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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도 또 한 편의 대작 영화가 등장했다. <바후발리 시리즈>로 유명한 S.S. 라자몰리 감독이 만든 <RRR (Rise, Roar, Revolt)>이 그것이다. 이미 <바후발리>로 인도 내에서 역대 인도영화 최고 수익을 올리며 그 능력을 인정받은 라자몰리 감독이 이번엔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까. <바후발리>는 볼리우드가 아닌 톨리우드라고 지난 <바후발리 - 카르마란 무엇인가> 글에서 소개한 바 있는데, <RRR>역시 텔루구/타밀어로 만들어진 남인도 영화 톨리우드이고, 인도의 주 Andhra Pradesh와 Telangana 에선 이미 10일 만에 역대 최고 수입이었던 <바후발리 2>의 수입을 넘어섰다. 현재 인도 내에서 역대 인도영화 수입 3위의 흥행을 달리고 있고, 여러 가지 박스오피스 기록을 세우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이 봐도 재미있을까? <바후발리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다면 분명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인도영화 특유의 과장된 액션과 뮤지컬스러움을 디즈니 영화를 보듯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특히 한국인은 일제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인도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기가 더 쉽다.

 

<RRR>이 무엇이 그렇게 특별하기에, 인도를 넘어서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가? <화이트 타이거>가 인도의 암울한 현실을 그리면서도 인도의 성장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영화였다면, <RRR>은 대영제국의 지배 아래 강제로 하나로 묶여버린 인도인들의 아픔, 그리고 그곳에서 피어난 인도인들의 민족주의와 단결 정신을 그리고 있다. 실제 기록에는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인도의 독립운동가 알루리 시타라마 라주(Alluri Sitarama Raju)코마람 빔(Komaram Bheem)이 서로 만나서 우정을 나눴다면 어땠을까에 대한 대체역사물이다. 불과 물로 상징되는 두 주인공의 깊고 순수한 우정은 단순히 두 독립투사의 흥미로운 비화일 뿐만 아니라, 인도 사람들이 하나로 합침으로써 낼 수 있는 강한 힘을 두 남자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영화 제목인 <RRR>은 처음엔 주연배우 둘과 감독 자신의 이름 앞글자를 딴 가제였다가, 그것이 너무 유명해져서 공식 제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RRR이 무엇의 약자로 하면 좋을지 팬들에게 투표를 해 결정했다. 힌디어와 글로벌에선 <Rise, Roar, Revolt (저항, 포효, 봉기)>로 정해졌고, 텔루구/타밀어 지역에선 <Raudraṁ, Raṇaṁ, Rudhiraṁ (Rage, War, Blood - 분노, 전쟁, 피)>로 정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 속에 라마 신의 가호가 깃들어 있고 배우들의 이름에도 다 라마 신이 들어가므로, 제목 <RRR>은 정말 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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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지만 다른 두 명의 영웅
이 영화에 등장하는 라마 라주(램 차란)코마람 빔(라마 라오 주니어). 두 사람은 인도에서 같은 텔루구어를 쓰는 지역인 옛 안드라프라데시 주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2014년 이후 안드라프라데시주에서 코마람 빔이 태어난 지역이 텔랑가나주로 독립했다. 이 지역의 독립과 관련해서 많은 정치적 이슈들이 있었고 독립운동도 많았으나, 분리된 현재는 정치인들의 잇속만 챙겨준 꼴이 되어 그 운동의 피해는 지역주민들이 떠안게 되었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두 영웅이 손을 잡고 우정을 나누고 힘을 합침으로써, 작게는 텔랑가나와 안드레프라데시가 서로 같은 인도라는 것을, 크게는 다양한 인도의 민족들이 하나의 구호와 깃발 아래 하나 될 것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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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 라주는 대영제국의 경찰로 등장해, 화가 난 인도 군중들을 때려잡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 모습이 흡사 한국 드라마 <각시탈> 초반에 나오는 이강토의 모습 같다. 제국에 충성하는 식민지인의 모습. 코마람 빔은 엄청난 힘과 기세로 숲 속에서 호랑이와 싸우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괴력을 가진 타잔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정체를 숨기고 이슬람교도로 변장한다.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친절하게 소제목으로 박아 넣기까지 하며 라마 라주는 불, 코마람 빔은 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것이 영화 끝까지 이어지며,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을 통해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인도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라마 라주는 당시 과학적으로 세련된 격투기인 권투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체력단련을 한다. 싸울 때도 분석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정확하고 효율적인 타격을 한다. 반면 코마람 빔은 자연에서 내달리고 동물과 싸우며 얻은 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격투기도 고대 남인도 무술인 칼라리파야투를 사용한다. 칼라리파야투는 보리달마 대사가 중국으로 전해서 소림무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외공을 중시하는 남쪽 무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동물의 모습을 흉내 내고, 날아서 공격하고 지르고, 상대방을 꺾고 등 뒤로 잡아서 넘긴다. 동아시아의 모든 무술을 합친 것 같은 모습이다.

