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맥스 시리즈 두 편을 3회차씩 봤는데
이번 주로 매드 맥스 시리즈 관람을 마치기로 해서 고민하다가
마지막은 분노의 도로-퓨리오사-분노의 도로로 이어지는 루프(?) 방식으로 관람했습니다.
나름대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이런 방식을 택했는데
체력적으로 좀 힘들었지만 개봉순 시간순을 합치는 방법이라
생각도 더 많아지고 좋았습니다.
(근데 퓨리오사가 또 보고 싶네요ㅎㅎ)

 

보통 다른 시리즈들은 결말에 이르면 맺혀 있는 의문과 감정들이 폭발하듯 해소되는데
이 시리즈는 그렇지가 않아요.
어쩌면 퓨리오사의 여정이 끝났어도 황무지의 이야기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제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 감상 얘기를 좀 길게 해볼게요.

 

 

 

+
처음 봤을 땐 솔직히 아쉽단 생각을 했습니다.
전작이 분노의 도로였으니까요.
그런데 n차 관람을 마친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요.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는 새롭게 만들어진 매드 맥스 시리즈 전체의 완성도를 끌어올려준 최고의 작품입니다.
퓨리오사라는 캐릭터의 서사는 물론이고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서사와 의미까지

더 탄탄하게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저에게는 분노의 도로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
매드 맥스의 배경은 황폐화된 세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빼앗는 것이 당연한 시대입니다.
(분노의 도로에서는 부발리니들조차도 녹색의 땅을 잃고 행인들을 유인해서 죽이고 빼앗는 생존 방식을 택하게 됐었죠.)
시대가 시대인지라 퓨리오사도 어릴 적부터 사람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바이커 갱단에 붙잡혀 갔을 때 자신을 납치해온 루빌리 멤버가 고향의 위치를 말할까 봐
달리는 바이크 줄에 목을 걸리게 해 찢어놓은 것도 모자라 찢긴 목을 발로 마구 차서 숨통을 끊으려 합니다.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상당히 잔인하죠.

 

이후로 디멘투스에게 키워지며 더욱 죽음과 약탈에 무감각해집니다.
탈주자들을 붙잡아 5인 바이크 처형을 시켜놓고
보기 싫으면 눈을 돌려도 된다 그러는데도 절대 눈을 돌리지 않아요.
아이러니하게도 퓨리오사는 세상에서 디멘투스를 가장 증오하지만
디멘투스의 말처럼 그를 점점 닮아가고 디멘투스의 애착인형 리틀 D로 변해갑니다.

 

디멘투스와 떨어져 시타델에서 생활하면서도
잭을 만나 수송대 일을 하면서도 디멘투스를 잊지 않죠.
어머니의 원수이기 때문에 잊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디멘투스에게 빼앗기면 빼앗길수록 디멘투스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갑니다.
퓨리오사를 이루는 가장 큰 감정을 형성한 것이 디멘투스이니
디멘투스는 정신적으로 퓨리오사의 부친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다행인 것은 퓨리오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디멘투스 같은 인간들만 만나진 않았다는 거죠.
디멘투스와 다른 방향으로 퓨리오사의 내면을 성장시켜준 사람이 둘 있습니다. 
어머니와 잭.

 

퓨리오사는 먼저 어머니에게서 두 가지를 배웁니다.
타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희생과
아이가 있다며 목숨을 구걸하는 상대를 죽이지 않는 동정심.

(비슷한 처지에서 오는 공감이나 연대 의식일지도요.)
전대 근위대장 잭은 다른 사람을 도와 대의를 이루는 것이 구원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주죠.
퓨리오사가 황무지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부발리니로 다시 태어날 수 있던 데는
이 두 사람의 역할이 컸습니다.

 

어머니에게 희생과 동정심을 배우지 않았다면
임모탄의 아내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고 도와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을 테고
그들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길을 택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잭이 알려준 가능성이 
디멘투스와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도망치거나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임모탄의 아내들을 해방시키는 것에서 구원을 찾게 되었으니까요.

 

 

 

+++
퓨리오사 영화에서는 곰인형을 통해 
퓨리오사와 디멘투스의 관계, 퓨리오사의 재탄생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키려 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디멘투스가 곰인형을 안겨줬을 때 퓨리오사는 곰인형을 바닥에 떨어뜨립니다.
그때는 아직 디멘투스와 정신적 유착 관계가 깊지 않았을 때죠.

