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고래들이 12헤르츠에서 30헤르츠 내외의 주파수로 소통하는 것과 달리
52헤르츠의 소리를 가진 고래로 추정되는 생명체가 있다고 합니다.
아직 모습을 보인 적이 없고 주파수가 다르니 다른 고래와 소통도 불가능합니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분명 존재하지만 어찌보면 실존한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영화는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 정체성 등 다른 이에게 쉽사리 꺼내기 힘든 상처와 비밀을 지닌 이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말하기 어렵고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사람도 없으니 52헤르츠의 고래와 다를 바 없이 그저 유령처럼 존재하기만 합니다.
이런 고래들이 비로소 실존하는 순간이 찾아오는 데 다른 52헤르츠 고래가 내는 목소리를 듣고 응답하는 순간입니다. 수동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비슷한 다른 이들에게 귀기울이고 도와줄 때 비로소 능동적으로 주체성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 키코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안상을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게 되고 영혼의 짝을 만날 지도 모르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그 새로운 삶에 깊이 빠진 나머지 자신을 구원한 안상이 마찬가지로 52헤르츠 고래라는 점을 깨닫지 못합니다. 내 52헤르츠를 들어주기만 바랄 뿐 들어줄 생각은 못했던 키코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실존하지는 않습니다.
키코를 탓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 있어도 키코 본인은 자책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영혼의 짝을 잃어버린 키코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너무나도 닮은 어린 52헤르츠 고래인 이토시를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며 비로소 실존하게 됩니다.
저는 원작 소설과 이를 영화화한 작품이 있을 때 대체로 소설을 선호합니다.
아무래도 영화는 시간의 제약 때문에 생략하거나 개연성이 부족한 상태로 빠르게 전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원작 소설을 후딱 읽어보니 이 작품의 경우 영화가 훨씬 낫지 않나 싶습니다.
원작 소설에 있던 키코의 꽤 많은 말과 독백이 생략되는데 오히려 구구절절한 설명과 대사 없이도
키코 역의 스기사키 하나가 보여주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다가옵니다.
주변 인물이나 결말 부분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각색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