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SF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한 영화가 나온 적이 있다. 바로 젊은 VFX 아티스트였던 가렛 에드워즈의 장편 연출 데뷔작, <몬스터즈>다. 이 영화는 영국에서 48시간 내에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Si-Fi London 컨테스트에서 우승하여 50만 달러의 적은 제작비를 지원받아 6명의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효율적인 시각효과 사용과 날것 같은 인상을 주는 연출로 저예산의 한계를 잘 극복했으며, 가렛 에드워즈의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인 프로덕션 관리 능력은 대형 스튜디오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흘러 헐리웃에 입성한 가렛 에드워즈는 두 편의 헐리웃 대형 블록버스터를 연출했다. <몬스터즈> 다음으로 연출하게 된 <고질라>는 1억 6천만 달러가 들었고, 그 다음 연출한 <로그 원>은 2억 달러 넘게 투입된 초대형 프랜차이즈 영화였다. 이 두 영화는 상업, 비평적으로 충분히 성공을 거두었으므로 에드워즈는 그 다음으로 2억 달러 이상의 영화를 또 얼마든지 맡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의외로 그는 약 10년 전 <몬스터즈>를 만들던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차기작으로 선택된 영화는 SF 영화인 <크리에이터>(당시 가제는 'True Love')였는데, 많은 CGI 시각효과와 액션이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통상적인 헐리웃의 예산 책정 방식대로라면 아무리 적어도 1억 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것이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에드워즈가 나름의 계산을 해보니, 제작팀을 비행기로 보내 로케이션을 하는 것이 스테이지크래프트(거대한 LED 스크린 스튜디오)나 북미 스튜디오 세트 촬영을 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아주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그러니까 크로마키나 세트로 현실을 재현할 바에는 그냥 직접 가서 찍는게 비용에서나 품질에서나 더 좋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가렛 에드워즈는 다양한 국가와 자연 환경에서 최대한 저렴하게 찍기 위해 게릴라 방식의 프로덕션을 계획했다.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네팔 등 수많은 국가를 돌아다니며 찍어야 했는데 스탭 수십 명이 한꺼번에 움직여야 하는 통상적인 헐리웃 로케이션 방식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규모의 제작팀을 동시에 여러 지역으로 보내 촬영했고, 이때 모빌리티를 극대화하기 위해 조명 등의 촬영 장비나 촬영팀을 최대한 간소화했다. 히말라야 정상에서 찍거나 단 3명의 제작진으로만 촬영할 때도 있었는데, 주연을 맡은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촬영이 절반 정도 끝났을 때, 난 이 영화가 디즈니나 리젠시 제작 영화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혹시 내가 인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찍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그리고 아리 알렉사나 소니 베니스 같은 하이엔드 카메라가 아니라 엔트리급 카메라인 FX3를 선택한 것도 예산 절감 목적이 아닌 이러한 게릴라 프로덕션의 일환이었다. FX3는 유튜버용 카메라로 유명한 알파7 기반의 영상 카메라이며 미러리스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아주 작고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또한 다량의 조명 설치가 곤란한 소규모 영상 프로덕션을 위해 만들어진 카메라이다보니 베이스 ISO가 12,800으로 아주 높아서 저조도 환경에서도 준수한 품질의 영상을 뽑아낼 수 있는데, <크리에이터>처럼 모빌리티가 중요하고 조명 설치가 제한적인 프로덕션에 딱 맞는 카메라인 것이다.
그럼에도 FX3는 제대로 된 상업영화 촬영에 필요한 기능 몇 가지가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개량과 연구가 필요했다. 촬영 당시 FX3는 상업영화 제작에 필수적인 타임코드 동기화 기능과 아나모픽 촬영을 위한 디스퀴즈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다(타임코드 동기화와 아나모픽 디스퀴즈는 이제 공식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도 포토캠의 도움을 받아 몇가지 소프트웨어 개조를 통해 필요한 기능을 추가할 수 있었고, 아토모스 닌자를 달아 12비트 ProRes RAW로 녹화하여 VFX 작업에 충분한 화질을 확보했다. 다만 후반부의 몇몇 장면은 ILM 스테이지크래프트에서 촬영했는데, 이때 필요한 젠록(Gen-Lock) 기능만큼은 FX3에 추가할 수 없어서 FX9을 사용했다고 한다.
FX3을 선택한 것에 더해 촬영 종사자들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바로 화면비였다. <크리에이터>는 파나비전의 70mm 필름 아나모픽 화면비인 2.76:1로 제작되었다. 이는 현재 표준 와이드스크린 화면비 중 가장 넓은 화면비인데 4K 풀프레임 센서에 불과한 FX3로 촬영했다는 것이 가히 놀랍다. 다만 현존 디지털 카메라 중 아나모픽 2.76:1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는 파나비전 DXL2 뿐이라 FX3으로 2.76:1 촬영을 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공동 DP인 오렌 소퍼에 따르면 KOWA 75mm 아나모픽 렌즈로 영화의 98%를 촬영했는데, 해당 렌즈는 2x 압축밖에 지원하지 않으므로 촬영 후 포스트에서 2.76:1로 크롭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이 제작 방식은 에드워즈가 이미 데뷔작인 <몬스터즈>에서 썼던 방식과 거의 동일하다. 물론 규모 자체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긴 했으나, 10명도 안되는 제작진이 멕시코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었던 <몬스터즈>의 경험이 분명 <크리에이터>의 제작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가렛 에드워즈는 이런 효율적인 프로덕션 덕분에 본래 3억 달러 들어갈 영화를 겨우 8,600만 달러에 찍을 수 있었다고 했다. 요즘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비가 2억 달러는 우습게 넘길 정도로 상향평준화된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정말 놀라운 효율임이 분명하다.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 평균 제작비는 날이 가면 갈 수록 높아지는 중이다. 여기에는 인플레이션, 높아지는 인건비와 포스트 프로덕션 비용 등의 다양한 영향이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높은 제작비가 잘 이해되지 않는 영화가 너무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특히 올해 5월 개봉한 <분노의 질주 10>은 CGI 품질이 전반적으로 상당히 저열함에도 불구 제작비만 무려 3억 4천만 달러가 투입되어 올해 개봉한 영화 중 대표적인 효율 실패작이 되고 말았으며, 스테이지크래프트를 적극 활용한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역시 2억 달러가 투입되고도 아주 뒤떨어지는 시각 효과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8,600만 달러로 만들어진 <크리에이터>의 등장은 아주 인상적이다. 그린 스크린 세트나 스테이지크래프트 없이 실제 배경을 찍고 VFX를 입히는 보수적인 방식의 CG 작업을 주로 하여 높은 효율 달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값싼 제작비에 어울리지 않게 시각적인 완성도가 아주 훌륭하기에 앞으로 제작될 1억 달러 내외 중예산 SF 영화들에게 좋은 프로덕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소니 FX3로 찍었다고요?;
아니 이정도 대형 블록버스터를 500만원짜리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다뇨 ㅎㅎ;;;; 놀랍네요. 재미있는 정보 감사합니다 ㅎㅎ
화요일에 보러갑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