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그야말로 영화로 영상 촬영 기술의 끝장을 보여준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톰 크루즈가 직접 배우들을 전투기에 태우면서까지 찍은 <탑건: 매버릭>, 3D 기술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며 13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물의 길>이 같은 해에 개봉했기 때문이다. 두 영화는 사실 스타일이 극과 극으로 상당히 다른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 스타일을 구현한 핵심 수단은 똑같다. 바로 소니의 6K 카메라, CineAlta Venice의 센서부 분리 키트 Rialto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일단 그 전에 소니의 시네알타와 디지털 3D의 역사에 대해 좀 설명을 해야겠다. 소니는 스타워즈를 디지털로 찍으려는 조지 루카스의 요구에 따라 2001년에 첫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인 시네알타 HDW-F900을 내놓은 적이 있다. 이 카메라는 디지털 시네마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등장 자체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데, 문제는 35mm 필름에 비하면 화질이 너무 부족했다는 것. 그래서 정말 실험정신이 투철한 몇몇 필름메이커를 제외하고는 전부 이 카메라를 외면했다.

그럼에도 디지털 시네마라는 미래는 피할 수가 없었다. 소니를 이어 레드, 파나소닉, 캐논 등이 디지털 카메라 개발에 뛰어들었고, 본래 필름 카메라만 만들던 아리와 파나비전조차 필름을 버리고 이에 동참했다. 그러다 레드에서 만든 4K 카메라인 RED One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갑자기 디지털 영화가 늘기 시작하더니, 아리에서 내놓은 명품 카메라, Alexa가 나온 뒤부터는 정말 본격적으로 디지털 시대가 찾아왔다.

또한 이런 유행에 불을 지핀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제임스 카메론의 2009년작 <아바타>이다. <아바타>는 가상 세트장에서의 가상 촬영과 3D 카메라를 활용한 실사 촬영을 병행하여 제작되었다. 제임스 카메론은 이전에 <터미네이터 2>의 4D 놀이기구용 영상을 필름 3D로 찍은 적이 있는데, 필름 3D 카메라는 너무 무거운데다 크기도 너무 커서 그 대안으로 알아본 것이 바로 소니의 HD 카메라였다. 그리고 소니 카메라와 호환이 가능한 3D 빔 스플리터 리그인 '페이스 퓨전 시스템'을 DP 빈스 페이스와 함께 개발했다. 처음에는 이 장비로 <심해의 유령들> 같은 3D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디지털 3D 촬영 노하우를 터득했으며, 이후 <아바타> 프로덕션에 돌입하여 소니의 F950, F23으로 3D 촬영하면서 제임스 카메론과 소니와의 협업 관계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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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의 긴 제작기간 끝에 개봉한 <아바타>가 그야말로 초대박이 나면서 디지털 3D 촬영 붐이 일었고, 3D 촬영에 적합한 소형 모듈러 카메라 역시 덩달아 인기를 끌게 되었다. 레드의 카메라들은 Epic을 기점으로 콤팩트 모듈러 외형으로 디자인되어 3D 및 드론 촬영에 적합했던 반면, 아리의 Alexa는 화질은 정말 좋았으나 너무 크고 무거워서 다용도로 쓰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아리 역시 시장 수요를 파악하여 Alexa의 센서부를 유선 분리할 수 있는 Alexa M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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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 M은 센서부 무게만 따지면 약 3kg 정도로 가벼웠고, 센서부를 분리해도 화질에 전혀 손실이 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고품질 3D 영상이나 익스트림 촬영을 원하는 필름메이커들에게 제격이었다.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와 이안의 <라이프 오브 파이>가 Alexa M으로 3D 촬영한 영화들인데, 둘 다 오스카 촬영상을 수상하여 그 성능을 인정받았다. 또한 <스카이폴>에서 지하철이 벽을 뚫는 장면 역시 11대의 Alexa M으로 촬영한 결과물이다.

