해 이번 작품에서는 다소 서걱거리며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테마음악과 줌인의 빈번한 활용에서 오히려 몰입감이 깨지는 역효과를 낳은 것 같은데, 달리 생각해보면 마치 옳고 그름을 단정할 수 없는 회색지대처럼 관객이 보다 중립적인 관점을 유지한채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물들의 감정에 몰입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기 위한 거리두기의 장치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여튼 영화는 끝나지만 그 후에 살아가야 할 인물들의 삶과 마주해야 할 선택이 더 궁금해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상영이 끝난 후 새롭게 시작되는 영화 <메이 디셈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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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및 한줄평:

●●●○(3.5/5) 살아내야 하는 삶과 이해해야 하는 이야기의 교차점에 가라앉은 진실의 알갱이들.


발없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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