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도 지난 금요일에 마침내 파묘가 개봉해서 가까운 극장에서 부리나케 보고 왔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너무 궁금해서 어쩔 수 없이 알거 다 알고 영화를 봤는데, 그래도 확실히 글로만 아는 것과 실제로 화면으로 보는건 느낌이 많이 다르더군요.
파묘의 전반부는 주인공 캐릭터들에 적응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조상 귀신이 일가를 차례로 처리하는 과정이 그렇게 무섭지는 않아서 약간 시시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다만 파묘를 의뢰한 장남 역할 배우의 연기나, 처음부터 기센 젊은 무당 캐릭터를 확실하게 잡아서 연기하는 김고은도 좋았습니다.)
정보를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관람 전부터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 바로 후반부의 묘사였는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부분이라서 우려했지만 실제로 보니 오히려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은 후반부에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일본 요괴의 분장도 생각보다 꽤 자연스럽고 괜찮았고, 주인공들이 당황하면서 이게 어떻게 된 것이고 요괴를 어떻게 물리칠지 그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이 단계별로 차근차근 빌드업되면서 긴장감을 유지하는게 좋았어요.
전반부에서는 주인공들이 사태를 바로바로 파악하고 조상 귀신을 어쨌든 통제 범위 안에 둔 것처럼 묘사된 반면, 후반부는 주인공들이 아예 감도 못잡고 당하기만 하다가 차례차례 그 진실과 파훼법을 극적으로 깨달아가고 물리치는 과정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100년 전 조상이 날뛰는 것보다 500년이나 묵은 요괴가 날뛰는게 확실히 좀 더 흥미진진했달까요. 그리고 요괴가 도깨비불이 되었을 때 등장인물들과 악당들의 과거를 다양한 플래시백 장면들을 빠르게 보여주는 것도 그런 초자연적인 상황에서 굉장히 잘 어울리는 스산한 연출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민식과 이도현 역시 후반부에 더 빛이 났고 특히 후반부 내내 이도현의 연기력에 놀라고 감탄하면서 보았습니다. 최민식 배우님도 잘못하면 약간 우스워질 수 있는 대사들(예를 들어 99%를 말하는 유해진에게 나머지 1%의 가능성을 따져묻는 장면과, 이 땅은 후손들이 살아갈 땅이야 같은 대사들)을 아주 절박하고 진정성이 담긴 설득력 있는 대사들로 승화시키는 모습이 정말 좋았어요.
다만 현재 흥행 중인 주변 아시아권 말고 서구인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를 생각해보면, 아마 극소수만 볼텐데, 어쩔 수 없이 좀 판타지스럽게 보이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단순히 좀 색다른 오컬트물이라는 장르적 측면을 넘어서,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가 지금의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 세련된 한국인의 낯선 이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의 정서와 집단무의식을 잘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집약해 놓은 작품인데, 과연 그 심층까지 볼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도 들더군요. 동아시아쪽 역사를 잘 아는 저의 유럽인 지인에게는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겠지만) 곡성과 함께 한번 보라고 추천할 생각입니다.
곡성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뒤늦게나마 재미있게 봤고, 파묘가 천만을 넘길 거라는 사실이 여러모로 뜻깊은 것 같습니다.
평점 :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