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이나 <키메라>처럼 맘에 들었어도 꽤 잔잔한 영화를 2번 봤을 땐 중간중간 졸거나 잠들긴 하지만 확실히 보이는/들리는 게 또 다르군요. 

간만에 <키메라>를 2차 하니 오프닝부터 개구리 소리가 유난히 귀를 잡아끌었습니다. 

특히 베니아미나가 나올 때마다 개구리 소리가 들리는 게 인상깊더라구요. 

어쩌면 이 자꾸만 감기는 잠결상태라 가 더 밝아진 걸지도요. 여튼 이번엔 주인공 아르투처럼 비몽사몽간에 처럼 멍(夢~)하니 이미지의 잔상이 남았던 5가지 측면에 대해 풀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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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가 가득하며 전에 리뷰와 이어지지 않는 내용이긴 합니다. 다만, 이전글들이 꿈속 장면마냥 띄엄띄엄 중복/재생되어 있는 글입니다. :)

<키메라> 이탈리아의 정치풍자극-1(태양의 나라)

https://muko.kr/6865555

<키메라> 이탈리아의 정치풍자극-2(엑소더스)

https://muko.kr/6886057

 


[  ]  경칩(驚蟄Awakening of Insects)

A. 개구리와 봄

오프닝에서 "태양이 우릴 따라온다" 말했던 베냐미나의 대사처럼 전 이 영화가 이탈리아의 계절/역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영화라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과거 파시즘(전체주의)의 향수에 빠지지 않길 바라며 현 이탈리아의 총리 멜로니에게 보내는 메세지라고 해석했었지요. 비록 이 작품에선 거꾸로 멜로디가 관객에게 말을 걸긴 하지만요. 

(※ 파시즘에 영감을 준 고대국가 스파르타를 연상시킨 스파르타코의 직원이었던 멜로니에게 '빨갛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도굴 크루인 피로가 들이댄 적이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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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의 자궁에 꽂혀 자기 혼자 결혼을 꿈꾼 피로>

 

한편, 전 꿈 속 베니아미나를 키벨레 여신의 현현(present)이라 보고, 빨간 실은 대지의 여신 키벨레의 자궁(땅 속)과 이어진 탯줄을 의미한다 생각했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관점에서는 이스라엘(야곱)의 후처 소생이자, 나중에 감옥에서 출소해 총리가 된 요셉의 동복 형제인 베냐민처럼 다시금 가족이 화합하도록 이어주는 핏줄이라 바라봤었구요. 이 작품은 마치 쇠락해가는 농업/역사유산/종교문화 기반의 남부 이탈리아와 공업/기술/美적 트렌드 기반의 북부 이탈리아가 잘 화합하길 기원하는 것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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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지리적 형상이 떠오른 포스터와 붉은 실>

 

특히 후반부에는 기차역에 아이들이 우르르 나오는데요. 우리나라의 정치역사물이라 생각한 영화 <파묘>에서 임신한 지관의  결혼식으로 마무리한 것처럼 <키메라> 또한 새로운 세대의 을 기대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파묘>에서도 가장 어린 봉길이가 아침까지 퍼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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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위치에 따른 24절기>

 

아르투가 감옥에서 출소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처럼 이 작품은 겨울에서 탈출하여 을 맞이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참고로 태양이 황경 315°를 이루는 2월 초의 입춘(立春, start of spring), 그리고 봄비가 내리는 우수(雨水, rain water)를 지나 본격적으로 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절기를 동양에서는 경칩(驚蟄)이라고 부릅니다. 땅 속에서 내내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나 깜짝 놀라며 울기 시작한다는 3월초의 세번째 절기이지요. 경칩은 황경이 345°가 되는 양력 3/5~6일 즈음인데요. 그 다음엔 과 의 길이가 같아지는 황경 0°의 춘분(春分, vernal equinox)이 이어집니다.

