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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알프래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을 봤다면, 오프닝에서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상징인 아루테손라후 산을 배경으로 거대한 VistaVision 로고가 뜨는 것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아루테손라후 산의 거대함을 스크린으로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듯 말이다.

 

한국에서는 비스타비전이라 하면 필름보다는 1.85:1이라는 화면비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비스타비전은 화면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전용 필름 포맷의 이름이며, 1.85:1 비율은 플랫(Flat)이란 이름으로 따로 표준화되어 있다. 또한 요즘 촬영 업계에서는 비스타비전이라고 하면 보통 1.5:1의 센서 규격을 뜻할 때가 많으므로 1.85:1을 비스타비전이라 부르는 것은 틀린 표현에 가깝다. 이런 식으로 비스타비전 용어가 국내에 잘못 퍼져있기도 하고, 이 포맷이 후대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 칼럼에서 다루게 되었다.

 

 

등장

때는 1954년, TV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급격한 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헐리웃 스튜디오들은 각자 독자 규격의 라지 포맷을 내놓기 시작했다. 당시 영화들은 35mm 필름의 전체 면적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4:3 화면비가 많았는데, 이보다 좌우로 더 넓은 영화 포맷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발 주자가 바로 35mm 필름 영사기 3대를 나란히 붙여 대형 화면을 만드는 '시네라마'(Cinerama)였고, 그 다음은 아나모픽 기술을 쓰는 20세기 폭스의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였다. 당시 또 다른 메이저 스튜디오였던 파라마운트 픽처스 역시 이에 경쟁할 특수 포맷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으며, 그리하여 내놓은 것 중 하나가 바로 '비스타비전'이다.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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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타비전은 제작에 있어 독자 규격의 촬영용 필름과 전용 카메라를 필요로 했다. 필름 판형의 크기는 4퍼포레이션 35mm 필름 판형 두 개를 합친 것과 비슷했고, 실제로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나온 결과물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필름의 너비가 넓어서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움직이는 방식을 택했고, 그 결과 한 컷당 무려 8퍼포레이션이라는 너비를 자랑했다(이는 훗날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 작동 방식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면적이 35mm 필름의 두 배인 덕분에 35mm 필름에 어거지로 두 배 압축해서 촬영하는 아나모픽 시네마스코프보다 화질도 훨씬 선명했다. 화면비는 판형의 면적인 최대 1.5:1까지 기록할 수 있었지만, 영화 촬영 시에는 상영 스크린과의 호환성 문제로 보통 1.66:1, 1.85:1, 2.00:1 중 하나가 주로 선택되었다.

 

비스타비전은 시네마스코프의 아나모픽 렌즈처럼 특수한 렌즈를 필요로 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필름이 35mm 필름보다 훨씬 비싸고 전용 카메라가 필요해서 제작 비용이 저렴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미지를 압축해서 왜곡이 심한 아나모픽 시네마스코프와는 다르게 네이티브 와이드스크린 촬영이 가능하다는 장점 덕분에 나름의 유용성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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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필름의 좋은 화질이 무색하게도 상영 시스템은 35mm 필름 프로젝션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비스타비전으로 촬영해도 상영용 프린트는 이를 35mm 필름에 축소 인화해서 만들어야 했다. 몇몇 영화가 비스타비전 프린트로 상영되긴 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고, 파라마운트 측은 소수 개관되어 소수의 관객만 볼 수 있는 전용관보다는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에 전용관 확대에 미온적이었기 때문. 이런 이유 때문에 비스타비전 전용관이 없어서 실제 상영 시에는 비스타비전 필름의 화질을 온전하게 체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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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애초에 촬영 필름에 기록되는 디테일 수준 자체가 다르다보니, 축소 인화를 하더라도 35mm 필름 촬영작보다는 화질이 선명했다. 또 상영에 35mm 필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영관에서 별다른 장비 없이도 상영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그러니까 비스타비전은 제작 단계에서만 특수한 필름과 카메라를 사용했을 뿐, 상영 단계에서는 특수한 무언가를 필요로 하지는 않기 때문에 상영하는 입장에서는 경제성이 좋은 포맷이었다.

 

 

흥망성쇠

첫 비스타비전 촬영작은 1954년 개봉한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으며 당시 흥행에도 성공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상영 프린트도 비스타비전으로 제작하여 전용 프로젝션으로 상영된 몇 안되는 비스타비전 영화 중 하나였다. 또한 MGM에게도 사용 라이센스를 판매하여 알프래드 히치콕이 <현기증>, <나는 결백하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같은 비스타비전 포맷의 대표작들을 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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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tigo (1958)

 

