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 많이 들어보긴 했던 영화입니다.
멜로 장르를 좋아하지 않아서 한석규, 심은하 주연, 군산의 초원사진관 말고는 몰랐어요.
10년도 더 전에 군산 여행 갔다가 초원사진관에서 사진 찍어서
이메일로 받는 이벤트에 참여한 기억이 있어서 초원 사진관이 참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영화 속 90년대 중반의 군산과 제가 갔던 2010년대의 군산 풍경은
20년 사이에도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요즘은 또 많이 달라졌겠죠?
가끔 회귀물 장르에서 나오는 시대 고증장면들을 보면서 간간히 향수를 느끼곤 하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는 정말 그 시대가 찐으로 제대로 나와서
그 시절의 향수로 거의 습식사우나를 한 느낌이었어요 ㅎㅎㅎ
보는 내내 와..진짜 찐이다....ㅎㅎㅎ
첫 장면부터 요즘엔 볼 수 없는 남주의 흐린 눈썹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여배우들의 눈썹뼈가 훤히 보이는 산같은 눈썹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꾸며 낼래야 도저히 꾸며낼 수가 없는 그 시절의 질감에 냄새까지 자동으로 지원이 되더라고요.
초등학교 운동장에 조악하게 페인트 칠한 폐타이어 반씩만 묻어놓은거..
사진관 들어가면 나던 막 인화된 사진 냄새,
엄청난 활동량으로 늘 앞머리 땀으로 살짝 젖어있던 초딩 남아들 디테일,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온 비디오 테이프 냄새와 재생기에 밀어넣을 때의 그 느낌, 플레이 돌아가던 소리,
마루있던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의 마룻바닥 냄새,
마당에 있던 수돗가의 오래되어 부러진 수도꼭지 손잡이,
레트로한 유리컵에 담긴 시원한 보리차의 맛,
가족 둘러앉아 앞접시도 없이 숟가락 담그며 먹던 찌개 ㅎㅎㅎㅎㅎㅎㅎ
기억나는건 이 정도밖에 안되지만 다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가족 식사씬인데 화면에 사위가 완벽히 등지고 있는 장면은 너무 신선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김기천 배우의 젊은 시절 단역 모습도 재밌었고, 신구 배우의 젊은 시절도 아련했어요.
전미선 배우 짧았지만 반가웠습니다.
비디오 조작법 알려주던 부자의 롱테이크씬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서울랜드에서 배경으로 웨딩촬영 일행들 지나가는 장면은 단역이 맞나?
촬영장 배경 컨트롤없이 그냥 찍은건가? 아리까리할 정도로 정말 자연스러웠는데
비하인드 검색해서 읽어보니 실제 웨딩촬영 하던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뒤로 지나가는걸 찍은거라고 읽었습니다.
스마트폰 없던 그시절. 하다 못해 삐삐 정도는 썼던 시절일텐데 삐삐조차 한번도 안나옵니다.
기약도 없이 그저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요즘에 너무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심은하 배우는 너무 이뻐서 말.잇.못...
그시절 패션이 촌스럽게 느껴질까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진짜 패.완. 얼!!! 옷은 잘못이 없습니다...ㅎㅎㅎ 정말 하나도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디테일들 외에 영화 내용은 굉장히 일상적인 단편 단편들이 단조로운 느낌으로 나열된거 같은데도
쭉 이어지는 영화 필름이 아니라,
한석규의 직업이 사진사라서 그런지 그 시절의 사진카메라 필름처럼
짧은 시퀀스들이 슬라이드처럼 쓱쓱 지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여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담백한 장면과 대사들도 계속 여운에 남았습니다.
멜로인듯 멜로아닌 멜로같은 영화ㅎㅎ
메박 당.원.영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안봤을거 같은데 참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90년대 영화가 어느새 벌써 고전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네요.
멜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추천드리고 싶어요.
90년대 시간 여행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가치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