※ 황경 : 지구(땅) 기준의 태양좌표계에서 태양이 황도(노란선)를 따라 움직인 경도(각거리) 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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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를 따라 태양의 경도(λ)가 이동하며 계절이 바뀜>

 

이탈리아 르네상스시기 가톨릭신학자이자 자연철학자/공산주의자였던 캄파넬라(종/벨이란 뜻)가 갈릴레이를 변호했듯이 실제론 태양이 우릴 따라오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거긴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대지의 여신 키벨레, 즉 (지구)을 기준으로 4계절이 복합된 동물 키메라처럼 시공간을 한데 뒤섞어 놓은 듯 하더군요. 여하튼 동서양 모두  밖으로 나온 개구리 소리를 의 상징으로 여긴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

그나저나 동양에서는 경칩 흙일을 하고 고로쇠물을 마시며 물그릇을 집안 곳곳에 놔두는 풍습이 있는데요. 이 작품에도 를 파다가 뜬금없이  마시는 장면이 종종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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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를 파헤치는 장면마다 항상 같이 등장하는 물>

 


B. 미나리아재비꽃/땅과 물/하늘

이번에 2차 했을 때 새롭게 눈에 들어온 건 노란색 꽃들, 이탈리아와 스파르타코가 입던 노란옷, 그리고 주로 파란옷을 입는 아르투가 유물을 숨겨둔 곳이 에 뿌리박지 않은 죽은 나무 아래의 철/빈깡통?이란 점이었습니다. 대게 동서양 모두 식물에 의 생명력이란 상징을 부여하는데요. 그러나 이 작품은 소싯적에 엄청나게 유명한 배우였던 할머니 배역에 (flora)이란 이름을 붙여주는 등 주로 이 새는 겨울/초봄 이미지와 함께 시들어/타들어가는 서글픈 식물을 상징적으로 쓴듯 합니다. /청동에는 이 슨 이미지를 자주 사용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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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젊은 시절>

 

한편, 갓 출소한 아르투는 길가의 노~란 미나리아재비 같은 느낌의 을 꺾어서 베니아미나의 사진 앞에 놓아두는데요. 미나리아재비(Ranunculus)는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잡초?로 그 강인한 생명력 때문에 식민지 개척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늘의 별똥별들이 떨어져 에 지천으로 깔린 이 되었단 설화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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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가 죽은 베냐민아에게 바친 시든 노란 꽃>

 

무엇보다 하천이나 물가에 피는 이 꽃의 이름은 라틴어로 작은(unculus) 개구리(rana)를 의미합니다. 동양에서도 개구리자리나 개구리갓, 개구리미나리가 이 미나리아재비의 가족인데요. 친척 중에는 아예 그리스어로 개구리(βάτραχος)를 뜻하는 다른 속인 미나리마름(Batrachium)으로 나눠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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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아재비(Ranunculus, aka. Buttercup)>

 

참고로 한국계 이민자를 다뤘던 영화 '미나리'는 아예 다른 계통의 식물입니다. 오히려 한국의 정치영화였던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에 나오는 양귀비과의 노란 '애기똥풀'처럼 미나리아재비는 독성이 강하기에 이면서 동시에 /항암제로 쓰인다는 게 포인트일 듯 하네요. 별명이 버터컵(Buttercup)인 이 미나리아재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심장을 멈춰두려고 마신 독약의 재료기도 하거든요. 

(미나리와 다르게 미나리아재비는 잘못 먹음 죽어요~!!! 서양에선 소나 말도 저세상으로 훅 간다는 썰이...) 

한편, 중후반엔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시들어/타들어가는 한여름에 피는 해바라기 꽃밭이 보이는데요. 해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극 양지식물인 해바라기는 토양의 중금속을 정화시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게다가 씨앗을 달달 볶아먹을 수 있으며, 해바라기씨유처럼 식용 기름을 쥐어짜낼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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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상을 파내버린 뒤 정신줄 놓은 아르투가 걸어간 해바라기 꽃밭>

 

땅에서 자라난 노란색의 꽃이란 점은 같지만 5~7월에 피는 미나리아재비가 물/죽음/재생과 밀접한 꽃이라면, 7~9월에 피는 해바라기는 태양/불/에너지와 더 밀접한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나리아재비의 꽃말은 '천진난만함', 해바라기의 꽃말은 '숭배'와 '열정'이구요. 때문에 전자는 미래의 아이들을, 후자는 과거 영광의 시대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여러모로 <키메라>에는 마치 하늘과 의 대비처럼 하늘색(셔츠, 양말, 차량)과 노란색(꽃, 이탈리아와 스파르타코의 옷)이 자주 등장하고, 이 가운데 은 하늘을 반전시키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는 인상이 들었는데요. 아르투가 마치 남녀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Y자 모양의 나뭇가지로  속의 수맥을 탐지하던 것처럼 이 영화엔 땅과 /하늘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음/의 관계처럼 시점이 뒤집어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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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에게 "비밀스러운 관계"(좌), "너도 우리랑 같잖아?"(우)를 시전하던 노란 옷을 입은 두 여인>