 

 

 

특히 칼라리파야투는 칼싸움 시에도 날아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모습이 독특한데, 점프할 때 뒷발을 펴지 않고 위로 접는다. 그게 그냥 멋있으라고 하는 동작이 아니라, 수많은 전쟁 중에 만들어진 실전적인 칼라리파야투의 모습이다. 내가 누군가를 공격할 때 내 뒷발도 공격당할 수 있으므로 몸 안쪽으로 사지를 넣어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코마람 빔은 점프 동작에서 그 시그니쳐 동작을 자주 취한다. 격투 시에도 무식하게 힘만 쓰는 것이 아니라, 등 뒤로 돌아서 상대방 목을 잡고 넘기는 동작을 자주 보여주는데 이건 완전히 칼라리파야투의 동작이다.

 

 

 

 

이렇게 둘은 쓰는 무술에서도 완전히 차별성을 보여준다. 현대의 복싱과 고대의 인도 무술. 그리고 라마 라주는 책을 많이 읽고 영어에도 능통한 지적이고 전략가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코마람 빔은 숲 속에서 자라서 영어는 잘 못하지만 전통의학, 신앙을 잘 알고 있고 자연을 섬기며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은 실제 역사와 반대되는 부분이 많다. 감히 라마 라주를 잠시라도 영국에 충성하는 인물로, 총을 쏘는 인물로 그린다? 코마람 빔을 잠시라도 이슬람교도로, 무식한 숲 속 부족 사람으로 그린다? 이건 난리 날 일이다. 그래서 코마람 빔이 이슬람 모자를 쓰는 예고편이 나오자 인도에서도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그것이 캐릭터의 서사를 위한 부분이라고 스토리를 말하고 해명을 한 뒤에야 수그러들었다. 우리나라도 역사적 상상과 역사왜곡 사이에서 선을 넘어 대중의 빈축을 산 사례가 많지 않은가. <RRR>은 그런 선을 꽤 잘 지키며 창작을 한 경우다. 후에 그들이 진짜 역사 속 모습이 되기까지 그들의 마음이나 영웅적 서사를 망치지 않도록 잘 그렸다. 하지만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이름까지 그대로 썼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앞부분에 '이 영화의 지명 인물 등의 이름이 완전한 허구이다'라는 문구를 넣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라마 라주는 '정글의 영웅(Manyam Veerudu)'라고 불리고 활을 쏘았으며, 코마람 빔은 탁월한 리더로 총을 들고 게릴라전을 하며 신격화된 인물이다. 원래 그들을 기리는 동상도, 라마 라주는 활을 들고 있으며 코마람 빔은 소총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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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정글의 영웅 라마 라주, 오른쪽은 곤드족의 혁명의 지도자 코마람 빔.

 

서양에서 이름을 지을 때 흔히 신화나 성경 속 인물을 넣어 짓듯이, 인도에도 그런 이름이 많다. 라마 라주의 '라마'라는 이름은 <라마야나>라는 인도의 고대 서사시에 나오는 인물로, '라마찬드라'라는 이름의 신이며 서유기의 원전이라고도 불릴 만큼 대단히 인기 있는 작품의 주인공이다. (손오공의 모티브인 원숭이 하누만이 나온다) 재미있게도 라마 신의 시그니쳐 무기가 바로 활과 화살이다.

