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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BEEF> (국내 제목 <성난 사람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감상했는데.. 이 10부작 시리즈의 엔딩을 본 순간 도저히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멍하게 이것저것 건드리고 있고 밖에 나가서 잠깐 산책을 하고 싶더군요. 이런 느낌 정말 오랜만에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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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화로 흥미를 끌고 3~7화 무난하게 쌓아올리다 8,9화로 클라이맥스 그리고 10화로 완벽한 마무리를 선보입니다. 

 시작은 익숙한 로드레이지입니다. 보복, 난폭운전을 지칭하는 해당 용어는 (조금 더 포괄적인 개념이긴 합니다. 차를 몰면 화가 폭발하는 이런 현상 모두를 포함합니다) 영화 장르에선 크게 낯설지 않은 개념입니다. 비교적 최근 작품인 러셀 크로우 주연의 <언힌지드>가 대표적인 로드레인지로 시작해 해당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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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드레이지는 뻗어나갈 길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대니(스티븐 연)과 에이미(앨리 웡)이 로드레이지로 악연을 시작했고 뻔한 드라마라면 이 로드레이지로 누군가가 죽거나 심하게 다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 입니다.  처절한 복수극의 끝을 해당 장르에선 흔하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BEEF>에서 로드레이지는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일 뿐입니다. 이야기를 촉발하는 중요한 소재로 쓰였지만, 절대 그 소재에 매몰되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내용으로 넘어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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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국내 아시안이라는 소재와 관련해서도 분명 할 이야기가 많을 작품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 더 큰 포괄성을 이 작품은 가지고 있다 생각하기에 인종과 관련된 내용에는 크게 집중하지 않고자합니다. 

 대니는 사업도 잘 풀리지 않고, 우연히 시작한 비트코인역시 떨어지고 있고 이런저런 우울함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에이미는 본인이 만든 회사의 성과로 인해 부유한 삶을 살고 있지만 역시 가족과의 관계, 사업에서의 성과 등과 관련하여 우울함에 지배당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대니는 할인매장 주차장에서 에이미가 모는 차와 시비가 붙어 보복운전을 하게 됩니다. 이 짧은 악연은 이들을 전혀 다른 삶의 방향으로 이끌어 버립니다. 각자의 삶에서 이 사건은 악연이지만 동시에 후련한 배출구였습니다. 대니는 에이미의 집을 알아내고 평범한 배관공인청 위장해 에이미의 집에 들어가 화장실을 테러하고.. 1화의 엔딩, hoobastank의 The Reason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도망가는 대니를 지켜보는 에이미는 미소를 짓습니다. 이 우울하고 복잡한 일상속에서 하나의 뚜렷한 배출구를 찾았기 때문이죠. 배경음악으로 쓰인 이 The Reason이라는 곡의 가사를 곱씹어 보면 묘하게 다가옵니다. 

 

I'm not a perfect person 

There's many things I wish I didn't do 

But I continue learning 

I never meant to do those things to you 

...

I've found a reason for me 

To change who i used to be

 

불완전한 이들, 겉으로 보이기에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이런 모습은 뒤로하고 완벽하지 못하고 우울한 일상을 살아가던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이유가 생긴 순간입니다. 이미 폭탄은 던져졌습니다. 시작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각자의 삶에서 나아가야할, 꼭 달성해야할 목표가 생겼습니다. 엔딩을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사건 직전의 대니는 끊임없는 자살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던 인물입니다. 이 로드레이지에 엮기게 된 것 역시 자살을 위해 구입한 전기스토브를 반품하는 과정에서 생긴것이죠. 말 그대로입니다. 매번 죽음을 고민하던 인물에게 살 이유가 생겼습니다. 다른 한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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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니가 살아가던 목표는 단순합니다. 부모님의 집을 미국에서 마련해드리고 온전한 가족을 완성하고자 합니다. 대니가 겉으로 꿈꾸는 모습의 가정이 결국 에미이의 가정일 것입니다. 대니가 생각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현실적인 방법은 본인의 사업을 안정적인 궤도로 올려놓는 것 입니다. 동생 폴의 명의로 새 사업을 시작하지만 빈번히 실패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구원해준건 가족이 아닌 다른 인물들로 가득찬 종교 즉 교회였습니다. 

 

에이미는 겉으로는 성공한 사업가 같아도 대니처럼 정신없이 달려와서 자신과 주변을 돌보는 법을 잊은 인물입니다. 본인이 원하는 집을 디자인했어도 막상 즐길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녀의 삶도 정상적이진 않습니다. 하루 빨리 지금까지 키운 사업을 매각하고 가족과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것이 에미이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5년간 더 이 사업에 몰두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게 되죠. 그런 에이미를 잠시나마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준것은 폴과의 대화입니다. 두 인물 모두 목표는 가족의 완성이지만 그들이 택한 해결책은 가족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다른 사회의 인물과의 상호작용입니다. 이 상호작용은 점차 많은 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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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중간중간 대니, 에이미의 시선에선 완벽하게 보이던 인물들도 결국 순간순간 감추어 둔 본성이 드러납니다. 에드윈은 농구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자 남들과 같이 욕을 하고, 조지는 겉으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에이미의 직원을 사랑하고, 조지의 엄마인 푸미는 예전에는 부유했을지 몰라도 현재는 이런저런 재정적인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고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친구조차 없는 인물입니다. 