 

그나저나 경칩에는 겨우내 얼어있던 물이 풀리면서 태양열을 받아 따뜻~해진  위로 식물의 이 트고 벌레들이 기어나오자 개구리도 에서 깨어난 걸텐데요. 과거 동양에서는 경칩에 빈대/벌레를 잡기 위해 흙일을 하던 풍속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 영화의 후반부에 아이들의 머릿니를 잡더라구요. ㅎㅎ 참고로 미나리아재비는 민간에서 살충제로 쓰였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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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머리 안에 벌레는 없던 아르투>

 


C. 기차 역사 RIPARBELLA : '다시 아름답게 고쳐 쓰다' 

개인적으로 2회차 때 엄청 졸아버리긴 했지만 기차역 이름이 눈에 들어온게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전 끊임없이 앞으로 달려가는, 그리고 과거의 죽은자들이 타고있던 기차가 이탈리아의 역사(history)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솔직히 영화에 기차역(station)이 보이자 그제서야 이 다시 확 깨더라구요. 전 예전 글에서 '모두의 것'이면서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이 공유자산 같은 역사(station)란? 흘러가는 역사(history)중에 잠시 머물러 점유하는 현 시대(Era)를 의미하는 것 같다는 이야길 했었습니다. 이번에 보니까 역사의 이름이 '리파벨라'(Riparbella)더군요. 심지어 여주인공 이탈리아가 친절하게 또박또박 발음까지 몇번 해주더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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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아름답게 고쳐 쓰는 역사(station/history)>

 

호오~ '고치다/수리하다'란 뜻의 Repair의 국제공용 인공어(에스페란토어)인 'Ripar'와 '아름답다'란 뜻의 'Bella'가 결합된, 즉 "아름답게 다시 고쳐쓰다"란 뜻의 간이역이라닛! 어쩌면 현 시대(Era)가 함께 공유해야할 정신(spirit)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한편 Bella는 현대 이탈리어로 아름답다란 뜻이지만 옛 라틴어로는 전쟁(War)을 의미합니다. Ripar는 라틴어로 은행/재화/하구둑(Bank)을 의미하구요. 그래서인지 제 구글번역기가 리파벨라/Riparbella의 풀단어는 "반항하다"란 뜻의 코르시카어라고 알려주네요. 참고로 코르시카는 현재 프랑스령(유럽대륙을 점령했던 전쟁광 나폴레옹의 탄생지!)이지만, 고대에는 에트루리안들이 살았던 이탈리아 서쪽(해가 지는 쪽)에 있는 지중해의 이랍니다. 태양기준 로마의 왼쪽, 지구기준 로마의 오른쪽에 위치한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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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옆의 프랑스 휴양지, 코르시카섬>

 

독일의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님 못지않게 엄청 섬세하면서도 무섭도록 철두철미한 감독님이군요. ㄷㄷㄷ 

이탈리아의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님, 흠... 외우기 힘든 이름인데 잘 각인시켜 봐야겠습니다. 끄적끄적 

(개인적으로 과거 나치즘/파시즘의 역사를 자아성찰하는 두 나라의 영화가 제 취향에 맞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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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질까봐 두려운 아름답고도 험한 것 : 옛 영광의 시대, 땅의 유산>

 


D. 이탈리아의 딸들 : 콜럼비나와 치릴로

이 작품을 처음 봤을땐 이탈리아의 첫째딸 이름만 기억하고 둘째딸의 이름은 기억이 안났으나, 이번에 드디어 알아냈습니닷! :)

예전에 전 첫째이름 콜럼비나(Colombina)가 혹시 15C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출신이었지만 포르투갈에 살다가 카스티야의 이사벨1세의 후원을 받아서 스페인에 황금을 가져다준 콜럼버스를 상징하는게 아닐까란 상상을 해봤습니다. 최근에 이탈리아 경제가 똥망 상태라고 하니, 앞으론 인적 자산을 뺏기지 말고 우리 땅에 번영을 가져와 보자! 뭐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었거든요. 마치 영화 <가여운 것들>의 첫 여행지가 포르투갈의 리스본이었던 것처럼, 유럽의 번영과 제국주의는 대항해 시대 때부터 재가동되었으니까요.