 

신화 속 라마는 시타라는 여인과 짝이 되는데, 실제 역사 속 독립운동가 라마 라주도 어릴 적 친구의 여동생인 시타와 플라토닉 한 사랑을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갑작스럽게 죽고 말았다. 그러자 라마 라주는 자신의 이름 앞에 시타를 넣어 '시타라마 라주'가 되어, 그녀를 영원히 기억하기로 했다. 영화 <RRR>에서는 라마 라주의 연인으로 시타가 등장해, 역사 속 하나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또 채워 준다.

 

코마람 빔의 '빔'은 '비마'라는 이름으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비마세나'라는 등장인물이다. 힘이 세기로 유명하며, 철퇴를 쓴다. 한국으로 예를 들면, 캐릭터의 이름이 '꺽정'이라면 누구나 '임꺽정'을 떠올리며 '힘이 센 인물이겠구나'라고 자연스레 생각이 드는 것과 같다. 괜히 코마람 빔을 엄청난 괴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하는 게 아니다. 그 이름의 이미지가 원래 그렇다.

 

또한 코마람 빔의 부족인 곤드족은 숲 속에서 살며 자연을 숭배한다. 그래서 호랑이를 잡을 때도 '미안하다'라는 말을 한다. 특히 나무를 숭배한다. 코마람 빔이 채찍으로 고문을 당하며 정신을 잃으려 할 때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이 그의 얼굴을 쓰다듬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그저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는 모티브가 아니라 신의 손길을 느끼는 장면이고, 그래서 코마람 빔은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사실 <라마야나>는 라마찬드의 연인인 시타가 납치를 당해 구하러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RRR>에서는 코마람 빔의 여동생이 납치되고 구하러 가는 이야기가 되면서 서로의 스토리도 반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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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원래 하나가 아니다
인도는 원래부터도 하나가 아니었다. 아예 다른 어족, 다른 민족, 각기 다른 종교인들이 수없이 모여 살고 있는 대륙이다. 당연히 그들 사이에서도 '인도인'이라는 민족의 정체성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영국은 그들을 지배하기 위해 India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퉁쳐 묶어 식민지배를 했다. 서로 이웃에 불과한 민족과 부족 국가끼리, 하나로 뭉뚱그려져 영국의 수탈을 받는 동안 인도인이라는 동질감이 생긴 것이다. <RRR>에서는 영국이 어떤 식으로 잔인하게 인도를 통치하고 수탈했는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영국은 이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식민 지배하는 국가에 크게 병폐를 저지른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분열시켜 지배하라"는 원칙이다. 식민지인들은 영국인보다 수가 월등히 많기 때문에, 하나로 합쳐서 힘을 낸다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러기에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도록, 계급 간 종교 간에 갈등을 부추겼다. 인도는 특히 분열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어, 유연했던 카스트제도가 훨씬 공고해졌고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국가가 분열되었으며 민족 간의 갈등도 지금까지 끊이질 않는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 태어난 주도 원래는 하나의 주였지만 2014년에 분리되어 버렸다. 

 

원래부터가 통일된 적이 없는 서로 다른 국가에 다른 민족이었지만, 사실 인도의 그 다양함은 또 하나의 힘이 된다. 인도 대륙에 사는 우리들이, 서양-유럽 문명에 비해 뒤질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바로 Naatu Naatu (힌디어: Naacho Naacho) 음악-댄스 장면이다.

 

영국의 인도 총독의 조카인 제니(올리비아 모리스)의 생일 잔칫날, 영국인들은 모여 왈츠를 추고 있다. 이곳에 초대받은 라마 라주와 코마람 빔은 제니의 리드로 왈츠를 배워 춘다. 그런데 제니의 친구이자 최고의 춤꾼이라고 자부하는 제이크는 코마람 빔이 왈츠를 제대로 추지 못하는 것을 천하게 대하며 비웃는다. 이때 제이크는 자기가 춤을 보여주겠다며 탱고, 스윙 등을 춰보이는데, 스윙댄스 - 정확히는 찰스턴 동작을 할 때 드럼 연주자인 흑인이 비웃는 장면은 깨알 같은 재미. 스윙은 원래 흑인 춤인 데다 제이크가 실제로도 너무무 못 췄다.