 

 푸미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죠. 에이미의 입장에선 말그대로 골치아픈 '시어머니'죠. 가난한 성장환경을 가진 에이미와 부유한 예술가 집안이었던 조지와 만나 결혼했지만 푸미는 이 만남이 만족스럽지 않았을 것 입니다. 매번 거슬렸고, 마침 폴과의 만남이라는 건수를 잡았기에 자신의 뜻대로 이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패합니다. 의자와 도자기사업은 예전만 못하고, 결과적으로 에이미의 식물판매 사업에 에이미의 가족은 의존하는 형태입니다. 

 

 웃긴 지점은 초반 시점에서 의자는 푸미에게 팔아서는 안되는 사업이지만 에이미의 식물은 꼭 팔아넘기고 싶어하는 사업입니다. 애초에 맞지 않는 두 인물의 갈등은 당연히 예상되어있던 것이며, 결과적으로 의자를 팔면서 에이미의 사업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극단적인 복수를 할것 같던 인물들도 사실은 다 소심하고 그럴 의도까진 없었습니다. 에드윈은 대니를 질투하면서 기껏 한 복수는 잡지를 구독한 것이었고, 나오미는 에이미를 질투하면서 그냥 로드레이지의 진범이라는 증거만을 찾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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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작품에서 나온 에이미와 대니의 서로에 대한 공격은 순서는 달라도 결과적으로 대응됩니다.

대니는 에이미의 재산인 화장실을 테러했고, 발표회에 난입했습니다. 에이미는 대니의 재산인 트럭을 테러했고 대니의 사업에 별점 테러를 가합니다. 또한 이들을 공격을 위해 각자 가명을 사용합니다. 에이미는 이를 활용해 대니의 동생인(가족) 폴에게 접근하고 대니는 이를 활용해 에미이의 남편인(가족) 조시에게 접근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대응되지 않는 공격이 있습니다. 대니가 결국에는 취소했지만 아이작의 동료들이 저지른 강도사건은 에이미의 가족에게 피해만 안겼습니다. 이렇게 해결되지 못한 공격은 결국 마지막 순간 더 큰 강도사건으로 확장됩니다. 

 

 강도사건의 구조가 조금 특이합니다. 

원래 목적은 아이에 대한 몸값을 받고 아이를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에이미의 제안으로 돈 대신 값될 왕관을 가져가도록 했고 계획은 꼬이게 됩니다. 에이미의 집에서 돈<->아이를 교환하는게 우선이었지만 다른 인물의 집에서 왕관<->아이의 교환으로 바뀌게 됩니다. 즉 에이미는 자신의 재산이 아닌 타인의 재산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비슷한게 대니에게도 있습니다. 대니는 여러 금전적인 문제를 마주하자 아이작 즉 타인의 재산을 활용하여 이를 해결했습니다. 그 결과 화가난 아이작이 강도를 기획하게 되고 그 상황에서 에이미가 택한 해결방식 역시 대니와 유사하다는점은 독특합니다. 두명의 인물은 전혀 다른 양 극단에 위치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은 너무나도 닮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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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지막 10화에서 그들은 드디어 대화합니다. 여전히 증오로 시작된 대화지만 독이 있는 열매를 먹고, 팔이 골절되고 다리가 골절된 상황에서의 대화입니다. 정신적, 육체적인 공격을 위한 말이 아닌 각자의 진심을 쏟아냅니다. 너무나도 다른 것 같았던 두 인물은 또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그들이 분노를 쏟아낸건 결국 상대방을 향한게 아니라 극심한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현실과 혼란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대니는 에이미의 입장을 말하기도, 반대로 에이미는 대니의 입장을 전하기도 합니다. 서로의 창피한 경험을 말하기도 하고, 어둠이 있어야 빛을 경험할 수 있다는 대사처럼 자신들이 경험한 어둠을 공유합니다. 이 어둠을 통해 혼자가 아니길 바랬던 인물들은 서로를 대면했고 이해했습니다. 혼자인게 무서워 가족에 의지하고 싶어했고, 혼자인게 싫어 남들은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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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현대인들은 모두 어떤 의미에선 망가져있습니다. 사소한 일에 분노가 폭발하기도 하고, 모든 상황을 자기 책임으로 돌리고 우울해하기도 합니다. 에피소드 1을 볼때만 해도 대니와 에이미 모두 과격하고 극단적인 인물처럼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니 두 인물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스티븐 연과 앨리 웡 모두에게 최고의 필모가 하나 추가되었네요. (앨리웡은 예전에 넷플에 있는 스탠딩코미디 보고 좋아했는데 이렇게 멋진 연기를 선보일줄은 몰랐습니다 ㅎㅎ)

 

10/10

저에겐 올해 최고의 드라마가 결정된것 같네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A24 작품은 무조건 챙겨볼겁니다


bleac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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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부라더 2023.08.10 20:36
    별기대없이 봤다가 끝까지 봐버렸어요ㅜㅜ 이 드라마 느낌있다 하고 보니까 역시나 A24
  • @부라더님에게 보내는 답글
    bleachers 2023.08.10 20:41
    진짜 어느순간 놓지 못하겠더라고요 10화까지 쭉 달렸습니다
  • jjinnynim 2023.08.10 21:05
    다음주 수요일에 감독님 한국 오세요 저도 그래서 그곳에 가보려고 합니다
  • @jjinnynim님에게 보내는 답글
    bleachers 2023.08.10 21:13

    찾아보니 일정만 맞으면 저도 가고싶네요 ㅎㅎ

  • @bleachers님에게 보내는 답글
    jjinnynim 2023.08.10 22:29
    저도 비프를 올해 좀 인상깊게본지라 ㅎㅎ특히 10화는 소위 지립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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