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샤말란 감독 영화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특유의 이야기꾼다운 면모에 홀려서 정신 못차리고 보고 있더군요.
그의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본질성]입니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영화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할 겁니다.
하지만 샤말란은 영화적 미쟝센이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를 최대한 배제한듯이 영화를 만듭니다.
하지만 그 모두를 걷어낸 그의 영화에는 이야기가 남습니다.
영화의 본질은 각본, 즉 이야기 입니다.
그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 못차리고 빠져서 보게 만들죠.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샤말란의 개성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샤말란 감독님 영화 중 이제는 시리즈로 묶이지만 당시로선 상상도 못했던 3부작이 있습니다.
(해외에서 묶어 부르는 명칭이 있지만 사실 그 명칭 자체로도 스포가 되어서 임의로 <히어로 트릴로지> 라고 부르겠습니다.)
바로 <언브레이커블>, <23아이덴티티>, <글래스> 입니다.
세 영화 중 <23아이덴티티>를 가장 먼저 봤는데 스케일은 작지만 구성이 탄탄하고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영화였죠.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언브레이커블>까지 거슬러갔는데 정말 충격적이더라구요.
제가 <언브레이커블>을 볼 당시는 마블과 디씨가 현란하고 화려한 볼거리로 히어로 전성기를 만들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래되고 낡아보이는 저예산 히어로 영화가 무슨 감흥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순간 저는 가장 마음에 드는 히어로 영화를 만났습니다.
영화는 결국 규모나 자본력보다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로 시작되고 완성된다는 사실을 아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앞선 두 영화는 사실 별개의 영화로 봐도 상관없을 만큼 연관성도 없고 장르적 차이도 큽니다.
그 영화를 어떻게 묶을 것인가 하고 마지막 <글래스>를 틀었습니다.
미스터리 장인답게 흥미로운 진행이었지만 앞선 영화들을 엮어내고 마무리 짓는 영화 치고는 예산 문제 때문인지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나쁘지 않은 마무리를 지으며 끝까지 흥미진진한 시리즈로 남은 것 같습니다.
이번 3부작을 보면서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2부작과 마블의 과거와 현재가 생각나더라구요.
최동훈의 <외계+인>2부작은 뭔가 '남들 다 시리즈 하니까, <신과함께>도 그렇게 돈 벌었으니까' 하는 안일함에서 시작된 영화가 아닐까 싶더군요.
차라리 샤말란 감독처럼 별개의 영화를 엮어내는 식이 었다면 리스크 관리가 더 잘 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또 초기 마블이 좋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각 히어로들의 개인 영화를 독립적인 작품으로 선보이고 그 히어로들을 한데 묶어냈던 초기 <어벤져스>가 생각나더라구요.
지금의 마블은 시작부터 너무 큰 그림(수많은 영화를 유니버스로 묶으려는 시도)에 잠식되서 작은 조각(개별영화)의 재미를 전부 놓쳐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늘 과장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허무맹랑하지 않은 설득력이 바로 샤말란 감독의 힘 같다는 생각을 해보며 감독님 최신작 <똑똑똑>보러 갑니다 총총.
아 <언브레이커블>, <글래스>는 디즈니+, <23아이덴티티>는 디플에 없어서 쿠팡플레이에서 봤습니다.
저번에 디즈니 플러스 연간 구독권 5-6만원 할때 처음 구독했는데 뽕 뽑으려고 열심히 보는 요즘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