 

그런데 바이커 갱단이 시타델에 처음 쳐들어갔다가 패배하고 도망치던 중
시타델 아래 땅굴로 끌려 들어갈 뻔했을 때
퓨리오사는 디멘투스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악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행동이었겠지만
어쨌거나 디멘투스를 선택한 셈이고 이후로 둘 사이의 유착 관계가 깊어지며
퓨리오사는 당연하게 디멘투스의 곰인형을 안고 다니고
곰인형은 디멘투스의 리틀 D로서 퓨리오사의 분신 역할을 합니다.

 

나중에 임모탄과의 협상으로 디멘투스와 떨어지게 됐을 때를 보면
디멘투스가 준 곰인형을 꼭 안고 있다가 디멘투스가 다시 가져가니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죠.
디멘투스의 물건인 곰인형에 애착을 보인 것에서
둘 사이의 정신적 유착 관계가 끊어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기 농장에서의 전투가 끝나고 퓨리오사와 잭이 도망친 다음
디멘투스가 추격을 시작하려는 장면에서 곰인형이 다시 카메라에 제대로 비춰지는데
그때 곰인형 팔이 봉제인형의 팔이 아니라 플라스틱 바비인형 팔로 바뀌어 있습니다.
(보면서 계속 플라스틱 팔로 바뀐 시점을 정확히 파악하려 했는데 제가 포착한 것이 이 시점입니다.

그전까진 곰인형 전체가 잡히지 않고 팔쪽은 디멘투스 옷에 가려지거나 해서 안 보입니다.)
곰인형 자체가 카메라에 정확히 잡히는 순간이 많지 않고 몇몇 정확히 잡히는 장면에선 꼭 의미가 있는데
이 경우는 디멘투스와의 전투 끝에 퓨리오사가 잃게 될 것과 퓨리오사의 미래를 예고하죠.

 

퓨리오사는 팔과 함께 잭을 잃고, 팔에 새겨뒀던 고향으로 돌아갈 별자리 지도도 잃습니다.
잭은 퓨리오사에게 분노가 아닌 대의와 희망을 일깨워준 인물이고
별자리 지도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물리적 상징이기에
이제 퓨리오사에게 남은 것은 오직 디멘투스에 대한 분노뿐입니다.
그것만이 퓨리오사를 숨쉬게 하죠.
디멘투스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어서도 디멘투스에 대한 분노로 살아가는 모습은
디멘투스의 몸에 사슬로 묶인 곰인형과 겹쳐집니다.

 

그래서 결말에 퓨리오사가 디멘투스의 몸에 묶여 있던 곰인형의 사슬을 끊고
그것을 소유하려다 말고 사막에 던지는 장면이 저는 정말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디멘투스에 의해 만들어진 분노와 공허의 인형 리틀 D가 아니라
자기 의지로 어머니와 잭의 유지를 이어 한 사람의 인간으로 우뚝 서는 장면 같았거든요.

 

그렇게 퓨리오사의 엔딩은 분노의 도로 시작과 이어집니다.
대의와 희망을 품고 임모탄의 아내들을 위해 위험한 여정을 시작하는 비장한 퓨리오사의 모습으로요.

 

 

 

++++
“희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최초의 히스토리 맨이 남긴 이 구절에 대한 답은
물론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답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은 거죠.
길을 잃을 때도 있는 거고요.
퓨리오사는 황무지에 수없이 빼앗기고 수많은 총알과 피를 뿌리고서야 씨앗들을 안고 귀환할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를 보며 퓨리오사와 함께 황무지를 달리면서
저 질문에 좀 더 오래 고민할 수 있었고 퓨리오사가 답을 찾는 과정에 더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퓨리오사와 맥스가 서로를 구원했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마지막에 대해서도요.
그렇기에 저는 분노의 도로만큼이나 퓨리오사를 최고의 걸작으로 기억할 겁니다.

 

 

그리고 감독님께서 생각해놓은 각본이 하나 더 있다고 하셨으니
또 다른 매드 맥스 후속작이 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phantast

돌비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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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깡구깡구 2024.06.10 09:25

    감상평 공감하며 너무 잘 읽었습니다!

     

    부디 조지 밀러 감독님 건강하게 장수하셔서
    꼭 후속작도 감독님의 의도대로 잘 나왔으면 하네요~^^

  • Cinephilia 2024.06.10 11:13
    위대한 액션영화
  • 키리 2024.06.10 11:35
    모든 내용이 다 공감가요! 저도 두 편 다 정말 좋았어요!
    부디 후속편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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