 

그런데 여기서 보여주는 제이크의 춤은 전부 볼룸댄스다. 볼룸 댄스는 남녀가 짝을 맞춰서, 남자가 리더가 되고 여자가 팔로어가 되어, 남자의 리드에 따라 여자가 돌고 동작을 만들어가는 춤이다. 그래서 라마 라주가 바로 등장해서, Do you Know, Naatu(Dance)?라고 하며 인도의 춤을 보여 준다. 여기서 보여주는 인도의 춤은, 자유분방하고 흥겹고 즐거우며, 빠르고 경쾌하다. 그리고 리더와 팔로어의 경계가 없이 서로 어깨동무하며 즐기고 경쟁한다. 그래서 이 파티에 온 여성들도 남자와 같은 동작으로 다리를 흔들며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춘다.

 

 

Naatu Naatu 영상.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텔루구어 음악 영상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남자에게 끌려다니는 춤이 더 세련된 춤인가? 원초적인 즐거움을 모두 다 공유하는 춤이 좋은 춤인가? 사실 누가 더 낫고 말고는 없다. 그냥 문화가 다를 뿐이다. 인도가 가진 문화와 힘도, 영국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즐겁고 멋진 문화라는 걸 보여준다. 어찌 보면 더 평등하다. 남녀가 다 같이 능동적으로 추니까.

 

우리가 보면 다 비슷한 사람들 같지만, 지역마다 피부색이나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천차만별이며 종교에 따라 옷도 다 다르다. 인도는 하나의 색이 아니라 여러 개의 색이다. 주인공이 숨어서 지내는 도시나, 독립운동을 하려고 모인 사람들도 모두 다른 옷차림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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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데 마타람!
그럼 이런 둘로 나눠진 주인공과 상징으로 감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까? 서로 엇갈려 있는 진실과 창작의 스토리, 상징들. 이것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우정을 나누고, 끊어진 밧줄을 하나로 연결하고, 서로 손을 잡으면서 교차되다가 마지막에 하나로 합쳐지며 폭발한다. 그 엇갈림과 풀어짐은 마치 끊어진 밧줄이 매듭을 맺듯이, 다양한 인도의 문화와 사람들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힘차게 말하고 있다.


<RRR>에서는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모여 있지만, 배척하거나 미워하는 모습보다 서로서로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도망치는 사람이 있으면 숨겨준다. 민족의 자긍심을 깨워주는 코마람 빔의 노래에 다같이 감흥하고, 라마 라주의 약속을 믿고 기다린다. 서로 다른 두 사람도 뜨거운 우정을 나누며, 진심을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감명받아 자신을 바꿔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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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de Mataram 반데 마타람


라마 라주와 코마람 빔이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다리 위에서 만나는 장면. 처음으로 만난 두 사람은 멀리서 서로를 알아본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빠르게 의사소통을 해야하는데, 라마 라주는 여기서 소리치지 않고 동작으로 보여준다. 상대방이 무슨 언어를 쓰는지도 모르고, 영어를 할 줄 아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간을 쓰지 않고 빠르게 의사소통을 한 것이다. 

 

거기에서 라마 라주는 깃발을 챙겨 들고 물로 뛰어드는데, 그 깃발에는 "반데 마타람"이라는 문구가 써져 있다. "반데 마타람"이란 '어머니 조국을 찬양합니다'라는 뜻으로, 인도인에게 국가의 지위를 가진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인도의 독립운동과 함께 해온 노래로, 많은 인도의 독립운동가들과 민중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독립을 외쳤고 독립투사들은 죽으며 반데 마타람이라고 외쳤다. 그래서 이 노래의 제목, 문구는 인도의 자주독립을 상징한다. 하필이면 이 문구가 쓰인 깃발로 라마 라주가 코마람 빔을 감싸줘 불에서 지켜주는 건 굉장히 상징적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작전이 성공한 후에야, 둘은 서로 이름을 말하면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고, 둘이 완전히 통한다는걸 느끼고 반가워한다. 이 장면은 인도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지, 그럼에도 서로 어떻게 통하고 공감하며 사는지 잘 보여준다.

