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 표준어를 쓰자면 '멋'이겠지만 느낌이 안산단 말이죠.
히어로물의 미덕은 히어로를 얼마나 돋보이게 만드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똥이라도 뭔가 잠깐이라도 멋있는 장면이 있어서 속된말로 뽕이 찼다! 지렸다! 적어도 다음 편에서 저 히어로를 또 보고싶다! 는 마음이 들게 만들면 절반은 성공한거라 생각합니다. 히어로물의 범람으로 사람들의 피로도가 높아진 것도 맞지만, 그럼에도 애초에 히어로물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은것도 사실이잖아요. 어차피 팝콘 먹으러 가는거잖아요. 그걸 만족시켜주는건 솔직히 어렵지 않은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히어로만의 능력을 부각하면서 디자인이 멋지거나, 전투 장면이 멋있거나, 변신장면이 멋있다거나, 하다못해 신나게 때려 부수기만 해도 될거라는거죠.
예전 마블은 그게 잘 됐어요. 다들 알다시피 아이언맨1편의 수트 착용씬이나, 캡틴아메리카의 방패던지기 모션 등도 그렇고, 여타 캐릭터들 수트 디자인부터 세심하게 신경을 썼습니다. 영화에서 너무 멋있게 나와서 코믹스판을 찾아보고 경악한 경험은 다들 있으실거에요. 뭐 캐릭터 개인 서사나 개성 부여, 히어로간 캐미 같은 자잘한 양념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초반 캐릭터들 빌드업이 워낙 잘되서 캐릭터 끼워팔기를 해도 다들 욕하며 봤습니다. 그러다 신캐릭터한테 또 매료됐고요.
근데 지금 마블은 그게 전혀 안됩니다. 약간 모자라다 수준이 아니라 그냥 없어요. 히어로 영화를 만들면서 주인공의 특징에 대한 고민을 전혀 안합니다. 막말로 앤트맨3에 앤트맨 대신 로켓라쿤이 들어가도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을거 같아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볼까요. 앤트맨에서 제작진이 고민해야하는건 1, 2편에선 보여주지 않았던 앤트맨의 새로운 전투방식을 고민한다거나, 새로운 장비나 슈트를 등장시키거나, 마스코트인 캐시가 처음 전투원으로 등장하니 얼마나 귀엽게 나오고 아빠와 어떤 스타일에서 차별화 해야하는가, 가족 3인이 처음으로 같이 전투를 하는 그림에서 어떻게 능력 배분을 하고 어떻게 더 멋진 컷을 그릴것인가 이런 것들이겠죠.
근데 전혀 못느꼈어요. 진짜 이 영화가 어딜 봐서 히어로물인지 솔직히 전혀 모르겠습니다. 캐시는 떼쟁이 민폐 억지 10대였고요, 게다가 캐시 유니폼은 특색없이 색깔만 바꿨고.. 와스프는 뭐한지 솔직히 모르겠고, 기대한 앤트맨 액션은 그냥 거대화해서 붕붕 휘두르기가 끝.. 근데 데우스엑스마키나급으로 쎄서 뭐라 할말이.. 뭐 와스프와 앤트맨의 협격이 한번 있긴 한데 그걸 협격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게다가 향후 10년(?)은 책임져야할 메인빌런은 디자인부터 포스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죠. 전투방식도 단순하고, 퇴장마저도 너무 단순했죠. 게다가 모독 디자인은 너무 성의가 없었죠. 모독 디자인은 이걸 개그요소라고 넣은건지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려고 넣은건지 지금도 헷갈립니다.
뜬금없지만 1편 빌런 얘기를 좀 꺼내보겠습니다. 전 솔직히 옐로재킷이 마블에서 역대급으로 잘 디자인 된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내면 서사야 식상하다고 해도(물론 전 이것도 맘에 듭니다만), 디자인이나 색배합이나 전투방식이나 다 너무 멋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땐 워낙 마블 영화들이 다 멋이 넘쳐서 못느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요.
여기서 저도 이번에 검색하다 알게된 정보를 간략히 요약해보자면 앤트맨1은 다른 감독이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준비해오던건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간에 감독이 교체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체된 감독이 1, 2, 3편 전부 찍었고, 1편은 예전 감독 영향이 많이 남아있는 모양이에요. 특히 옐로재킷은 이전 감독이 구상해두었던 악당이고요. 근데 찾아보다보니 현 감독이 옐로재킷을 대차게 디스했더라고요.. 뭐 개념이 너무 낡았다 그런 얘기를 했더라고요. 근데 그러고 나온게..??ㅋㅋㅋㅋ 뭐 여담입니다만 다른 사람 디스하는 감독치고 결과물이 좋게 나온건 못본거 같아요..
여담입니다만 오리지널 옐로자켓 디자인이라네요. 지금 앤트맨1이 나왔다면 이 디자인 그대로 나왔을듯.
https://comicbook.com/marvel/news/ant-man-director-peyton-reed-did-not-like-villain-yellowjacket/
참조한 인터뷰 링크입니다 진위여부까진 알기 어렵네요. 좋게보면야 2편 홍보용 어그로겠지만요, 결과론적으로 개인적으로 2편은..... 그래도 3편보다는 나았던거 같기도..
아무튼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어느정도는 뇌피셜이지만요, 이전 감독이 '앤트맨' 이란 캐릭터를, 넓게는 히어로물 장르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던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1편은 요소요소가 앤트맨을 돋보이게 할수있는 장치와 인간적 매력을 부여할수 있는 요소가 많았어요. 심지어 빌런도 진짜 멋있게 리워크 해놨죠. 틀어지지 않았다면 샘레이미의 스파이더맨 급의 영화가 나올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드네요. 반면에 현 감독은 그에 대한 전혀 고찰을 하지 않고 있고요.
이제 결론이죠. 앤트맨3은 히어로 영화가 아닙니다. 여기엔 앤트맨이 없어요. 기억에 남는건 모독 얼굴과 브로콜리밖에 없습니다. 이건 요즘 다른 마블 영화도 똑같아요. 샹치 없는 샹치, 블위 없는 블위, 닥스 없는 닥스2, 블팬 없는 블팬2, 토르 없는 토르4, 전부 영화 끝나고 보면 히어로가 부각된 느낌이 전혀 안들었죠.
게다가 제가 생각하는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 마블엔 속칭 '간지'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다는 겁니다. 커뮤에서 계속 논란이 되는 되는 아이언하트 슈트 디자인만 봐도 이게 2022년에 나온 2008년 영화의 후속 디자인슈트인지 저는 납득이 안되네요. 아이언맨 슈트는 영화에서 나올때마다 피규어 시장을 불태웠는데, 아이언하트는 상품화조차 안되는거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마블이 관객이 뭘 기대하는지 제발 이해를 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