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풍자하며 도덕적 딜레마를 다루는 가족극이지만 전반적인 연출이 세련되지는 못합니다. 정직하게 계산된 플롯 속에서 톤이 과잉될 때와 절제될 때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으며 음악과 연기의 톤 조절이 아쉽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상적인 장면들이 꽤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한국 TV 드라마를 보고있는 듯한 느낌이 자꾸 듭니다. 여러모로 옅은 기시감만 불러일으킬 뿐 <기생충>같이 날카로운 유머도, <마더>같이 예측불허의 강렬한 에너지도,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같이 소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데서 오는 흡인력도,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같이 영화적 여백에 녹여내는 철학적 사유도 부족합니다. 인물들이 팽팽하게 맞서며 각자 딜레마에 처한 상황과 심경의 변화를 교차해서 전개하고 있지만, 이야기 자체에서 형성되는 극적 긴장감과 설득력이 배우들의 치열한 연기 대결에서 느껴지는 그것에 비해 약합니다.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이 풍부한 입체감을 갖추기에는 러닝타임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김희애의 연기 톤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며 장동건은 모처럼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배역을 맡았지만 둘의 앙상블에서 90년대 한국 드라마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나오는 걸 막을 수 없습니다. 설경구는 그냥 설경구 했고, 개인적으로 수현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가장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 것 같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을 뗄 수 없는 장면들은 정확히 세 번 등장하는 식사씬인데 그래서 그런지 마치 공간의 제약이 영화 전반에 존재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듭니다. 카메라로 각색하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펼칠 때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졸작이라고 볼 순 없고 나름의 장단점이 공존하는 무난한 한국 영화이지만, 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인생 영화이자 한국 영화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허진호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더 큽니다. 그만큼 원작에 기대어 누가 만들어도 이 정도는 만들었을 것 같은 영화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행복>처럼 따스함과 스산함이 공존하는 섬세한 연출로 내 눈물 콧물 쏙 빼놓으셨던 감독님 어디 가셨나요?
*별점 및 한줄평:
●●○(2.5/5) 식탁에 둘러앉아야만 탄력이 생기는 도식적인 이야기와 과정에 비해 작위적인 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