그럼 그렇게 아리랑 레드가 즐기는 동안 소니 시네알타는 뭐했냐면... 그냥 죽만 쑤고 있었다. 소니는 그간 F35나 F65 같은 시네알타 카메라를 내놓았지만 시장의 선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왜냐면 일단 화질 우위는 아리가 꽉 붙잡고 있어서 이길 수가 없었고, 그보다 저렴한 카메라나 4K 이상 고해상도 수요는 레드가 죄다 가져가버린 바람에 소니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기 때문. 무엇보다 F35나 F65는 정말 시대착오적인 디자인(뒤쪽에 벽돌만한 외장 레코더가 탑재된다...)인데다 아리 카메라급으로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헐리웃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F35와 F65의 실패로 시장 수요와 현대 카메라 트랜드를 제대로 따라야겠다고 결심을 했는지, 2016년 출시된 새로운 시네알타 카메라인 Venice는 정말 거의 모든 것이 바뀌어서 나왔다. Alexa Mini 정도로 작은 외형에 모듈러 카메라라서 편의성이나 호환성이 좋아졌고, 새로 개발한 6K 라지포맷 센서를 탑재하여 점점 늘어나는 4K 이상 해상도에 대한 수요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또한 라지포맷이나 와이드스크린 외에 Super 35도 지원하는 멀티 포맷 카메라이기 때문에 요즘 카메라의 유행을 아주 충실히 따른 카메라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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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CineAlta VENICE


한편 <아바타>의 속편인 <아바타: 물의 길>을 준비하던 카메론은 이번에도 3D 촬영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마침 소니에서 Venice가 꽤 잘 나왔다는 소식을 들어 이번에도 소니 카메라를 쓰기로 했다. 그런데 예전에 카메라 2대가 장착된 3D 리그를 어깨에 메고 촬영하던게 허리 디스크나 트라우마로 남으셨던 것일까? 카메론은 Alexa M의 센서부 분리 기술을 Venice에 적용하면 어떻겠냐며 소니에 제안했다. 그렇게 제임스 카메론과 소니의 협업 하에 Venice의 센서부 분리 키트인 Rialto가 탄생했다.

 

Rialto-2-1920.jpg


"VENICE 확장 시스템은 이미지 품질 손상 없이 3D 촬영을 위해 완벽한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감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 Sony

Rialto는 베니스의 관광 명물인 리알토 다리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이름이 가지는 의미답게 Venice의 센서부를 분리하여 최대 5.5m 케이블로 화질 손실 없이 연장할 수 있고, 과거에 나온 F950은 물론, 비슷한 장비인 Alexa M보다도 더 가볍고 크기가 작다. <아바타: 물의 길>에 쓰인 3D 리그는 <아바타>때 썼던 것과 동일한 빔 스플리터 방식이었는데, 여기서 핸드헬드용 3D 리그는 두 개의 Rialto만 달려 있고, 본체는 오퍼레이터 옆에서 다른 스탭이 담당한다. 또한 3D 리그도 강철 부품을 티타늄으로 교체하는 등의 경량화가 이루어진 덕에 Rialto 3D 리그의 무게는 겨우 13.5kg에 불과하여 3D 카메라 오퍼레이터의 무게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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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비슷한 시기에 <탑건: 매버릭> 제작진이 촬영을 앞두고 카메라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톰 크루즈가 배우들을 실제 전투기 후방석에 태운 뒤 콕핏에 카메라를 집어넣고 찍기를 원해서 아주 작은 소형 카메라가 필요했다. 고프로 같은 초소형 카메라가 있긴 했으나 대형 스크린을 채우기에는 화질이 너무 부족해서 결국 라지포맷 카메라를 알아보게 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Venice Rialto가 아주 좋은 선택지로써 다가왔다. <탑건: 매버릭>의 감독인 조셉 코신스키와 DP 클라우디오 미란다는 이전에 소니로부터 Venice를 제공받아 단편 영화 <The Dig>를 찍어본 적이 있었으므로 사실 Venice를 선택한 건 예정된 일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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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제작진은 F/A-18F 슈퍼호넷에 Venice를 여러 개 부착했는데, 특히 공간이 매우 협소한 콕핏 내부가 바로 Rialto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Rialto를 콕핏에 최대한 많이 넣기 위해서 구식 항전 디스플레이를 갖춘 슈퍼호넷 2기를 찾아 영화 촬영에 불필요한 장비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으며, 그 결과 무려 총 6대의 Venice를 콕핏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배우들은 전투기를 조종할 수 없었으므로 후방석에 앉았고, 이걸 마치 전방석에서 조종하는 것처럼 찍기 위해 전방과 후방을 모두 향하도록 카메라를 배치했다. 2개 렌즈는 파일럿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전방을 향하고, 4개 렌즈는 후방에 앉은 배우를 향하는 식이다. 또한 외부에도 카메라를 4대나 장착했기 때문에 촬영용 전투기는 풍동에서 안정성 테스트까지 진행했다. 그리고 콕핏 내부 카메라의 렌즈가 사출 좌석의 경로를 방해하면 안되었으므로 보이그랜더와 자이스의 초소형 광각 렌즈를 장착했고, 이 길이 제한 때문에 ND 필터를 추가로 달 수가 없었는데 여기서 Venice의 자체 ND 필터 기능이 큰 도움이 되었다.
 