 

여기서 어머니라고 함은 바라트 마타(Bhārat Mātā)를 의미하는데, 바라트는 인도의 원래 국명이고 마타는 어머니를 뜻한다.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는데, 인도라는 나라 자체를 어머니, 혹은 여신으로 의인화한 것이다. 인도는 워낙에 다양한 신이 존재하는 만큼, 서로 하나의 인도라는 조국에 대한 개념은 없지만 바라트 마타라는 모습 덕분에 더 이해하기 쉬웠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모여있는 강당 안에서, 벽에 그려져 있는 여신의 모습이 바로 바라트 마타다. 하지만 바라트 마타는 힌두신의 개념을 가져온 것인 만큼, 조국의 개념을 또 다른 신으로 만든 것에 무슬림들의 반발도 심했다. 무슬림은 우상숭배나 다른 신을 섬기는 게 금지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라트 마타는 많은 인도인들을 하나로 뭉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틀림없다.

 

 

 

 

[이하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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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되어라!
코마람 빔과 라마 라주는 서로의 마음은 모른 채 깊은 우정을 쌓았음에도 엇갈리기만 한다. 코마람 빔은 라마 라주가 경찰로 잠입해 무기를 탈취하려는 진짜 의도를 나중에서야 알고, 감옥에 갇힌 라마 라주를 구하러 간다. 코마람 빔이 라마 라주의 감옥을 힘으로 뜯어버리는 순간,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시작된다. 다리를 다친 라마 라주, 다리 힘이 세지만 총을 다루는 데는 서툰 코마람 빔. 둘은 여기서 하나가 된다. 아니, 합체한다! 코마람 빔은 라마 라주를 어깨 위에 얹어 무등을 태우고 내달린다. 마치 두 로봇이 하나로 합체하듯, 말도 안 되게 합체되어버린 두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액션을 보여준다. 이 부분이 정말 대단한 상징이면서 통쾌하기 그지없다. 섞이지 못하는 두 사람이 힘을 합친다는 상징은 여러 군데 나왔지만 아예 합체를 시켜버리다니! 라자몰리 감독의 상상력에 박수를 친다.

 

그리고 다리를 다친 라마 라주를 숲 속으로 데려간 코마람 빔은, 라마찬드의 사당에 라마 라주를 데려가 눕힌다. 약초를 빻아서 다리를 치료하고, 붕대 대신 라마찬드라의 붉은 깃발로 라마 라주의 다리를 싸맨다. 그리고 라마찬드 석상 발치에 있는 붉은 가루로 라마 라주의 이마에 선을 긋고 기도를 한다. 이마에 칠하는 붉은색은 전사 계급을 의미한다. 이제 라마 라주는 이름만 라마가 아니라, 그의 영혼에 라마찬드라 신이 깃들게 되었다. 영국군이 그들을 소탕하러 쳐들어오자 깨어난 라마 라주의 모습은, 총을 다루고 현대적인 격투기를 하는 라마 라주의 모습이 아니다. 완성된 '정글의 영웅' 알루리 사타라마 라주의 모습 그대로이자, 라마찬드라의 모습 그 자체다. 라마찬드라의 가호를 받고 새로 태어난 라마 라주와, 자신의 영역인 숲으로 돌아온 코마람 빔은 엄청난 괴력을 발휘해 영국군을 전멸시킨다. 

 

하나로 힘을 합치자는 민족주의의 영화가 20세기 초에 나왔다면 프로파간다적 영화라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도를 억압하는 영국도 없고, 인도는 군사 경제 강국이며, 카스트가 남아있음에도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나라다. 이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라자몰리감독의 카스트를 옹호하는 입장이 바후발리에 이어서 여기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말한다. 특히 지식인의 모습을 보이는 라마 라주가, 아무것도 모르는 숲 속 부족 코마람 빔을 일깨워주는 모습을 그렸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라마 라주 역시 코람 빔으로부터 배웠다. 자연과 전통 신의 모습에서 민족을 일깨울 수 있는 방법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스스로가 라마의 화신으로 변했다. 그것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그저 아랫 계급을 가르치려 드는 영화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가 바뀌어가는 - 하나 되어 뭉치면 서로가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반데 마타람을 부르며, 하나로 합체하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인도여, 분열하지 말고 하나가 되어라!

