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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개봉한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콜래트럴>은 LA 도시를 담아내는 그 스토리텔링이나 연출이 인상적인 영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기술적인 성취를 절대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디지털 촬영 역사에 있어 한 획을 그은 작품이기도 한데, 이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는 것 같아 칼럼을 준비하게 되었다.

 

2001년,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부터 소니의 디지털 HD 카메라를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 헐리웃에도 디지털 카메라가 입성하게 되었다. 소니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를 위해 시네알타 F900, F950을 개발하여 내놓았는데, 화질이 아주 나쁜 수준은 아니었지만 필름보다는 확연히 떨어져서 예상과 달리 폭넓게 쓰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의 잠재력과, 이를 통해 이끌어낼 수 있는 무언가를 눈여겨 본 몇몇 필름메이커들은 조지 루카스의 디지털 실험에 동참하기로 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마이클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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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만은 <콜래트럴>의 배경이 될 LA 밤거리를 살아 숨쉬듯 최대한 생생하게, 아니 아예 작중 등장인물인 맥스나 빈센트처럼 하나의 캐릭터로서 묘사하고 싶어했다. 그는 2001년작 <알리>에서 일부 분량 촬영에 시네알타 F900을 사용해보면서 디지털 촬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화질은 썩 좋지 않았지만 특유의 생생함이 있어서 <콜래트럴> 촬영에 딱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필름이 아닌 디지털을 메인으로 촬영하기로 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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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CineAlta HDW-F900R

 

첫 3주간 <콜래트럴> 촬영을 담당했던 폴 카메론 DP는 디지털 촬영을 하기에 앞서, 소니 F900, F950, 톰슨 Viper로 테스트 촬영을 해보며 디지털 촬영을 익혔다.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보다 편리함을 주요 강점으로 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당시 기준으로 아직 실험적인 기술 수준이었고 헐리웃에 디지털 프로덕션이 덜 정착된 바람에 실제로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카메론 역시 디지털 카메라의 너무 부드러운 화질과 녹조가 낀 듯한 색감, 그리고 극악의 노이즈 컨트롤 때문에 이건 도저히 영화에서 쓸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메론 못지않게 마이클 만 역시 고집이 강해서였을까, 결국 만은 촬영 시작 3주만에 의견 차를 이유로 폴 카메론을 해고하고 디온 비비 DP를 새로 데려와서 디지털 촬영을 진행했다.

 

디온 비비 역시 폴 카메론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촬영 경험이 없었지만, 이전에 <인 더 컷>과 <시카고>에서 훌륭한 촬영을 선보인 바가 있는 DP였다. 그리고 그는 이런 특징을 <콜래트럴>의 디지털 영상에 그대로 재현하여 살아 숨쉬는 LA를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비비는 "금요일에 처음 만나서, 주말동안 준비한 뒤, 월요일에 촬영을 시작했다."며 빡빡했던 당시 프로덕션에 대해 회상했는데, 이를 생각하면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적응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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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래트럴>을 촬영 중인 DP 디온 비비. 그는 이후 <게이샤의 추억>으로 오스카 촬영상을 수상했다.

 

