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I drink your milkshake! I drink it up!"
# 욕망
한 손에 은괴를 들고 부러진 다리를 끌며 황야의 돌밭을 힘겹게 기어가는 남자, 적어도 다니엘 플레인뷰에겐 건강보다 돈이 우선입니다. 의미심장하고 장엄한 음악으로 열리는 영화의 첫 장은 의도적으로 대사를 배제함으로써 그가 '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내며 단지 보이는 것 외에도 그가 살았을 삶을 어느정도 짐작 가능하게 합니다.
# 하늘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
일라이 선데이는 제3계시교 목사로서 사이비스러운 종교적 가치를 내세워 다니엘과 정면으로 대항합니다. 일라이 또한 다니엘 못지않게 탐욕적이며 어쩌면 가족적인 가치는 더욱 바닥에 내다버린 인물입니다. 야욕으로 가득찬 두 사람이 함께 밟고 있는 노른자위 땅에서 주인공은 결코 둘일 수 없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둘의 이야기는 영화 속 가장 매력적인 갈등입니다.
# 피에 대한 갈망, 돌아오는 절망
누구에게나 그렇듯, 고독한 야심가 다니엘에게도 한 줄기 빛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눈앞에 나타난 '헨리 플레인뷰'는 자신이 다니엘의 동생임을 밝힙니다. 여태껏 누구도 마음깊이 신뢰하지 않았던 다니엘은 만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헨리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냉혈한같던 그에게도 혈육의 정은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요. 만약 헨리가 정말로 다니엘의 형제였더라면 다니엘의 여생이 행복해질 여지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입니다.
# 뒤틀린 부성애
농아가 된 그의 양아들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만의 석유 사업을 하기 위해 멀리 떠나고자 합니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다니엘은 그 말을 결코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들의 미래를 응원해 주리라고는 더더욱 바랄 수 없죠. 비록 정을 나누고 아꼈던 양아들이지만 그의 곁을 떠나 새로운 석유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동정의 가치도 없는 경쟁자가 되겠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Bastard from a basket!" 잘못된 신념은 드디어 마지막 남은 인간미마저 그에게서 떨쳐냅니다.
# 불협화음
다니엘의 속은 원유처럼 검게 타들어가고 최후에는 자식을 잃은 슬픔까지 더해져 붉게 타오릅니다. 일말의 희망도, 의미도 남아있지 않은 순간에 문득 찾아온 일라이의 제안은 그의 온 몸을 휘감은 심지에 불을 붙였고, 결국 그 자리에는 피만이 흥건하게 남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은 다니엘이 내뱉은 "I'm finished."로 마무리됩니다. 바닥을 붉게 물들이는 피의 주인은 표면적으론 야욕의 대가를 치른 일라이지만 다니엘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둘의 싸움에서 승리자는 없었습니다. 이 때 귓가를 울리는 경쾌한 음악은 비극적인 상황과 전혀 조화롭지 못합니다. 누구와도 진정으로 어울리지 못했던 다니엘의 인생처럼.
물질만능주의에 찌들어버린 잘못된 희망은 누군가의 평생을 비참하게 만들고 의미를 앗아갑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
국내 개봉일. 2008.03.06
장르. 드라마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주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폴 다노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