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3980 14 0
muko.kr/1748289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첨부


수정됨_Call-Jane-EWKSF-feature.jpg

 

세계는 68 혁명 이전, 정치적으로는 냉전이 심했고 사회적으로는 보수적 성향이 강했다. 60년대 미국은 여성과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극에 달해있을 때였고, 여성운동과 흑인운동이 태동하고 있을 시기였다. 성적인 면으로는 킨제이 보고서에 이어서 마스터스&존슨 성 연구소에서 <인간의 성 반응>이라는 연구로 여성의 오르가즘이 질이 아니라 클리토리스라는 사실을 밝혀내며 점점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알아가고 지켜가는 것에 눈뜨기 시작했다.

 

영화 <콜 제인>은 60년대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민간 임신중절(낙태) 운동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중산층 백인 여성 조이(엘리자베스 뱅크스)는 변호서인 남편을 둔 사회운동에는 관심이 없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가 뒤늦게 둘째를 임신했는데, 그 임신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 임신중절을 하려면 병원 의사들의 합의가 있어야 했다. 산모가 죽을 위험이 50%에 달하는데도 남자들로만 구성된 의사들은 모두 반대의사를 표시한다.

 

jane3.jpeg

 

기독교 중심국가인 미국은 중절 수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새로운 생명을 죽인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거기엔, 안타깝게도 산모가 인간으로서 인식되는 게 아니라 '아이를 낳아 기르는'도구로써만 인정받는 시대였다. 임신상태를 중단하는 일은 각자 개인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는데, 대부분은 '원치 않는 임신'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산모가 아이를 낳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엔 이유가 되지 못했다. 아이는 하늘이 내려준 것이므로 반드시 낳아야 했다. 실제로 가톨릭의 기본 교리에서 원래는 부부끼리도 피임을 하면 안 된다. 성관계는 반드시 아이를 낳기 위해서만 해야 하고, 그러기에 콘돔이나 피임약을 쓰는 것은 '난잡한'행동이었다. 가톨릭 국가인 남미에서는 강간을 당해서 임신했어도 중절 수술을 하면 산모는 살인죄로 감옥에 갔었다. <콜 제인>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다.

 

call-jane.jpg

당시 실제 '제인스'의 전단지

 

이리저리 방법을 찾던 조이는 에 붙은 '임신? 원하지 않으세요? 제인에게 전화를'이라는 종이를 보게 된다. 어렵게 전화해서 찾아간 곳에서, 조이는 뭔가 냉정하지만 차분한 의사에게 시술을 받게 된다. 시술장면은 상당히 자세하고, 조금은 무섭게 시술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려진다. 시술 후 다들 모인 곳에서 조이는 알게 된다. 제인이라는 사람은 없고, 그곳에 모인 여성들 모두가 제인이라는 사실을. 여기를 처음 만든 버지니아(시고니 위버)는 조이에게 여러 가지 부탁을 하며 끌어들인다. 원래 '제인 Jane'이라는 이름은 영미권에서 익명의 이름을 말할 때 자주 쓰이는 이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홍길동'이나 '아무개'라는 뜻으로 남자는 존 도(John Doe), 여자는 제인 도(Jane Doe) 등을 쓴다.

 

이곳에 있으면서 조이는 많은 여성들의 사연을 듣게 된다. 강간을 당한 어린 여자도 있고, 바람을 피우다 임신한 경우도 있다. 다양한 사연들을 적어 메모로 남겨 서로 누구를 맡을지 정한다. 믿을만한 의사를 구해서, 여성들끼리 연대해서 안심하고 시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격이 좀 비싼 게 흠.

 

CJ_01109-352x235@3.jpg

 

조이 역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마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도 그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왜 불쌍하고 힘든 여성들을 도와주는 시술을 하는데, 돈 많고 바람피운 여자가 몇 번이나 시술을 하러 오는 것도 해줘야 하는 거지?'라고. 하지만 <콜 제인>이 위대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의사가 한 명이다 보니 시술 시간이 굉장히 한정적이라 순서를 정해야 하는데, 그녀들의 사연을 듣고 누가 더 중요한지 결정하는 게 그들 사이에서도 큰 논쟁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사연만으로 순서를 정한다면, 그것은 영화 초반 등장했던 '아무 상관없는 남자들이 여성 당사자의 몸과 인생에 중대한 결정을 내려버리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진다. 그리고 사연의 중대함으로 순서를 정한다면 결국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서로의 신뢰를 깨버리게 된다. 여성도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의 몸과 인생에 대해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이 임신을 중단하기로 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가 목표였다. 그렇기에 '제인스'가 12000명의 인생을 살릴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여성인권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MV5BNGUwODM1OGQtNGVkOS00YWE4LTljYzgtZGJhNDJhODAxMTIxXkEyXkFqcGdeQXVyMjkwMjY1MjI@._V1_.jpg

 

'제인스'는 신뢰가 중요하다. 시술을 받은 여성 중에서도 죄책감 때문에 신고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사연을 받아둔 쪽지로 서로의 비밀을 움켜쥐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더 이상 '제인스'가 필요 없어진 때가 오자, 이제 그 쪽지도 필요 없어진다. 그래서 하나씩 불에 태운다. 비록 마지막에 범정 싸움 장면들을 넣어서 더 재미있게 극적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콜 제인>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이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것처럼 아름답게 흘러가도록 그리고 있고 나는 그런 느낌이 매우 좋았다.