(왠지 배의 모터 동력을 보여준 건 반복되는 역사를 의미하는 듯한...)

특히 콜럼버스가 활동하던 때는 종교개혁으로 암흑기라 불리던 중세에서 탈출해, 문예부흥 운동이 일어나던 시대였는데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가치를 재평가하면서 부활/재생이란 의미의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라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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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스페인계 같았던 첫째딸 콜럼비나>

 

그리고 2차하면서 알아낸 둘째딸 이름은 치릴로(Cirillo)였는데요. 치릴로는 80년대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경영 컨설턴트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간관리 방법인 '뽀모도로 테크닉'을 기획한 사람 이름입니다.

(실은 저도 이 뽀모도로 타이머를 꽤 유용하게 쓰고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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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뽀모도로 타이머와 무코님에게 나눔받은 굿즈 :D >

 

+그나저나 이탈리아가 노란바탕옷(앞) VS 흰바탕+노란꽃옷(뒤)을 입고 수화를 했던 카드형? 굿즈가 꽤 흥미로웠는데요. 

오호... 이부분은 저도 '많은 눈' 때문에 입조심을 좀 해야겠습니다. ㅋㅋㅋ

참고로 구글번역기에 따르면 Ti AMAZZO의 뜻인 널 '주길'거야는 한편으론 널 '사랑'해란 뜻이고, 

Che Peso!의 재미없긴!의 뜻은 한편으론 너무 무거워... 란 뜻이군요. 

의외로 모순된/아이러니한 정치성향을 가지신 꽤 재치있는 감독님 같단 생각이... :)

 

한편 치릴로는 나폴리 지방에서 농산물(밀)로 파스타를 만들 때 태양열과 바람으로 자연건조하는 방식을 재현한 공정을 개발한 엔지니어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걸 치릴로 공법(Cirillo method)이라고 하더군요. 영화 속에서 이탈리아는 파스타를 만들기도 했지만, 나중에 도굴 크루들 가운데 2월(February, 입춘!)이자 농장주(Farmer)를 뜻하는 이름의 파비아나(Fabiana)와 화해하며 같이 살았습니다. 참고로 이탈리아의 국기 색깔(초록/흰색/빨강)을 두고 토마토+치즈+바질 파스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요. 본래 초록은 희망을, 하양은 신뢰를, 빨강은 사랑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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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릴로 공법(좌)과 이탈리아가 만들어준 파스타를 대접받는 아르투(우)>

 

게다가 치릴로는 로마에서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기 전부터 활동하던 로마제국 황제 혈통의 가톨릭 성인 이름이더군요. 무엇보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주교로 성삼위 교리를 확립한 학자였습니다. 

(전 외가에 신부님이 있긴 하나, 친가의 영향으로 개신교에 속해있었다가 현재는 친한 지인들 덕에 유교, 불교도 흥미로워하는 "아몰랑~!" 상태라 성인/st. 방면으론 무지랭이입니다. 혹 가톨릭 신자분들 틀린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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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축일/사망일은 3월 18일(경칩-춘분 사이)>

 

잠시 찾아/파보니까 성 치릴로는 국가의 철학이 다신교에서 기독교로 넘어가는 시대에 가장 뜨거운 논란 대상이었습니다. 로마의 첫 기독교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가 그를 유배시킨 적이 있는데다가,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공인한 직후의 첫 니케아공의회에서 그의 파면 여부를 논의할 정도였지요. 아무래도 국가적/종교적 판도가 크게 뒤바뀌는 만큼, 당시 교리의 정통성에 관해 이런저런 의견이 갈리는 파벌주의가 만연해있었다는군요. 이 때 치릴로 성인은 학술적으로 치열하게 이단 논쟁을 벌이고 싸움과 화해를 계속 진행해가면서 가톨릭의 율법을 확립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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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배에 올라탄 도굴 크루 '톰바롤리'와 스파르타코 크루 '멜로니'>

 