 

 

 

 

*Naatu Naatu를 찍은 화려한 궁은 다름아닌 키이우에 있는 우크라이나 대통령궁이다. 영화의 마지막 촬영을 그곳에서 했는데, 촬영이 끝난 후 몇달 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악역을 맡은 영국배우들이 다 영국인이 아니다. 심지어 가장 나쁜역할인 총독과 총독 부인은 아일랜드 배우다. 아마 마음껏 영국인의 악행을 연기했을 것 같다.

*끝으로 영화의 마지막, 여느 인도영화처럼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경쾌하게 노래를 하며 춤을 춘다. 여기에는 한국인은 잘 모르는 다양한 인도 독립투사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누군지 간략하게 소개한다. 대영제국에 대항한 인도 독립운동가 뿐 아니라, 그 이전시대에 저항정신을 가졌던 인물들까지 소개하면서 그들이 모두 우리 인도인이다라고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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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커타의 불씨 - 수바 찬드라 보스 (Subhas Chandra Bose) : 독일, 일본제국과 손잡고 영국으로부터 인도를 독립시키려 했던 독립운동가. 자유인도 임시정부 초대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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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라트의 불씨 -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Sardar Vallabhbhai Patel) : 인도의 통합을 이끈 인도 건국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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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투르의 불씨 - 키투르 첸남마(Kittur Chennamma) : 키투르 왕국의 여왕. 동인도회사에 대한 무장봉기, 반군을 이끄는 최초의 여성 리더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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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루넬벨리의 불씨 - 치담바람 필라이(V. O. Chidambaram Pillai) : 인도양의 무역을 독점하던 영국의 BISNC에 대항해서 SSNC라는 원주민 인도 운송회사 설립, 무역전쟁을 함. 전 인도 국민회의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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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자브의 불씨 - 바갓 싱(Bhagat Singh) : 카리스마 있는 인도의 혁명가. 영국 경찰차장과 경찰서장 저격, 델리 중앙 입법부 폭탄 테러, 단식투쟁. 순교자이자 가장 인기 있는 인도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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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구투리의 불씨 - 탕구투리 프라카삼(Tanguturi Prakasam) : 간디가 시작한 'Quit India'운동 참여, 수감. 인도 마드라스 프레지던시 총리, 안드라주 초대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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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시의 불씨 - 파자시 라자(Pazhassi Raja) : 꼬따얌 왕국의 왕자. 18세기 말 동인도회사의 수탈에 대항해 전쟁을 이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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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타족의 불씨 - 시바지 본슬레 1세 (Shivaji Bhonsale I ) : 17세기 마라타 제국의 초대 황제. 무굴제국의 탄압에 맞서 농민들을 규합해 해방시킨 마라타족의 영웅. 

 

 

 

출처: 본인 브런치 brunch.co.kr/@casimov/107

 

#카시모프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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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 사이를 여행하는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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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lkiah 2022.08.23 12:23

    올해 최고의 인도영화죠

    간만에 나투나투 틀어놓고 어깨춤 좀 춰야겠어요

  • @Hilkiah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2.08.23 12:25
    언제봐도 들석거리게 하는 노래와 춤이죠 ㅎㅎㅎ
  • profile
    슈고 2022.08.23 13:17

    그냥 마냥 창작이 아니라 실제 인물과 신화에 기반한 영화였군요

  • @슈고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2.08.23 13:20
    그렇습니다. 원래 인도 독립운동가들을 신화속 인물에 비유한것도 있고, 실제로 라마라주는 스스로 라마찬드라처럼 입고다녔다고 해요 ㅎㅎ 라자몰리 감독 영화는 대부분 신화의 비유를 넣는것 같습니다 ㅎㅎ
  • Maetel 2022.08.23 16:02
    감독이 인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두 남주의 절절한 브로맨스를 통해 넘나 잘 드러난 작품이죠.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인도영화를 더 보고 싶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D
  • @Maetel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2.08.23 16:10
    감독이 인도의 찐 보수주의자 같긴 합니다. 하지만 '이게 인도야! 간지 철철 넘치지!'를 마구 드러내 보여서 좋아요. 우리나라도 이런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요 ㅎㅎ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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