물론 전임자인 폴 카메론이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겪은 여러 문제들을 디온 비비가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디온 비비 역시 디지털의 이상한 색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상당한 고민을 했으며, 필름보다 빛에 훨씬 민감한 탓에 밝은 배경에서 찍을 때는 다른 필름 영화보다 조명에 몇 배는 더 신경을 써야했다. 또한 아나모픽 모드를 지원하는 톰슨 Viper로 아나모픽 촬영을 할 때, 이를 2.39:1로 변환하여 뷰파인더로 보내면 지연이 생겨서 그냥 아나모픽 압축된 상태로 모니터링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평소 필름을 다루는 전문가도 제대로 된 적응 없이 디지털을 다루다가는 아마추어스러운 영상이 나오는 최악의 결과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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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디온 비비와 마이클 만은 이러한 디지털 카메라의 단점을 <콜래트럴>에서 오히려 장점으로서 아주 효과적으로 승화시켰다. 디지털 카메라의 녹이 낀 듯한 푸르스름한 색감은 오히려 LA 밤거리의 비정함과 차가운 면모를 살려냈으며, 필름 질감이 없는 부드러운 화면과 약간의 모션 블러는 필름이 절대 담아낼 수 없는 생생함을 불어넣었다. 또한 <콜래트럴>은 극의 대부분이 어두운 배경에서 진행되는 영화였기 때문에, 헬리콥터로 LA의 야경을 촬영한 샷에서도 도심의 크고 작은 불빛들을 아주 세세하게 모두 담아내는 등 빛에 민감하다는 점은 마이클 만에게는 장점에 더 가까웠다(물론 디온 비비에게는 머리를 싸메게 된 주요 원인이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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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루카스의 디지털 촬영 도입 이후, 영화를 무엇으로 찍을 것이냐는 줄곧 업계의 논란이자 토론 대상이 되어 왔으며,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콜래트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영화를 무엇으로 찍을 것이냐는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예술적인 선택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디지털로 찍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상상하기 힘들듯, <콜래트럴>도 마찬가지다. <콜래트럴>에는 그 이상하고 생소한 디지털 촬영이 아니었다면 절대 얻어낼 수 없었을 미학적인 성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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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지 루카스가 디지털 촬영을 도입하여 찍은 스타워즈 두 편(클론의 습격, 시스의 복수)은 그 과감한 실험성과 기술적 성취는 인정할 만하지만, 디지털 룩까지 영상미로 잘 활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CGI 분량이 실사 못지않게 많은 영화여서 이 단점이 어느정도 상쇄되긴 했지만, 정말이지 그 실사 영상 자체만으로는 좋은 평가를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당시 소니 시네알타의 한계는 명확했다. 이는 조지 루카스가 디지털 룩을 영화에 활용하기 위해 디지털 카메라를 쓴 것이 아니라, 그냥 본인 영화에 대해 강한 통제권을 행사함과 동시에 CGI를 더 편하게 작업하기 위해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콜래트럴>과 그 전에 제작된 <세션 나인>같은 영화는 디지털 촬영의 특징을 잘 파악하여, 오히려 단점으로 치부되던 것들을 장점으로 잘 활용해낸 사례이다. <콜래트럴>을 계기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가 나온 뒤에도 끊임없이 의문만 제기되던 디지털 촬영이 하나의 영화적 기법이자 예술적 선택지로서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는 더 많은 필름메이커들을 디지털 실험에 참여하도록 유도하여 디지털 촬영이 더 이상 비주류적인 실험이 아닌 업계의 미래이자 주류 기술이 되도록 만들었다.

 

마이클 만은 <콜래트럴> 이후 연출한 <마이애미 바이스>, <퍼블릭 에너미> 촬영에도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했다. 지금이야 영화 찍는데 디지털 카메라 쓰는게 별 일도 아니지만, 2010년에 아리에서 Alexa를 내놓기 이전에는 왠만한 도전 정신 없이 시도하기 힘든 것이었다. 물론 마이클 만도 완전히 디지털만 쓴 것은 아니고, 필름 촬영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분량은 여전히 필름으로 촬영했다. 그래도 여전히 디지털 카메라를 메인으로 삼았으며, 2010년 이전에 디지털 룩을 영화에 맞게 잘 활용한 대표적인 감독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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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EXECUTIONER2024 2023.05.09 12:57
    톰 크루즈의 색다른 연기변신에 몰입해서 본 영화인데 이렇게 글을 보니 더 새롭게 다가오네요
  • profile
    솜이불 2023.05.09 13:01
    톰크루즈 필모중에 젤 좋아하는 영환데 글 너무 감사합니다!정독할게요
  • profile
    아스탄 2023.05.09 13:17
    가끔은 이렇게 영화를 찍는 카메라의 톤 앤 매너가 주제와 직결되는 영화가 있나 봐요. 디지털 카메라 덕에 밤거리의 명암이 강해지고, 그 사이에서 도시의 회색 그 자체를 입었던 빈센트의 모습이 더 냉혹하고 처연하게 보였던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 profile
    SUPERPLEX 2023.05.09 20:06
    우와
  • SAWAYAMA 2023.05.09 23:37
    중간중간 톤이 바뀌면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는 부분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기술적인 비하인드가 있었네요. 정말 좋아해서 블루레이로 소장한 작품인데, 다음 감상때는 촬영을 유심히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영화 커뮤니티에서 진중하게 읽어 볼 만한 글을 만나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Fabelman 2023.05.13 23:01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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