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실망스러웠습니다. 초반에는 주인공의 캐릭터성과 닥친 상황이 맞물려 흥미를 유발하는 가운데 여장을 한다는 설정에 어느정도 납득이 갑니다. 허나 중반부로 향할수록 전개가 매끄럽지 않고 이음새가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드는데 오로지 조정석의 원맨쇼와 개그로 모든 것을 채우려는 의도가 두드러집니다. 조정석의 타고난 끼와 연기 감각으로 만들어낸 웃음 유발 구간이 꽤나 있고 개그 타율도 낮다고 할 순 없지만, 2시간이 채 안되는 러닝타임 속에서 점점 식상함과 지루함 또한 함께 유발됩니다. 후반부에는 여장한 조정석을 그만 좀 보고싶은 심정마저 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항로 선택을 잘못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빠진 딜레마를 통해 시의적 이슈와 사회적 기류를 날카롭게 정면 돌파하며 신랄하게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로 방향을 잡았다면 꽤 신선한 국산 코미디가 탄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딜레마를 기껏 가져와서 찔끔찔끔 건드려만 보다가 쉽고 안전한 항로로 에둘러 가며 상투적인 시추에이션 코미디물에 안주하고 맙니다.
조정석이 메이크업에 공들여가며 열연을 펼친 캐릭터는 그저 웃음을 위한 도구로 소모될 뿐이고 드라마 또한 차곡차곡 쌓이지 못하고 휘발될 뿐입니다. 따라서 후반부로 갈수록 전개되는 상황과 인물들의 행동에 (납득이가 와서 한 소리 해야될 만큼) 납득이 가질 않으며, 이런 류의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물의 성장과 변화' 또한 전혀 울림을 주지 못합니다. 조정석이라는 코미디에 특화된 배우가 여장 남자로 분장하여 원맨쇼를 펼치며 관객들 배꼽을 노리는게 목적의 전부라면 차라리 SNL에서 하는게 더 웃겼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수확은 한선화의 존재감이 조정석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적은 분량이지만 오히려 한선화의 캐릭터가 인상적이며 조정석과의 콤비 개그도 상당히 잘 소화해냅니다.
조정석의 팬이나 이런 설정의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선호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2시간 짜리 극장용 장편 코미디로서 그다지 추천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 영화입니다.
*별점: ●●(2/5)
이것저것 안 따지고 조정석 원맨쇼 원하는 관객들 니즈엔 충분히 부합할 거란 생각도 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