 

우리가 서로 노력한다면 여성들을 억압했던 법과 문화는 그렇게 하나씩 재가되어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

 

 


*조이의 남편은 60년대 미국 남성으로 치자면 상당한 페미니스트로 그려진다. 하지만 여전히 부엌일은 전혀 손도 안 대고, 꼰대 같은 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 시대상을 반영한 페미니스트라는점이 재미있게 표현된 캐릭터다.

 

*마지막에 68 혁명 이후라서 히피들이 마당에 다 모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얼핏 존 레논과 오노 요코 같은 인물이 스쳐 지나가니 눈여겨 볼 것.

 

*등장인물들은 실제 이름이 아닌 바뀐 이름들인데, 제인스를 만든 사람 이름이 '버지니아(처녀 여왕)'인 것이 좀 재미있다. 아래는 당시 체포되었던 실제 인물들의 머그샷.

 

jane-collective-mugshots.jpg

 

 

*출처: 본인 브런치

https://brunch.co.kr/@casimov/173

 

#카시모프영화리뷰 


profile 카시모프

별들 사이를 여행하는 방랑자.

 

이전 다음 위로 아래로 스크랩 (2)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첨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그 친절한 무코인의 댓글을 가져다 주세요. "

칼럼 연재를 원하시면 <문의게시판>을 통해 문의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제목 글쓴이 날짜
파트너 계정 신청방법 및 가이드 file admin 2022.12.22 462565
[CGV,MEGABOX,LOTTE CINEMA 정리] [44] file Bob 2022.09.18 472799
💥💥무코 꿀기능 총정리💥💥 [105] file admin 2022.08.18 806893
무코 활동을 하면서 알아두면 좋은 용어들 & 팁들 [66] admin 2022.08.17 554242
게시판 최종 안내 v 1.5 [66] admin 2022.08.16 1213856
(필독) 무코 통합 이용규칙 v 1.9 admin 2022.08.15 419597
더보기
무코님 감사해요. [2] file 컨피던스홧팅 2022.12.30 268
[영화의 발견] <노웨어 스페셜> [6] file 발없는새 2023.03.09 625
영화 <줄리엣, 네이키드> GV시사회 초대 이벤트 [22] file 마노 파트너 2024.09.09 3850
<스픽 노 이블> 악이 번식하는 사악한 방법 [5] file
image
22:30 753
Star Wars가 재미 없는 이유 [37] updatefile
image
2024.09.10 3943
Tim Burton의 저평가 받는 진짜 명작 [30] file
image
2024.09.06 7073
<원맨> 누가 성인이고 누가 죄인인가 [8] file
image
2024.09.05 3438
(영재방)내가 겪은 '에이리언:로물루스'의 어색한 부분들과 1편과의 사이에 있었던 사건(약스포) [3]
image
2024.08.30 5058
<킬> 살인과 광기의 경계 [15] file
image
2024.08.29 5151
Alien 시리즈보다 뛰어난 괴물 영화 ?? [20]
2024.08.28 3462
Judge Dredd 장르를 말아 먹은 실베스터 스탤론 [7] file
image
2024.08.24 4611
<트위스터스> 길들여지지 않는 것을 길들이기 [4] file
image
2024.08.22 3472
<에이리언: 로물루스> 아맥 VS. 돌비 (노스포 가이드 리뷰) [16] file
image
2024.08.17 3269
(영재방) 에이리언:로물루스 분석후기 - 시작부터 후속작까지 [2] file
image
2024.08.17 7976
<에이리언: 로물루스> 잡아먹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 [4] file
image
2024.08.15 2231
(영재방) 에이리언:로물루스 보기전에 알면 좋은 것들 [4] file
image
2024.08.14 5644
<퍼펙트 데이즈> 상처도 겹치면 짙어질까 [16] file
image
2024.08.08 1876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 느낌 좋네요~ 아마도 고양이가 등장한 이유? (+편의점 야식) / 스포 [8] file
image
2024.06.29 4589
<그래비티> 출산이란 무엇인가 [10] file
image
2024.06.28 4370
[퓨리오사와 소통] 힐라스와 마주보는 과수원길 (5챕터별 액션 시퀀스와 통신보안 / 스포) file
image
2024.06.28 5227
[퓨리오사와 나무-Ⅲ] 땅과 하늘★, 세계수 설화와 性 (잭과 콩나무, 사춘기의 인사이드아웃 / 스포) [2] file
image
2024.06.18 6453
[퓨리오사와 나무-Ⅱ] 좌우 운전석, 세계수 설화와 性 (물푸레나무의 바디와 눈물 / 스포) [4] file
image
2024.06.16 3737
[퓨리오사와 나무-Ⅰ] 사랑과 전쟁, 세계수 설화와 性 (복숭아나무 열매와 씨앗 ⑮ / 스포) file
image
2024.06.15 3768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