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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반, 세계 대전과 함께 시작된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백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역사상 최악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꼽힌다. 사건의 실상이 세상에 공개되자마자 종전 이후 유엔에서 세계 인권 협약을 도입할 만큼 사람들이 느낀 충격과 공포감은 엄청났다. 서구 문명의 압도적인 기술력의 발전이 그저 대량 학살이라는 비인간적인 일에 사용되었다는 점도 컸을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속 한 존더코만도의 이야기를 다룬 사울의 아들, 유대인 1,500명을 구출한 쉰들러의 이야기를 담은 쉰들러 리스트, 수용소에 갇히게 된 유대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인생은 아름다워 등등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수없이 만들어졌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특징은 모두 비극적인 서사, 보는 관객의 멘탈을 뒤흔드는 연출들로 사건의 잔혹함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또한 같은 홀로코스트라는 배경을 택했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에서 위 작품들과 큰 차이점을 만든다. 그리고 그 방식에서 오는 서늘함은 그 어떤 작품보다 강력했다.

귀를 기울이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배급사의 로고가 나온 후 약 3분간 검은 화면과 함께 기괴한 사운드가 사방에서 쏟아진다. 사람의 소리인지, 아님 단순한 전자음인지 구별이 안 가는 상황 속에서 이미 영화는 앞으로의 진행 방식을 미리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후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에 거주하는 독일인 회스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이게 전부다. 수용소 내부의 학살을 보여주지도 않으며, 전쟁과 관련된 장면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호수에서 카누를 타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어느 단란한 가족의 모습만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소리로 말한다. 러닝타임 내내 사방에서 쏟아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비명소리와 밤낮 가리지 않고 돌아가는 화형소의 소리, 총격음은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끔찍한 지옥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일상 속 소리뿐만 아니라 사운드트랙까지 모두 기괴한 사운드를 뿜어내는데, 극장에서 직접 듣고 있으면 정말 별거 아닌 소리인데도 관객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준다. 평범한 화면과 기괴한 사운드의 불협화음이 불러오는 불쾌감이 상당하다. 

시각과 청각, 두 가지의 감각으로 감상하는 영화의 특성을 너무나도 영리하게 활용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쾌감을 주었거나, 수용소의 소리가 담겨있지 않았더라면 이만큼의 공포감을 주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악마는 다른 세상을 사는가?

비극과 절망이 두꺼운 벽을 넘어와도 회스 가족은 아무렇지 않게 생활한다. 수용소에 설치할 화형소의 설명을 들을 때도, 죽은 이의 옷을 입을 때도, 죽은 이의 금니를 만질 때도 이들의 얼굴에서 죄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악의 평범성을 통해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홀로코스트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정보의 공유가 빠른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누군가의 죽음도, 누군가의 사고도, 어느 나라의 전쟁까지도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화면을 통해 마주한다. 그리고 매번 그렇듯 별다른 주의 없이 다른 소식을 접하러 간다. 

시상식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는 가자 지구 전쟁을 언급하며 무엇을 ‘했’는지가 아닌 무엇을 ‘하고’있는지 보라는 감독의 말처럼, 회스 가족은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초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을 마치며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정말 재미가 없는 작품이다. 예술영화가 모두 그렇다고 하지만 이 작품은 유달리 재미가 없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반전도 없으며 대중성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특별한 건, 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청각과 시각의 불협화음이 만들어내는 공포감은 극장이 아니라면 절대 느낄 수 없다. 큰 화면과 사방에 둘러싸인 스피커. 제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구비했다 한들 극장에서 느낄 공포감의 반도 못 느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한다. 

더불어 이미 수많은 작품이 사용했던 홀로코스트라는 소재를 마치 처음 마주하는 것처럼 만드는 작품의 연출과 주제도 정말 좋았다. 

인생 영화, 필람 영화라고 하기에는 많이 조심스러운 작품이지만 당신이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꼭, 꼭 극장에서 보길 권한다. 


profile 박재난

세미는 뽀미에게 물린 상처에 물이 닿지 않게, 손을 높게 들어 올리고는 샤워를 한다. 엄마는 예의도 없이 불쑥 들어와 다 큰 딸의 상처에 주방용 랩을 대충 감아주었다. 세미는 그게 나쁘지 않았다.

 

세미는 조이와 단둘이 마주보고는 '사랑해'라는 말을 가르친다. 세미는 그 말을 또렷이, 아주 정확하게 반복했다. 눈치 없는 아빠는 세미의 방으로 쳐들어와 조이에게 아빠 해봐, 아빠 잘생겼다! 같은 말들을 던지며 장난을 쳤다. 세미는 아빠를 내쫓고는 조이에게 다시 속삭인다. '사랑해."

 

우리는 세미가 잠드는 모습을 보게 된다. 조금씩 아주 서서히 주변의 소리도 시야도 사라지는 그 모습을. 오늘 하루 세미에게 좀처럼 찾아오지 않던 평화가 드디어 찾아오고 있음을. 설레는 마음도, 슬픔도, 사랑도, 모두 뒤로 한 채로, 아주 천천히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너는

 

잠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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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쥴리 2024.06.21 04:52
    너무 정성스럽고 좋은 후기네요 많은 부분 공감하고 갑니다. 영화관에서 봤을 때 더욱 웅장하고 괴리감 느껴지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어요.
  • @쥴리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박재난 2024.06.21 07:53
    극장에서 봐야 압도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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