20230525_142222.jpg


하지만 Venice가 완벽했던 것은 아니고 문제점도 있었다. Venice는 차세대 16비트 레코딩 포맷인 X-OCN을 지원하는데, 이 포맷으로 녹화하려면 전용 외장 레코더(AXS-R7)를 카메라 뒤쪽에 달아야 했던 것. <탑건: 매버릭>은 콕핏 내부에 외장 레코더 장착을 위한 공간 확보가 안되서 어쩔 수 없이 콕핏 카메라는 외장 레코더 없이 하위 포맷인 XAVC로 촬영했다고 한다. XAVC는 X-OCN에 비해 비트레이트가 떨어지고 최대 10비트 색심도만 지원하므로 영상 품질이 비교적 낮기 때문에 콕핏 촬영 분량만큼은 Venice의 성능이 100% 발휘되지 못했다고 봐야한다. 참고로 이는 Venice 2에서 향상된 프로세서를 탑재하여 X-OCN을 자체 처리하도록 함으로써 해결했다.

 

Top-Gun-Maverick-Barbaro-and-Cruise.jpg


어쨌든 원래 제임스 카메론을 위해 만들었던 Rialto가 다른 프로덕션에서도 아주 평이 좋아서였는지, 후속작인 Venice 2 역시 업그레이드 된 Rialto 2세대와 함께 출시되었다. 1세대의 5.5m에서 2배 이상 더 길어진 최대 12m 길이로 연장할 수 있어서 촬영 유연성이 개선되었으며, 5.5m로 연장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리피터 박스가 필요했던 1세대에 비해 2세대에서는 리피터 박스 없이 12m까지 연장된다. 또한 Venice 2가 8K로 센서 해상도가 올라간만큼 지원 대역폭 역시 향상되었다.

보통 영상 프로덕션에서는 메인 카메라로 촬영하기 어려울 때, 더 작고 쓰기 편한 B 카메라를 따로 사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예를 들어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메인 카메라로 Alexa Plus와 Alexa M을 사용했는데, Alexa M 크기가 은근히 컸기 때문에(Alexa Mini 정도 크기) 일부 장면은 5D Mark2나 D800 같은 소형 DSLR 카메라까지 동원했다. 이 카메라들은 워낙 작기 때문에 극한 환경에서도 촬영이 가능하지만, 그 체급의 한계 때문에 화질적으론 많은 희생을 해야한다. 또한 메인 카메라와의 화질 편차가 심하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화질이 들쭉날쭉 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Rialto는 그런 문제를 어느정도 해소시켜주는 훌륭한 장비이다. 만약 <탑건: 매버릭>이 전투기에 D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를 달고 찍었다고 생각해봐라. 그 화질은 스마트폰 같은 소형 디스플레이에서는 나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형 스크린에서는 정말 끔찍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Venice Rialto를 쓰면  화질 타협 없이도 메인 카메라에게 B 카메라의 임무를 부여할 수 있고, 영화 전체를 라지포맷에 어울리는 화질로 통일할 수 있다.

현재 Venice Rialto로 촬영한 <아바타 3>가 후반 작업 중에 있으며, 올해 개봉을 앞둔 닐 블롬캠프 감독의 <그란 투리스모> 역시 Rialto를 레이스카의 내부와 외부에 부착하여 레이스 장면을 촬영했다. 이후로도 하이엔드급 카메라로 익스트림한 장면 촬영이나 3D 촬영을 원하는 필름메이커에게는 아직 Rialto만큼 좋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당분간 꾸준히 수요를 유지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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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탄 2023.05.26 10:54
    탑건 매버릭 촬영의 진짜 비밀은 여기 있었군요. 같은 방식으로 찍은 그란 투리스모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양질의 글 잘 봤습니다.

칼럼 연재를 원하시면 <문의게시판>을 통해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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