어쩌면 성 치릴로의 행태는 무엇이 더 나은(좌)/옳은(우) 것일까를 두고 끊임없이 싸워나가는 정치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여러모로 이 작품은 감독님이 이탈리아 자국에 대한 애정과 회환, 불안과 기대를 녹여내며 현재의 시대정신(spirit of the age/time)은 어때야 하나?란 메세지를 담은 정치 영화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이과충/의 막눈임에도 이 작품의 풍자/문학성이 참 센스있다고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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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이양을 의미하는 종, 캄파넬라를 받아든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

 


E. 겨울잠 : 꿈과 기억 그리고 희망

이 영화에는 주인공이 드는 장면이 유난히 많은데요. 문학적으로 "OOO, 여기에 잠들다(sleep)"라는 표현처럼 동서양 모두 '죽음'을 ''에 비유하곤 합니다. 무엇보다 은 몸/뇌에 쌓여있던 피로를 회복(recovery)시키면서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long-term memory)으로 변환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마치 아르투가 꿈(dream)을 꾸면서 기차에 탑승해 과거의 역사적/일상적인 평범한 인물들에게도 잠시 특별하게 연결되었던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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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극장인가? 우리집 이불 속인가?>

 

음... 이 영화와 비슷하게 분위기가 꽤 나른하다고 생각했던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 감독의 작품 <애프터 양>이 떠오르는군요. 개인적으로 을 자지 않는 안드로이드 은 기억/memory이 구조화되지 않기 때문에 으로 나아가는 생물/Living Things이라 부르긴 힘들 것 같았습니다. 참고로 <애프터 양> 은 기억을 /tea에 빗대었는데요. 에 뿌리박지 않는 식물인 월가든, 수경식물, 행잉식물, 이끼, 접목, 어항 등이 등장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안드로이드의 이름인 Yang은 음양의 양(+)을, 입양아인 미카는 쪼개지는 광물(운모/mica) 혹은 전쟁을 주관하는 대천사 미카엘을 상징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드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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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양에서 잠이 든 안드로이드와 아이>

 

한편, (dream)이란? 뇌가 살짝만 깨어나 기억과 정보를 무작위로 재생시키는 거라 할 수 있는데요. 꿈은 잠잘 때 뇌 속에서 상상해내는 이미지를 뜻하기도 하지만, 동서양 모두 미래의 희망을 뜻하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자꾸만 을 자는 건 마치 가을에 추수를 마치고, 추운 겨울이 왔을 때 동식물들이 마치 씨앗처럼  속에 웅크려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겨울잠을 자는 것과 비슷한 듯 합니다. 이란? 봄/내일 아침을 준비하는 행위이기도 하면서 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시간/기억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해 앞으로의 희망을 기대하는 과정이니까요. (어쩌면 그게 키메라의 본질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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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을 끊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잠결에 막막해하던 아르투>

 

아아... 실은 2차하면서 더많은 떡밥을 새로 발견하고 싶었으나, 이 날 엄청 피곤했는지 저도 주인공따라 너무 심하게 졸아버렸어요. ㅜㅜ 심지어 이번에는 카메라 시점/세상이 한바퀴 뒤집어지던 탐사 장면이랑 쇠꼬챙이로 구멍 쑤시는 장면, 사진 찍던 멜로디가 관객에게  거는 장면, 이탈리아가 노래부르던 장면 등이 기억에서 싹다 사라져있더라구요. (대체 언제부터 이 든거냥~ 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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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디? 나는 누구? 마치 겨울잠을 잔 듯한 기분>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파묘>를 봤던 기억에 꽂혀서 그 여파가 두달 가까이 이어지던 중이었는데요. 어쩌면 지난달에 봤던 <땅에 쓰는 시>에서 미나리아재비 꽃을 자신의 시그니처로 삼는다던 정영선 조경가에 대한 기억이 어딘가 쳐박혀있는 피곤한 상태로 <키메라>의 2회차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잠결에 개구리 소리와 노란 꽃이 더 눈에 들어온 걸지도요. 실은 본업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치달은 상태이기도... 큽

영화볼 때 왠만하면 또랑또랑한 편인데, 하루에 영화 두편 보는건 역시나 체력적으로 무리로군요. 아무래도 인생의 /청춘이 훌쩍? 지나가버린 나이인지라... 아아~ 화려했던 옛 시절이여... 나중에 vod가 ~!!! 하고 오픈하면 그때나 3차 해봐야겠어요. 