그러나 비스타비전은 나중에 등장한 70mm 필름 포맷 때문에 얼마 되지도 않아 위기를 맞이한다. 35mm 필름의 3배 면적 크기의 필름을 사용하며 전용 프로젝션까지 갖춘 70mm에게 비스타비전은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기 때문. 더군다나 비스타비전은 35mm 상영 시스템을 그대로 쓰다보니 음향이 주로 2트랙 믹스였던 것에 비해, 70mm는 전용 4트랙 믹스로 무장하여 당대 최고의 상영 포맷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또한 결과적으로는 비싼 비스타비전 필름과 카메라를 쓰는 것보다 아나모픽 시네마스코프가 더 저렴했으며, 그냥 카메라 렌즈를 마스킹하거나 35mm 필름을 크롭해서 와이드스크린을 구현하는 저렴한 방식이 인기를 얻는 바람에 비스타비전은 매우 애매한 위치에 놓였다. 이렇게 60년대부터는 35mm 필름과 70mm 필름이 주류가 되었고, 파라마운트의 비스타비전은 1961년의 <애꾸눈 잭>을 마지막으로 등장한 지 7년만에 헐리웃에서 종적을 감추게 된다.

 

 

먼지에서 먼지로

파라마운트는 헐리웃에서 실패하여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된 비스타비전 필름과 카메라를 해외에 판매했는데, 특히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이를 다량 구매하여 2000년대 전까지 잘 써먹었다. 오시마 나기사의 <교수형>, <감각의 제국>과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이 바로 그 당시 일본의 대표적인 비스타비전 촬영작이다.

 

또 70년대부터는 특수효과가 각광받으면서 그동안 죽어 있던 비스타비전에게 새로운 효용성이 생겼다. 특수효과를 실사 영상과 합치는 컴포지팅에서 35mm 필름을 쓰면 화질 저하가 심했는데, 여기에 팔레트로 35mm 대신 비스타비전 필름을 쓰면 훨씬 선명한 화질로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에 <제국의 역습>처럼 많은 특수효과가 들어가는 SF 영화에서 비스타비전이 제한적인 용도로 자주 쓰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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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mpire Strikes Back (1980)

 

컴퓨터 CGI가 일반화 되었지만 디지털 카메라 성능이 떨어지던 2000년대에도 VFX 컴포지팅에서의 화질 열화를 줄이기 위해 비스타비전 필름으로 촬영하는 영화가 꽤 있었다. 대표적으로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그러했고, 크리스토퍼 놀란 역시 <다크 나이트>, <인셉션>에서 비스타비전 카메라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고해상도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가 우후죽순 나오면서 2010년대부터는 특수 용도로도 더 이상 쓰이지 않았고, 코닥에서도 따로 비스타비전 필름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완전히 사장된 상태다.

 

 

영향

비스타비전은 훗날 아이맥스의 탄생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카메라의 형상이나 넓은 너비 때문에 필름이 옆으로 움직이는 작동 방식도 유사하며, 수평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시네마스코프나 70mm와는 달리, 수직적인 이미지를 더 강조한다는 공통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명 카메라 메이커인 레드에서는 Dragon이나 Monstro, V-Raptor 센서처럼 비스타비전의 판형을 계승한 VV 규격 라지 포맷 센서를 주력으로 삼고 있다. 흔히 풀프레임이라고 부르는 36x24 디지털 센서 역시 비스타비전 판형과 크기가 아주 유사하고 화면비도 1.5:1로 동일해서 명칭은 다르지만 사실상 같은 규격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비스타비전의 1.85:1 화면비는 훗날 플랫이라는 이름으로 DCP 표준 컨테이너가 되었고, 다양한 화면비에 대응하기 좋다는 높은 효율성 덕분에 현재 대다수의 상영관이 채택하고 있는 주류 화면비이기도 하다. 물론 플랫에 스코프를 상영하는 것도 상하로 레터박스가 크게 생기긴 하지만, 스코프에 플랫을 상영하면 훨씬 큰 필러박스가 생기기 때문이다. 가정용 와이드스크린 화면비인 HDTV와도 차이가 아주 적어서 TV용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1.85:1로 제작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렇게 비록 필름 자체는 더 이상 효용을 잃어 쓰이고 있지는 않지만, 70년대부터 유행한 각종 SF 영화들의 특수효과 촬영에 주로 사용되거나 아이맥스 개발에 영향을 주는 등 기술적으로는 큰 공헌을 했다. 포맷 변혁이 한창이던 시대에 태어났고, 하필 나오자마자 70mm라는 강적을 만난 탓에 적잖은 장점이 있었음에도 너무 빠르게 퇴장한 감도 없잖아있다. 그럼에도 후대 영상의 많은 요소에 스며들어있기 때문에 유산으로서 존재감은 여전히 느껴진다.


profile Supbro

영화 기술에 대한 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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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초코무스 2023.03.23 11:20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코님 글을 여러번 정독해야겠습니다.
  • profile
    Mesmer 2023.03.23 13:38

    양질의 글 하나하나 잘 보고 있습니다 항상감사합니다 👍

  • profile
    BOGO 2023.03.23 17:31
    좋은 정보를 또 쌓아갑니다! 감사합니다
  • profile
    부라더 2023.04.21 21:23
    칼럼생기니 이런 좋은글을 이제 봅니다..

칼럼 연재를 원하시면 <문의게시판>을 통해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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