개굴 개굴 벌써 그립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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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참~ 또 보고픈데 시간이 지나가니 볼 구멍도 희미하고, 솔직히 깨어서 볼 수 있을지도 아리까리한...>

 


[ ] 태양의 나라

01. 아르투 : 화림+김상덕+박지용

02. 키메라 : 오행의 복합체 묘벤져스

03. 플로라 할머니 가문 : 박지용 일가와 아기

04. 불(Energy)과 쇠(Wealth)

 - 착취 당하는 이탈리아와 金품을 나눠갖는 동료들 : 대신 칼맞는 봉길이와 돼지띠 인부들

05. 쇠꼬챙이 : 도깨비불에 꽂힌 쇠말뚝

06. 파상풍 조심~! : 동티(動土)

07. 기차 안의 승객들 : 보국사의 곡괭이를 든 이들

 

[ ] 엑소더스

08. 타오름/자본 vs 수평화/공유

09. 여신상(金) : 도깨비(金) : 가치(value)

10. 사진 찍는 멜로디 : 지관의 우주공학도 딸

11. 이탈리아로 간 아서(왕) : 이집트로 간 총리 요셉 : 로마로 간 교황청

12. 공유자산 기차역 : 보국사 : 시대(時代/ERA)

13. 죽은자의 붉은실 : 죽은자의 피 : 햇살의 은총(grace)

 

[ ] 경칩(驚蟄)

A. 개구리와 봄

B. 미나리아재비꽃/땅과 물/하늘

C. 기차 역사 RIPARBELLA : '다시 아름답게 고쳐쓰다' 

D. 이탈리아의 딸들 : 콜럼비나와 치릴로

E. 겨울잠 : 꿈과 기억 그리고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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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하늘이 담긴 물 웅덩이와 미나리아재비꽃, 나뭇가지와 못, 짓다만 건물이 널부러진 땅>


출처: 본인 브런치스토리
https://brunch.co.kr/@nashira/53


profile Nashira

밀리터리, 역사장르와 아드레날린+광활한 풍경+저음 사운드를 사랑하며,

건축+도시+환경, 음악영화의 글을 쓰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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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오피스 2024.05.23 12:25
    한 인간의 인생이 역사의 찰나라면 다시 그 안의 찰나를 포착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지금은 한때는 기차가 달리던, 허름한 간이역과 같지만 리페어벨라, 고쳐서 아름다움을 회복하려 노력중입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기지개를 펼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꿈을 실컷 꾸었으니 다시 일어날 시간입니다ㅎㅎ

    오늘 써주신 글을 읽고 꽤 감상적이게 됐네요ㅎㅎ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무슨일인지 몰라도 스트레스가 있으신듯 한데 일상의 순간순간에서 즐거움이 함께하시길 :)
  • @더오피스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
    묘하게 시적인 작품이라 감상적이 되기 쉬운 영화인 듯요. 
    거대한 국가의 역사든, 한 사람의 인생이든...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흐른다는 건 묘하게 서글픈 이야기인 것도 같습니다.
    (어릴 땐 하루빨리 자라고 싶지만 나이가 들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지요. ㅎㅎ)
    '일상'/'현재'가 중요한 법이니, 저도 힘차게~!! 읏챠~! :)
    그나저나 뭔 운명의 장난인지 아침밥 먹으러 가는데, 

    잡초(노랑 씀바귀)를 뽑아서 관리해주시는 아주머니들을 마주쳤네요. ㅋㅋ

    (이젠 잡초로 안보이고 제눈엔 이뻐보이는뎅;;)

  • profile
    더오피스 2024.05.23 13:05
    ㅋㅋㅋ이쁘기만한 노랑씀바귀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위해 다른 풀의 몫까지 지력을 빼앗아서 그런 걸까요?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독버섯에 화려한 무늬가 있듯이 여러모로 아이러니한 세상인 듯 싶네요ㅎㅎ
    그래서 힘들면서도 또 즐거운것이 인생 아닌가 싶습니다!
    점심도 잘 챙겨드세요!ㅎㅎ
  • @더오피스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Nashira 2024.05.23 13:15

    이 여린 들풀조차 땅의 한뼘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생존해나가는 중이건만,
    야멸차게 뽑혀나가는군요. ^^;
    무코님도 식사 잘하시고 즐거운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보내시길... ㅎㅎㅎ

    +전 간만에 파스타가 좀 땡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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